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년기(老年期) 걷기의 즐거움 -
남은 생명 무엇으로 버틸까?
당신의 노년기는 안녕하신가요? 노년기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알겠나? 그것은 건강하게 살다가 잘 죽는 것(well dying)이 아닐까? 친구(親舊)들이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면서 내 자신의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림을 부인(否認) 할 수가 없다.
내 이웃은 점점 없어지고 내 친구들도 사라지고 있으니 삶 자체가 허무해지는 것이 노년기다. 아무리 가는 세월 잡으려 해도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이 세월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비천(卑賤)한 몸이 되어 감은 물론이다. 죽음의 공포(恐怖:thanatophobia)는 누구에게나 다 있는 법이다.
샘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넓은 바다에 내려가듯이 노년기는 잠재된 욕망, 불만, 편견을 내려놓고 자연 속에 묻고 사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정신 의학자(精神醫學者) ‘알프레드 아들러(Adler, 1870-1937)’의 생로병사심리학(生老病死心理學)에서 말하는 “늙어갈 용기”가 필요할 때다.
그것은 무엇보다 건강한 삶이다. 노년기 건강을 지키는 최고의 무기는 걷기다. 걷기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않고 자유롭게 걸을 수 있고 또 효과적인 운동이다. 게다가 걷는 것은 건강을 지키는 것이지만 나를 더 낮추고, 비우고 그리고 내몸과 마음이 어떠한지를 알고자 함이다. 걸을 때는 생각도 자유로워지게 마련이다.
그러면 한 가지 질문부터 시작 해보자. 당신이 지금 70대라고 하자. 그렇다면 당신은 앞으로 10년 후에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물론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할지 망서려 질것이다. 답이 어렵겠지만 자기자신을 객관적으로봐야 한다. 우리는 지금 100세 시대에 살고 있기에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15년 기준으로 남자 79.0세, 여자 86.2세라고 하지않는가? OECD국가들의 평균 기대수명(남자 77.9세, 여자 83.3%) 보다 오래 살아가는 고령사회화에 접어들었다. 그렇다면 당장 오늘부터 어떻게 건강하게 살것인가를 깨달으라. 막연한 미래의 80, 90대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삶의의미를 재정립하고 바라보는 것,그것이 노년기를 살아가는 최소한의 마음 자세일 것이다.
사실 늙어가면서 걷기는 ‘해야만 하는 것이고, 기꺼이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생체운동이다. 걸으면서 늙은 심장이 뛰게 하고 가느다랗게 변한 두 다리가 다시 굵어져야 한다. 행복한 노년이란 질병에서 벗어나 웰빙의 관점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원하는 곳에 갈수 있는 신체적 건강이다. 이 말을 진정으로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왜 걷기를 주저 하는가?
의심할 여지없이 취미로, 열정으로, 많이 걸어라. 취미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자기만의 특이한 취향에 빠지는 것은 즐거운 몰입이요 삶의 질을 높이는 수단이다. 따라서 이글은 노년기에 필요한 걷기를 글감으로 해서 노년기 걷기의 필요성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나 역시 70대를 살아가니 걷기가 좋은 글 주제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노년의 걷기는 매일 걷기를 통해서 건강하게 편안하게 살아가고 보다 깊은 사유와 함께 영혼을 풍요롭게 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품위 있게 나이드는 방법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걷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노년기는 처음이지요. 현재의 당신(내) 모습, 당신을 늙은이로 만든 게 바로 당신이 아닙니까?”.
<우아하게 걸으며 늙어가기>
꽃처럼 찬란했던 지난 젊은 날이 굽이굽이 지나가겠지만 지금도 한없이 구불구불 좁은 길을 걷듯이 당신 인생은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특히 몸이 불편하니 “불안한 마음”은 더해 가게 마련이다. 늙어가면서 분명히 오래 많이 걸으면 숨이 차고 어지럽고 가슴이 퉁탕거릴 때가 많을것이다. 또한 평소에도 흉통, 통증, 다리저림, 히스테리, 무력감 등 상실감에 시달릴 것이다. 이런 증상을 자주 느낀다면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즉 그것은 본질적으로 건강의 문제다.
그렇게 느낀다면 무조건 걸어라. 걷기는 당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걷기는 생활 활력소가 된다. 7080세대의 걷기는 ‘위험한 걷기’라고 하겠지만 심연속의 ‘나’를 건져 올릴 수있는 것이 바로 걷기다. 인생에서 새로움과 변화를 만들어가는 방법으로 무엇보다 걷기가 아닐까 싶다. 과거는 망가졌고 현재는 혼돈이며 미래는 막막할 지라도 걸으면서 만나는 산과 개울이 늙어가는 당신을 위로 할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귀향과 같은 감정이 아니던가. 그동안 잊었던 ‘고향’을 찾아가는 것같이 느끼는 것이 걷기의 기호다.
어느 누구는 “젊으니까 아프다”라고 했지만 사실은 “늙으니 더 아프고 외롭다” 성장하는 성장통(growing pains)이 있듯이 늙어가는 아픔(aging pains)도 매우크다. 70대가 넘으니 외로움, 상실감, 결핍감도 많아진다. 나이가 더해질수록 심각한 고통과 악마 같은 질병이 자주 찾아온다. 몸 건강에 대한 자신감도 떨어지는 등의 나쁜 감정이 반복된다. 게다가 노화는 하체 다리부터 시작된다. 늙으면 지팡이에 의존하게 되는 것도 다리가 아프기 때문이다.
사람은 결국 두발로 걷다가 네발로 내려(기어)가는 짐승 같은 인생이 된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소멸해 가는 현상으로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자연의 순리다. 우리는 흔히 지나가는 말로 “이제 다 늙어버렸잖아!”라고 소리친다.이렇게 저렇게 지나갔다고 안타까워한다. 늙으니 꿈과 열정이 없어졌다고 하소연 한다. 사실 흉측하게 늙어가는 몰골에 자기도 놀란다.
더구나 노년기 빈곤감까지 겹치면 열등콤플렉스에 빠져서 남몰래 울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하루는 난생처음 맞는 날이 아니던가. 이런 날을 무의미하게 보낸다 말인가? 말을 바꿔서 누구에게나 “갈수 있어, 걸을 수 있어” 하는 잠재된 긍정의 심리를 깨우는 일이다. 오늘도 걸으며 작은 것들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공감하고 감동을 느껴보자. 민들레 풀씨에서 희망을 볼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걷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실천할까? 걷기는 기본적으로 각종질병(암, 심장병, 뇌졸중, 당뇨병, 스트레스)에 걸릴 위험을 줄여주거나 예방해준다고 한다.
이때 걷기의 기본은 생물학적으로 사지가 멀쩡해야 한다. 다리가 튼튼해야 한다는 말이다. 근육의 70%이상은 허리와 허벅지등 다리에 분포되어 있다. 하반신 근육이 든든해야 제구실을 할 수 있고 어디든지 갈수 있는 이동성이 보장된다. 실제로 많이 걸으면 건강하게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이 건강의학자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다시 말해 오로지 걷는 데서만 찾을 수 있는 가치는 ‘살아 움직이는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일 것이다.
스위스 작가 ‘로베르트 발저(Walser, 1878-1956)’는 “집에 갇혀 있으면 나는 처량해 지고 시들어 버린다. 산책은 내 건강에 좋고 즐거울 뿐만아니라 유익한 걸음이다. 산책 한번에 생기가 돌고 위로가 되고 즐거워진다.”고 했다. 그러니 당신이 집순이, 집돌이로 집안에 처 박혀 있는 외로운 은둔자가 아닌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갈 때 번민, 스트레스를 날려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걷기는 휴식, 건강, 힐링, 스트레스 관리를 돕는다. 걷는 중에는 언제나 볼만한, 그리고 느껴볼만한 의미 있는 형상들이 넘쳐 난다. 그러므로 길고 짧은 물리적 거리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길 위에 어딘가 존재함으로써 존재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걷기를 실천하고 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그러면 걷기가 우리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첫째, 걷기를 시작하면 인생이 변한다. 걷기는 도피, 무작정 걷기, 치유, 그로 인한 삶의 변화이다. 자연과 소통을 자극하고 자기 성찰의 기회를 준다. 늙은 남자의 걷기, 삶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침체된 분위기를 좀 더 좋게 만들어 준다.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고 자신에 대해 초연해 진다. 걸으며 나를 찾아 가는 일은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의무요 소망이다.
둘째, 걷기는 건강한 노화를 만들어가는 수단이다. 요새는 단순한 성공적노화(sucessful aging) 혹은 항노화(anti-aging) 보다는‘건강한 노화’(healthy aging), 즉 건강한 노년을 더 강조한다. 안티에이징에서 강조되는 각자의 ‘건강한 기대수명’(healthy life expectance)과 같은 개념이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더라도 질병이나 부상으로인해 활동하지 못한다면 결코 행복한 노년생활이 될 수 없다. 일상생활에서 걷지 못하고 누워 있는 고통, 즉 와상(臥床)상태에서 보낼때 그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걷는 행위는 단순히 여기저기를 이동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유의 원천이 된다. 걷기는 고갈된 정신적 자원(mental resources)을 채우는 순간이다. 걷기와 관련해 《걷기의 철학》(고아침 역, 2007)을 쓴 ‘크리스토프 라무르(Lamoure)’는“우리의 첫 번째 스승은 우리의 발이다”라고 했다. 걷기와생각은 늘 같이 작용한다는 뜻이다. 걸으면서 내가 누구인지 감각의 흐름을 느끼게되고, 걷는공간은 창의성, 유연성, 각종 이벤트가 열리는 장소다. 걸어가서 만나는 자연을통해 내면성을 맛 볼 수 있다. 자연 속을 걸으며 명상하고 치유 받는 것을 그린 사워(green shower)라고 하지 않는가?
넷째,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희망, 꿈, 즐거움을 다시 확인하고 리셋할 수 있다. 물론 인생을 살면서 한 번도 절망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걷는다고 슬픔과 외로움을 모두 진정시키지 못한다. 다시 일어설 힘의 원천도 되지 못한다. 그러나 천천히 걸어보라. 걷고 싶은 길을 택해 걸을 때 즐거움은 배가 된다. 걸으면 ‘생각 새김’(rumination)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흙탕물이 흐른후 맑은 샘물이 흐르듯 회복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걷기는 생리적, 영적인 세계로 나가는 행동이다. 영혼이 맑아진다. 조용히 죽음의 문제도 영혼의 안식도 떠오른다. 삶의 무게를 떨어내고 새 힘을 얻는다. 그런 점에서 상실의 마음을 달래는 것이 걷기다. 걷기는 종교와 같다. 햇볕과 비바람, 푸른 바다를 만나는 만큼 머리가 개운해지고 땀방울이 흐르는 만큼 마음 속 찌꺼기가 날아간다. 모든 욕구가 자연의 양식을 따르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걸어라 그러면 내일이 기다려 질 거다>노년치유(elder healing)로서의 걷기는 하나의 트렌드다. 걷기 유행은 쇠약해진 신체, 경제적 불안전성, 급히 변하는 사회적 적응의 부담감, 고립감과 소외감, 즐거운 인생 만들기와 무관치 않다. 걷기의 경험이 우리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이렇다 보니 답은 간단하다. “바보야! 문제는 걷기야”(It's the walk, stupid)라는 말이 나올만 하다. 다시 말해 “게을러서 혹은 몸이안 따라줘서..” 등으로 자기 합리화로 변명 할 것이 아니다.
걷기는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중요한 요소이니 그렇다. 문제는 당신이 마음먹고 걸으려면 “어떻게(how)걸을까 염려하지 말고 왜(why) 걸어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는 일이다.
노년기 건강상의 이유 혹은 취미로 걷기에 관심을 가진다면 아래 3가지 관점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나는 걸을 수 있는가⇒ 신체적으로 정말 가능한가?.
둘째, 나는 걸으며 뭘 할 것인가⇒단순한 산책인가, 뭘 관찰할 것이 있는가?
셋째, 나는 걸으면서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는가⇒ 건강회복, 명상, 철학적 사유?그렇게 하다보면 당신은 먼 거리 도보 여행도 할 수 있다. 다만 1%의 실천의지가 필요할 뿐이다. “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라는 말이 있다.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넬료(Coelho)’의 말이다.
‘슈테판츠바이크(Stefan Zweig)’가 쓴《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평전》에서보면 에라스무스(Erasmus)는 자기 열정에 더욱 집착하면 할수록, 혹은 이성이 아닌 비이성적으로 살면 살수록 더 행복해진다고 했다. 각설하고 권고의 말을 한다면 늙어가면서 노약해지고 병들어 갈지라도 한 발자국씩 걷는 것은 삶의 숭고한 흔적이 되고 행복해진다. 걷기의 몰입, 성실함으로 목적지에 갈수 있다. 인생이 쉬울 리가 없지만 죽는 날까지 열심히 걸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실이 그렇다. 7080세대가 되면 어떤 도전에 직면 했을 때 “내 나이 10년만 젊었어도…” 하며 나이 탓만 할 때가아니다. 지금 나이 70, 80, 90, 아니 100세? 이때부터 진정한 인생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노벨문학수상 작가 ‘월리엄 포그너(Faulkner, 1897-1962)’는 자신의 책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As I Lay Dying, 1930)에서 “인간은 한낱 나그네 처럼 끊임없이 이 세상을 떠도는 존재에 지나지않는다. 움직임이 곧 삶이며 움직임을 멈추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 한다”고 했다.
영국의 노인심리학자 ‘브롬리(D. B, Blomley, 1990)’는 인생의 4분의 1은 성장하면서 보내고 나머지 4분의 3은 늙어가면서 보낸다고했다. 나 역시 빗대서 말하면 30년은 배우고 성장하면서 천방지축으로 지냈고, 30년은 먹고 살기에 바빴다.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위해 의자차지 하기에 마음 아파하면서 서울 근교의 산은 물론 전국에서 유명하다는 산을 거의 찾아다니며 걸었다. 그리고 지금 남은 30년은 건강한 노후, 즐거운 노년을 만들기 위해 걷는다.
아름답게 죽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적어도 죽는날까지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아툴 가완디(Autul Gawande, 2014)’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에서 인간은 독립적인 삶, 무너지는 삶, 의존의 삶, 도움 받는 삶, 죽어가는 삶으로 이어진다고 했는데 나는 아직 침대에 의존하지 않은 독립적인 삶을 유지해 간다..
<우 정 저>
- 좋은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