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 지혜와 어리석음
‘지혜’라는 여인의 초대(9,1-6)
1 지혜가 일곱 기둥을 깎아 자기 집을 지었다.
2 짐승을 잡고 술에 향료를 섞고 상을 차렸다.
3 이제 시녀들을 보내어 성읍 언덕 위에서 외치게 한다.
4 “어리석은 이는 누구나 이리로 들어와라!”
지각없는 이에게 지혜가 말한다.
5 “너희는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셔라.
6 어리석음을 버리고 살아라. 예지의 길을 걸어라.”
*9장은 지혜와 어리석음을 비교함으로
1-8장까지 권고한 것들을 정리하였다.
먼저 본문은 지혜의 초청을 통하여 지혜가 가지고 있는 속성을 말해 주고
다음으로 거만한 자와 어리석은 자의 행위를 통하여
이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말해 주고 있다.
9,1-6, 지혜의 초청 :
이 단락은 첫 모음집(1~9장)의 마지막 부분으로
지혜로운 여인과 미련한 여인을 통해
지혜와 어리석음을 비교하고 있다.
지혜로운 여인은 기둥을 세워 집을 짓고 잔치를 열어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지혜를 가르쳐준다.
이처럼 하느님의 지혜는 우리 삶을 다듬고 견고하게 해주며
어떻게 사는 것이 생명과 슬기를 얻은 길인지 보여 준다.
※9,1-6 :
지혜가 집을 짓고, 잔치를 차리고, 종을 보내어 사람들을 초청한다는 것은
지혜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속성을 말해 준다.
이들 가운데 하나는 스스로를 세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것을 이웃과 나누는 것이다.
본문에서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차렸다”라는 표현은
지혜가 스스로를 세우는 행위를 말한다.
지혜는 스스로를 세울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웃과 나누는데
본문에서 이와 같은 지혜의 속성을 여종을 보내어
자신의 잔치에 참여하도록 초청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현인과 빈정꾼(9,7-12)
7 빈정꾼을 꾸짖는 이는 수치만 당하고 악인을 나무라는 이는 오점만 남긴다.
8 빈정꾼을 나무라지 마라. 그가 너를 미워하리라.
지혜로운 이를 나무라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9 지혜로운 이에게 주어라. 그가 더 지혜로워지리라.
의로운 이를 가르쳐라. 그가 견문을 더하리라.
10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함이며 거룩하신 분을 아는 것이 곧 예지다.
11 정녕 나로 말미암아 네가 살 날이 많아지고 너의 수명이 더해진다.
12 네가 지혜롭다면 너를 위해 지혜로운 것이다.
네가 빈정대면 너 혼자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지혜의 교훈 :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며, 유익이다.
지혜란 단지 돈이 되는 정보나 지식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것이다.
그러한 지혜는 많은 유익을 누리게 해주지만,
가장 큰 유익은 하느님을 경외하며 살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지혜롭지 못한 자가 받는 가장 큰 害는
하느님을 경시하며 살게 된다는 것이다.
참지식은 하느님을 향한 올바른 태도에서 시작된다.
하느님 없는 지식은 인간을 교만하게 하며 위기에 빠뜨린다.
※9,7-12 :
본문은 지혜로운 자와 함께 할 때 얻는 유익이 무엇인지 말한 후(9:1-6),
지혜로운 자와 함께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지혜자는 먼저 거만한 자 또는 악인과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해로운지 말해 주고 있다.
여기 “징계” 또는 “책망”은 삶을 나누는 행위를 나타내 주는 표현이다.
실제로 징계를 하거나 책망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그릇됨을
바르게 해 주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자 하는 호의이며 사랑이다.
그러나 거만한자(어리석은 자)는 이것을 호의로 받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을 멸시하는 것으로 받기 때문에
징계하는 자가 이들로부터 받는 것은 능욕과 미움이다.
9-10절, “지혜로운 이에게 주어라. 그가 더 지혜로워지리라.
의로운 이를 가르쳐라. 그가 견문을 더하리라.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함이며 거룩하신 분을 아는 것이 곧 예지다.”
책망과 징계가 삶을 나누는 행위인 것처럼
교훈하고 가르치는 것 역시 삶을 나누는 행위이다.
하느님은 우리로 하여금 더불어 살도록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군가와 더불어 삶 때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하여 지혜자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해 준다.
그리고 그는 계속하여 지혜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얻을 수 있음을 말해 준다.
그래서 지혜자는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정녕 나로 말미암아 네가 살날이 많아지고 너의 수명이 더해진다.
네가 지혜롭다면 너를 위해 지혜로운 것이다.
네가 빈정대면 너 혼자 그 책임을 져야 한다.(9:11-12)”
'우둔함'이라는 여자의 초대(9,13-18)
13 우둔함이라는 여자는 안절부절못하고 어리석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14 그 여자는 자기 집 대문에, 성읍 언덕에 자리 잡고 앉아
15 길을 가는 이들을, 제 길을 똑바로 가는 이들을 부른다.
16 “어리석은 이는 누구나 이리로 들어와라!”
지각없는 이에게 우둔함이 말한다.
17 “훔친 물이 더 달고 몰래 먹는 빵이 더 맛있다!”
18 그러나 어리석은 이는 그곳에 죽은 자들만 있음을,
그 여자의 손님들이 저승 깊은 곳에 있음을 알지 못한다.
⇒미련한 여인의 초청 :
어리석음의 잔치와 지혜의 잔치가 대조 되어 있다.
미련한 여인의 초대에 응하는 자가 미련한 사람이다.
미련한 여인은 더 맛있는 물과 포도주를 주겠다며 유혹하지만
그것은 모두 죄와 연결된 일시적인 쾌락일 뿐이다.
훔친 물과 숨어 먹는 포도주보다 땀 흘려 일하고 함께 먹는 음식이
더 맛있다.
※9,13-18 :
지혜를 현숙한 여성으로 의인화한 것처럼
미련함과 어리석음도 미련한 여인으로 의인화했다.
지혜가 사람을 초청하는 것처럼
어리석음(미련한 여인)도 사람을 초청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모든 사람은 자신이 있는 곳에서
지혜와 어리석음으로부터 초청의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여기 미련한 여인의 행위를 “떠들며” “자기 집 문에 앉으며”
“높은 곳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등과 같은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미련한 여인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초청하는지 말해 준다.
그러나 지혜와 미련한 자가 초청하는 목적은 각각 다르다.
지혜자도 미련한 자도 모두 어리석은 자를 초청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지혜자가 초청하는 목적은 어리석은 자로 하여금
지혜를 얻도록 하려 함이지만
미련한 자는 더욱 죄에 빠지도록 유혹하기 위하여 초청한다.
지혜로운 자는 무엇을 선택할지라도 먼저 그 일이
하느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다만 그 일이 지금 자신에게
얼마나 유익을 줄 수 있는지만 생각하고 선택한다.
우리는 이런 어리석은 자의 행위를 사려함이 없는 행위라고 말한다.
모든 어리석음은 여기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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