구약성경 공부/시편 공부

제69편 하느님 때문에(8절).

윤 베드로 2020. 5. 19. 18:53

69편 하느님 때문에(8).

 

69: 개인 탄원시편, 이 시는 신약에서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와 엄청난 치욕을 묘사하면서(2-13),

          θ께 자신을 변호해 주시고 원수들을 벌하시라고 간청한다(14-29)

          한편 자신은 θ께 감사의 찬미가를 불러 드리겠다고 약속한다(30-35).

 

1. 원수가 까닭 없이 다윗을 미워함

1 [지휘자에게. 나리꽃 가락으로. 다윗]

2 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목까지 물이 들어찼습니다.

3 깊은 수렁 속에 빠져 발 디딜 데가 없습니다.

물속 깊은 곳으로 빠져 물살이 저를 짓칩니다.

4 소리 지르느라 지치고 저의 목도 쉬었습니다.

저의 하느님을 고대하느라 제 두 눈마저 흐려졌습니다.

5 저를 까닭 없이 미워하는 자들이 제 머리카락보다 더 많습니다.

저를 파멸시키려는 자들, 음흉한 제 원수들이 힘도 셉니다.

제가 빼앗지도 않았는데 물어내라 합니다.

 

2. 다윗이 주님의 집을 사모함

6 하느님, 당신께서는 저의 어리석음을 아시며

당신께는 저의 죄악들이 숨겨져 있지 않습니다.

7 주 만군의 주님, 당신께 바라는 이들이

저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이스라엘의 하느님 당신을 찾는 이들이

저 때문에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8 당신 때문에 제가 모욕을 당하고

수치가 제 얼굴을 뒤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9 저는 제 형제들에게 남이 되었고

제 어머니의 소생들에게 이방인이 되었습니다.

10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불태우고

당신을 모욕하는 자들의 모욕이 제 위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11 제가 단식하며 눈물을 흘린 것이 저에게는 우셋거리가 되었습니다.

12 자루옷을 의복으로 삼은 제가 저들에게는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13 성문 가에 앉은 자들은 저를 헐뜯어 대고

주정꾼들은 조롱의 노래들을 부릅니다.

 

3. 구원 요청

14 그러나 주님, 당신 마음에 드시는 때에 저의 기도가 당신께 다다르게 하소서.

하느님, 당신의 크신 자애로, 당신 구원의 진실로 제게 응답하소서.

15 진창에서 저를 구출하소서, 제가 빠져 들지 않도록.

제 원수들에게서, 물속 깊은 데에서 제가 구출되게 하소서.

16 물살이 저를 짓치지 못하고 깊은 물이 저를 집어삼키지 못하며

심연이 저를 삼켜 그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소서.

17 주님, 당신의 자애가 너그러우시니 저에게 응답하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를 돌아보소서.

18 당신 종에게서 얼굴을 감추지 마소서.

제가 곤경 속에 있으니 어서 저에게 응답하소서.

19 제게 가까이 오시어 저를 구해 내소서.

제 원수들을 보시고 저를 구원하소서.

20 당신께서는 제가 당하는 모욕을, 제가 당하는 창피와 수치를 아십니다.

저의 적들이 모두 당신 앞에 있습니다.

21 모욕이 제 마음을 바수어 저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동정을 바랐건만 허사였고 위로해 줄 이들을 바랐건만 찾지 못하였습니다.

22 그들은 저에게 음식으로 독을 주고

목말라할 때 초를 마시게 하였습니다.

23 그들의 식탁이 그들 앞에서 덫이 되고

태평스러운 그들에게 올가미가 되게 하소서.

24 그들의 눈은 어두워져 보지 못하고 그들의 허리는 늘 휘청거리게 하소서.

25 그들 위에 당신의 분노를 쏟아 부으소서.

당신 진노의 불길이 그들에게 미치게 하소서.

26 그들이 사는 곳은 황폐해지고 그들의 천막에는 사는 이가 없게 하소서.

27 그들은 당신께서 때리신 이들을 뒤쫓고

당신께서 치신 이들의 상처를 헤아립니다.

28 그들의 죄에다 죄를 더하소서. 그들이 당신 구원에 들지 못하게 하소서.

29 그들이 생명의 책에서 지워지고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않게 하소서.

 

4. 감사의 찬미가

30 저는 가련하고 고통 중에 있습니다.

하느님, 저를 도우시어 보호하소서.

31 나는 하느님의 이름을 노래로 찬양하리라. 송가로 그분을 칭송하리라.

32 이것이 주님께는 더 좋다네,

수소들보다 뿔 달리고 굽 갈라진 황소들보다.

33 가난한 이들이 이를 보고 즐거워하리라.

하느님을 찾는 이들아, 너희 마음 기운 차려라.

34 주님께서는 불쌍한 이들의 소리를 들어 주시고

사로잡힌 당신 백성을 멸시하지 않으신다.

35 주님을 찬양하여라, 하늘과 땅아 물과 그안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아.

36 하느님께서는 시온을 구하시고 유다의 성읍들을 세우신다.

그들이 거기에 머물며 그곳을 차지하고

37 그분 종들의 후손이 그 땅을 상속하여

그분 이름을 사랑하는 이들이 그곳에서 살아가리라.

 

 

69:

시인은 하느님께 저를 구하소서라고 기도하며, 자신이 지금 얼마나 극한 위험 중에

           하느님께 구원을 호소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69,1-5).

그가 지금 당하고 있는 시련은 마치 깊은 수렁에 빠져있는 것 같고,

               홍수로 인하여 휩쓸러 가기 직전의 위험한 처지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많은 원수들은 그를 죽이기 위하여 그의 주변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더욱 시인을 고통스럽게 한 것은 이런 위험 가운데서

        하느님께 구원해 주시기를 호소했으나 응답이 없는 것이다.

그는 이때의 심정에 대하여 4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소리 지르느라 지치고 저의 목도 쉬었습니다.

         저의 하느님을 고대하느라 제 두 눈마저 흐려졌습니다.

여기 이 말은 시인이 얼마나 애타게 하느님께 구원을 탄원했는지 말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응답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이처럼 극한 시련 가운데 있었지만, 그 위험들이 시인에게 임하지 않았다.

원수들이 그의 생명을 취하기 원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실 때 우리가 응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방식으로만 응답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하느님은 침묵을 통해서도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신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할 때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고 단정하고

         시인처럼 스스로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침묵하실 때에도

          우리는 그 자체를 응답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주님 앞에서 자신이 숨겨질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어째서 그토록

           자신이 원수들의 손으로부터 구원을 탄원하는지 말하고 있다(69,6-13).

이런 시인의 태도는 우리에게 하느님께 나갈 때 가져야 할 바른 태도가 무엇인지 말해 준다.

하느님, 당신께서는 저의 어리석음을 아시며

             당신께는 저의 죄악들이 숨겨져 있지 않습니다(69,6).”

시인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주님 앞에 어떤 죄도 숨길 수 없다고 말했다.

즉 시인은 주님 앞에 정직함으로 나간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말씀들 가운데 하나는

               하느님 앞에 나가는 자는 정직한 마음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시인은 주 만군의 주님, 당신께 바라는 이들이 저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이스라엘의 하느님 당신을 찾는 이들이

                  저 때문에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69:7-8)라고 거듭 기도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느님 앞에 나갈 때 가져야 할 또 하나의 태도는

           하느님의 영광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의 권고처럼 믿음의 사람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먼저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생각하는 것이 생활화되어야 한다.

 

이제 시인은 자신을 원수들의 손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원수들은 자신들이 행한 악한 일에 따라 저주를 받게 해 주기를 기도하고 있다(69,14-29).

그래서 그는 하느님께 자신을 긍휼히 여겨 주시기를 구한 것이다.

주님, 당신 마음에 드시는 때에 저의 기도가 당신께 다다르게 하소서(69,13).” 

 “주님, 당신의 자애가 너그러우시니 저에게 응답하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를 돌아보소서(69,17).”

이처럼 시인이 하느님께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것은 의무가 아니고 은혜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무의식 가운데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것이 마치 의무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기도는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으로 마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시인의 기도는 계속 되고 있다(69,21-29).

그는 하느님께 긍휼을 구한 후 원수들의 잔악함을 고발하며

        주님께서 그들이 지은 죄에 따라 심판해 주시기를 구한다.

여기 시인의 기도가 원수들에 대한 저주이므로 이 기도를 저주의 기도라고 말한다.

이처럼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문제를 잠시 잊고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보았을 때

          시인은 고난 중에서도 찬양할 수 있었다(69,30-37).

이처럼 우리의 문제를 떠나서 하느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언제나 찬양할 수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찬송을 잃어버리는 것은 구원의 하느님을 바라보기보다는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며 그 문제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찬송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침묵의 시간이나

              또는 기도의 시간을 가짐으로 잠시 문제로부터 떠나서

              하느님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느님께서 시온을 구원하시고 유다 성읍을 건설하심으로

            그곳에 샬롬이 임하여 그분 종들의 후손이 그 땅을 상속하여

            그분 이름을 사랑하는 이들이 그곳에서 살 것을 믿었다(6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