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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9. 유다교 당파-1 / 이스라엘 당파 - 신은근 신부

윤 베드로 2016. 8. 18. 20:06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당파와 자주 부딪치셨다.

표 주자는 사두가이파와 바리사이파였다.

 

밖에도 에세네파와 헤롯파, 열혈당이라 번역된 젤롯Zealot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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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가이파는 제사장 조직으로 정치화 되어 있었고

리사이파는 율법에 매진하는 이들이었다.

 

헤롯파는 헤롯 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었고 젤롯은 로마에 무력으로 항거하던 단체였다.

 

예수님 활동은 이들과의 관계속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사두가이파는 솔로몬 시대 대제사장 차독Zadok의 후예로 자처했다.

 

그는 여부스족 사제였지만 다윗에게 발탁되어 이스라엘 사제직을 수행했다.

그만큼 뛰어난 인물이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할 때차독의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후 다윗 자리를 노리는 왕자의 난에서 차독은 솔로몬을 지지한다.

예언자 나탄과 솔로몬의 생모 밧 세바와 손잡았던 것이다.

 

마침내 대제사장 에브야타르 물리치고 새로운 대제사장이 된다(1열왕 2,35).


솔로몬 치세에서 차독 가문은 제관 계급의 요직을 독식했고 직계가 아니면 대제사장이 될 수 없었다.

 

후손들은 실권을 장악했고 수 세기 동안 예루살렘 성전의 운영권을 쥐고 있었다.

이들이 사두가이파의 원형이다.

 

기원전 2세기 마카베오 가문이 유다 독립을 쟁취하자 제관 계급도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된다.

 

성전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웠던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사두가이파 사람들이라 불리게 되었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사두가이파의 출현이다.


이들은 모세오경만 성경으로 받아들였고 예언서와 지혜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사후세계와 영적 존재도 부정했고 현실적인 것이 아니면 모두 거부했다.

 

종교적 실세였기에 유다 최고법정인 산헤드린을 좌우했고 헤롯 왕권과도 거리를 두며 기득권을 지켰다.


로마인과는 쉽게 적응해 좋은 관계를 형성했다. 하지만 백성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오히려 회당을 통해 민중을 장악하고 있던 바리사이파가 더 인기 있었다.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이 파괴되자 사두가이파는 힘을 잃는다. 활동 무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공관복음에는 이들이 예수님께 부활에 관해 질문하는 장면이 있다.

일곱 형제와 혼인한 여인이 있었는데 죽은 뒤 부활한다면 누구 아내가 되겠느냐고 물은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형이 자식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의 대를 이어주는 풍습이 있었다.

 

예수님 답변은 간단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은 혼인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신은근 신부

 

출처 : 평화와 착함
글쓴이 : 착한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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