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준엄하고 가혹한 징벌의 말씀으로 들리고, 이런 말씀을 하시는 하느님이 가혹하고 무자비한 분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자비하신 분이라는 근본믿음이 없으면 하느님은 그저 무섭고 벌주시는 분으로만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느님의 두 사랑을 봐야 할 것입니다. 아모스서처럼 벌주시는 하느님의 사랑, 복음에서처럼 죄인을 챙기시는 하느님의 사랑. 먼저 벌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벌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저는 즉시 자식을 사랑하는 여러분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자식을 사랑하기에 벌을 주시는 여러분의 마음과 함께 사랑하기에 벌을 줄 수밖에 없고,
벌을 주기에 아플 수밖에 없는 사랑도. 예를 들어 어린아이의 그 가느다란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릴 때 아이의 종아리가 아픈 것보다
여러분 마음이 더 찢어지게 아팠을 겁니다. 저는 여러분이 분명히 그렇게 아프셨을 거라고 믿고, 그렇게 아픈데도 아이에게 벌을 주셨을 거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아이의 아픔과 아이의 아픔보다
더 큰 자신의 아픔이 두려워 벌을 안 주시는 겁쟁이들이 아니라고 저는 믿는데 우리는 하느님께서 이런 우리들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고, 그래서 더 사랑으로 우리의 잘못에 벌을 주실 거라고 믿어야겠지요. 그런데 <사랑으로> 벌을 준다는 것은 두 가집니다. 사랑의 목적으로 벌을 주고 사랑의 방식으로 벌을 주는 겁니다. 아모스서는 얘기합니다. 굶주리고 목마르게 하여
주님의 말씀을 목마르게 하기 위해서라고. 제가 미국에 갈 때 저보다 먼저 외국생활을 한 형제가 양식을 싫어하고 워낙 토속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저를 보고 그 양식을 그래도 먹으려면 늘 배고프게 해야 한다고 조언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조언대로 아침은 안 먹고 점심은 샌드위치 한 쪽을 먹으니 저녁이면 너무도 배가 고파 웬만하면 다 맛있고 많이 먹을 수 있었고, 그래서 저는 한 끼로 필요한 영양보충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장이 반찬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실제로 살다 보니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오늘 화답송처럼 주일 아침의 시편기도가 정말 절절이 마음에 와 닿았고 그래서 저는 지금도 이 시편이 좋습니다. “하느님 내 하느님 당신을 애틋이 찾나이다. * 내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하나이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 * 이 몸은 당신이 그립나이다.” 이제 죄인을 챙기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도 보겠습니다. 불쌍한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사랑을 일컬어 자비라고 하니 하느님의 자비는 불쌍한 사람 그중에서도 죄인들에게 특별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께서 당신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신 말씀도 우리는 의인은 당신 자비에서 배제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이런 뜻 안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물론 의인만 챙기고 죄인은 배제하는 우리의 불완전한 사랑과 당신의 사랑은 다름을 말씀하시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실상 죄인 아닌 사람이 없으니
모두를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이고요. 아무튼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를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