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열왕기 공부

솔로몬이 파라오의 딸과 혼인하다(3,1-3)

윤 베드로 2017. 3. 5. 07:56

Ⅰ-9. 솔로몬이 파라오의 딸과 혼인하다(3,1-3)

 

1 솔로몬은 이집트 임금 파라오와 혼인 관계를 맺었다.

그는 파라오의 딸을 맞아들여, 자기 집과 주님의 집과 예루살렘을

에워싸는 성벽을 다 짓기까지 그 아내를 다윗 성에 머무르게 하였다.

2 주님의 이름을 위한 집이 그때까지 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은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

3 솔로몬은 주님을 사랑하여, 자기 아버지 다윗의 규정을 따라 살았다.

그러나 그도 여러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향을 피웠다.

 

3,1-3 :

본문은 솔로몬의 정권 초기의 모습을 말해 주고 있다.

그는 이집트왕 파라오와 동맹을 맺었다.

이것은 당시 이집트의 쇠퇴를 의미하고 이스라엘의 강성을 의미한다.

이집트왕 파라오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자기 딸을 솔로몬에게 주어

그와 혼인 관계를 맺었고 또한 혼인 선물로 게셀까지 주었다.

솔로몬이 파라오의 공주와 결혼한 것은 일반적으로 정절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율법에서 이방인과 혼인을 금한 것은 가나안 사람과

혼인하지 말라는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山堂은 제사와 기도를 위한 장소로서 야외에 있는 성소를 말한다.

이것들은 산과 골짜기 그리고 성읍 등에 산재해 있었으며

대개의 경우는 제단만 갖추고 있었지만

어떤 산당은 제단 옆에 성소도 마련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그들 가운데 성막을 만들고

모든 제사를 그곳에서 드렸고, 가나안 정착 후에는 그 성막을

실로에 세움으로 여전히 그곳이 예배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실로가 중앙 성소의 기능을 상실한 것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계약궤를 빼앗긴 후부터다.

다윗이 중앙 성소의 기능을 회복하고자 계약궤를 아비나답의 집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왔지만(2삼무6장),

예루살렘이 중앙 성소로서 기능을 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배경 가운데 백성들은 산당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산당 예배는 그 자체가 율법에서 허락지 않는 것이었고,

이처럼 율법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실제로 산당 예배는 가나안 종교와 혼합된 형태로 변질 되어

이스라엘을 부패케 하였고, 이런 관습은 솔로몬이 성전을 지음으로

중앙 성소가 마련 된 이후로도 백성들 가운데 계속 되어

이스라엘을 타락시키는 온상 역할을 했다(신명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