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이집트로 도망가다③
44,1-10 :
이스마엘이 유다의 총독 그다냐를 살해한 후 당시 유다에
실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요하난은
바빌론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예레미야를 포함하여
유다의 남은 백성 모두를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그들이 애굽으로 내려간 것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었다.
하느님은 당시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바빌론의 보복을 두려워하지 말고
유다에 머물러있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여기 유다인들이 믹돌과 다바네스와 놉 그리고 바드로스 지방에 거주했다는 것은
애굽으로 내려간 유다인들이 여러 지역에 분산하여 정착하였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하느님은 먼저 애굽에 거주하고 있는 유다인들에게
예루살렘의 황폐함을 상기 시키셨다(44:2-3).
그들은 하느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신대로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것을 목격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황폐함이야말로 그들로 하여금 불순종하는 자들이
받게 되는 심판이 무엇인지 가장 확실하게 교훈해 줄 수 있었다.
하느님은 유다가 멸망당하는 것을 윈치 않으셨기 때문에
예언자들을 그들에게 부지런히 보내심으로
가증한 일로부터 돌이키기를 권고하셨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결국 그들은 하느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은 하느님의 選民으로서 세계 어떤 민족도 소유할 수 없었던
성전을 소유하고 있는 복된 자들이었지만 우상 숭배로 인하여 성전뿐만 아니라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이 황폐해졌다(44:4-6).
유다는 애굽에 있어서는 안 될 자들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들이 애굽에서 피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죄로 인한 것이다.
이처럼 그들이 지금 살고 있는 현실 자체가 그들의 죄인 됨을 말해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애굽에서도 또 다시 우상을 숭배함으로 스스로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탄식할 일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그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하신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그들의 죄악은 책망에서 그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도 선조들처럼 하느님의 오래 참으심을 멸시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악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그들이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오늘까지도 뉘우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내린 가르침과
계명에 따라 걷지도 않았다.(10절)”
44,11-14 :
하느님은 교훈과 권고의 말씀을 무시하고
계속 악을 행하는 유다에게 심판하실 것을 선언하셨다.
하느님은 유다를 끊어버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로 인하여 하느님은 회개할 줄 모르는 예루살렘을 심판하셨던 것처럼
동일한 죄를 범하고 있는 애굽에 있는 유다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이와 같은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그들은 애굽 땅에서 엎드러질 것이며
칼과 기근으로 망하게 될 것이다.
유다는 바빌론의 보복을 피하기 위하여 하느님을 거역하면서까지 애굽으로 왔지만
결국은 그들이 범한 불순종으로 인하여 그곳에서 망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할 대상은 바빌론이 아니었고
하느님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왜냐하면 그들이 바빌론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죄인들을 끝까지 추적하시는 하느님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44,15-20 :
여기 “자기 아내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줄을 아는 모든 남자”란
자기 아내가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을 묵인해 주고 있는 남편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15절의 의미는 우상숭배자들과 우상숭배를 묵인해 주는 자들
모두가 예레미야에게 말했다는 의미다.
이것은 당시 애굽에 정착하고 있던 유다인 모두를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예레미야에게 우상숭배로부터 돌이키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겠다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행하던 대로 우상숭배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계속하여 “그 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다(44:17)”라고 말함으로
하느님을 경외하였을 때에는 재난을 당하였지만
우상숭배를 하였을 때는 형통했다고 말했다.
애굽에 정착하고 있는 유다는 총체적으로 부패하였다.
하늘의 여신을 숭배하는 여인들은 자신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남편들이 그것을 허용했기 때문이라고 예레미야에게 말했다(44:19).
이처럼 유다가 총체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해 주셨을지라도 그들은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44,20-23 :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는 유다에게 또 다시 권고의 말을 주었다.
물론 이 권고조차 그들이 들을 것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끝까지 권고의 말을 준 것은
그들이 듣고 회개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었을 것이지만
또 그들로 하여금 핑계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자신이 불순종한 것은 듣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때조차 스스로를 돌아보기 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을 원망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더욱 구원의 길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말씀을 위탁받은 자들은 사람들이 듣지 않을 것을
알고 있을 때조차 말씀을 전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왜냐하면 말씀은 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즉시 응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후에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44,24-30 :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애굽에 살고 있는 유다인들에게 주신 말씀은
“그들이 말한 것을 그대로 시행하라”는 것이었다.
즉 그들은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우리가 서원한 대로 반드시 이행하여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전제를 드리리라(44:25)”고 말했었다.
이것은 그들이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끝까지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셨다는 의미다.
이처럼 유다는 스스로 마음을 완고케 함으로 더 이상 애굽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 없게 되었다.
“…온 이집트 땅에서 어떤 유다 사람이라도,
′주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이라고 하면서
입으로 내 이름을 더 이상 부르지 못하게 하겠다.(44:26)”
유다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그 구한 것을 응답해 주신다는 약속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본문은 그들이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하느님을 떠나 우상에게 가서
우상을 숭배하기로 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더 이상 주님의 사심으로 맹세할 수 없도록 하신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들이 마음을 완강하게 함으로 인하여 받게 된 하느님의 진노하심은
애굽에서 칼과 기근에 전멸되리라는 것이다(44:27).
하느님은 이와 같은 진노하심이 반드시 그들에게 임할 것이라는 것을
확증시켜 주시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증표를 주실 것을 말씀해 주셨다.
“이제 내가 유다 임금 치드키야를 그의 목숨을 노리던 원수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손에 넘겼듯이, 이집트 임금 파라오 호프라를 그의 원수들 손에,
그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 손에 넘겨주겠다.(44:30)”
시드기야는 끝까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음으로
바빌론 왕 느브갓네살에게 포로로 잡혀갔다.
마찬가지로 애굽에 거주하는 유다인들이 끝까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애굽의 파라오를 원수의 손에 붙이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애굽의 파라오가 원수의 손에 넘기는 것을 볼 때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모든 말씀이 하느님의 말씀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특별히 하느님께서 유다의 죄를 책망하시기 위하여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애굽 왕 파라오를 원수의 손에 붙이신 것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부패할 때 자신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멸망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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