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 유배
*바빌론 유배는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①1차 유배 때는 : 597년에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긴을 사로잡아 갔고,
②2차 유배 때는 : 587년으로 시드키야가 사로잡혀 갔다.
⇒보통 바빌론 유배라 하면 제 2차 유배를 가리킨다.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은 : 바빌론제국의 느부갓네살 2세에 의하여
사상 유례없는 침략의 고통을 당해야 했다.
①도시 전체는 약탈당했고
②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고,
③왕족과 귀족들뿐 아니라 많은 일반 백성들도 학살당했다.
④또 수천 명의 지도층의 인물들이 포로로 붙잡혀 끌려갔다.
⑤포로 중에는 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 시드키야도 있었다.
⑥바빌론 병사들은 시드키야의 눈을 도려내어
장님을 만들었다.
⑦이처럼 바빌론에 의해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유배기간 : 기원전 587년 - 538년(약 50년간)
대상 : 지도급 인사들(왕족, 부자, 장인, 지식인)만 끌려가고,
가난한 하층계급은 남겨 놓았다.
어디로 : 바빌론 제국의 수도 바빌론 인근지역에 정착
⇒제국 내 여러 지역으로 분산되지 않고
대체로 한 지역에 정착.
⇒공동체 형성, 서로 통교와 협조 가능.
*바빌론 생활에의 적응 :
①생활은 나쁜 편은 아니었다(농사, 사업 허용).
②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노예생활이나 감옥살이 하지 않았다,
③상당히 많은 자유와 경제적 여유 : 자유롭게 이주,
신앙의 자유, 고유의 생활양식 유지,
*신앙의 자유 : 바빌론의 신들을 섬기도록 강요받지 않고,
야훼신앙 가능.
성전이 없었기에 공식예배는 바칠 수 없고,
회당식 예배 형태로 예배(기도-성서봉독-가르침).
⇒그들은 할례, 정결예식, 안식일을 철저히 지켰으며,
일정한 장소에 모여 제사를 지내지는 못했으나
주님께 기도와 찬미를 드리고 율법을 낭독하고 해석하였다.
이 모임 장소를 ‘시나고가’라고 하는데,
신약에 자주 나오는 ‘회당’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가장 심각한 문제 :
바빌론에서 많은 유다인들이 바빌론의 문화,
풍요로운 농작물, 번창한 산업, 웅장한 신전 등의
압력에 굴복하고 흡수당할 위험에 직면.
⇒ 바빌론 문화와 타협 위험.
*유배자들의 분위기 :
①적의 손에서 겪어야 했던 철저한 패배,
가족을 잃은 개인적인 비극과 향수,
가정과 수입원의 상실 ⇒고통의 원인.
②처음 몇 해 동안은 Ɵ께서 금방 귀환시켜 줄 것으로 생각.
③유배가 길어지면서 절망.
④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 파괴로 신앙이 크게 흔들림.
*새로운 시작 :
①Is 백성들은 유배되었을 때 신앙에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
‘왜 약속의 땅이 적의 손에 넘어가고
θ은 자신들을 버렸는가?’
②유배기간은 최악의 고난시대인 동시에
종교적으로 더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중요한 시대.
③예언자들은 사제들과 연계하여
두 가지 큰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 :
㉠하느님 야훼께 대한 신앙 회복 ⇒ “하느님께로 돌아가자”.
㉡자신들의 전통종교와 민족의 동질성을
포기하지 않도록 돌보는 일.
⇒대표적인 예언자 : 예레미야, 에제키엘, 제 2이사야.
④유배기간은 : 하느님께 대한 신뢰심을 회복하고,
자신을 반성하는 좋은 계기
⇒율법, 안식일, 할례 더욱 강조.
⑤페르샤의 고레스왕은 : 기원전 538년에 유배자들의 귀환과
새 예루살렘 성전 건축 허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