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걸림돌이 된 예수의 십자가
"유다인들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따름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은 유다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일입니다.
그러나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할 것 없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가 곧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힘이며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1고린 1, 22-24).
일 년 중 교회에서 성사를 집전하지 않는 날이 있다.
그 날은 미사 성제도 봉헌하지 않고 어떠한 성사도 거행하지 않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만을 묵상하며 보내는 바로 성금요일이다.
우리는 성금요일 말씀의 전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당하신 수난을 듣게 된다.
구약의 이사야 예언자는 "수난당하는 야훼의 종의 노래"를 부르며
장차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당하실 수난과
또 그로 말미암아 하느님으로부터 받을 영광을 예언한다(이사 52, 13-53, 12).
그리고 신약의 사도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느님의 아들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수난을 통해서
하느님께 복종하고 마침내 우리 인간들의 구원을 이룩한
대사제라고 말한다(히브 4, 14-16; 5, 7-9).
그리고 요한에 의한 수난기에서는 구약의 예언이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실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1. 십자가의 역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시고 병든 자를 낫게 해주시고
죄인을 용서하시며 또 하늘 나라의 신비를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분을 하느님의 아들로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분을 때리고 천대하여 마침내는 십자가형에 처하는 죄악을 범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는 수난이야말로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는 것이 되었고,
수난과 십자가상의 죽음을 통해 온 인류가 구원의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수난의 때가 되었을 때 예수님은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신다.
산헤드린 재판에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요?" 하는 물음에
예수님은 분명히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너희가 말하였다."(루가 22, 70)라고 대답하심으로써
당신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확실히 드러내셨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수난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더구나 예수님과 가까이 지내고 삼 년 동안이나 따라다니던 제자들마저도
예수께서 왜 그렇게 처참하게 죽으셔야만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께서 체포되었을 때
다 도망 가고 또 베드로는 세 번이나 배반까지 하였다.
2. 죽음과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
진정 십자가의 죽음은 그들에게 신앙의 걸림돌이 되었다.
그 당시 십자가형이란 가장 잔인하고 지독한 형벌이었다.
당시 로마 제국에서 실시한 십자가형은 로마 제국에 반역한 노예들을 처형시키는 것이었고,
한편 유다인의 율법에서는 간음한 사람이나 신성 모독죄를 범한 사람을
돌로 쳐 죽인 후에 그 시체를 나무에 매달아
그들이 하느님이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로마법에 따라 십자가형을 하기 위해선 우선 매질을 했는데
그것은 온몸에 피가 날 때까지 매질하여
그 처형받을 사람이 실제로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때
빨리 죽게 하여 그 고통을 덜어 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매질이 끝나면 다음 절차로서 죽을 사람이 처형장까지 십자가 나무를 메고 갔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나무를 메고 골고타 언덕까지 가시는 동안
세 번이나 넘어지셨는데 이것을 보면
그 매질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
3. 구원과 축복의 상징인 십자가
그러나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처럼 예수님이 이러한 고통을 당하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에 사뭇 찔리고 우리의 악 때문에 으스러진 것이다.
진정 예수님이야말로 그 수난으로 말미암아
많은 이를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를 몸소 맡아 지신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셨습니다…."(2, 8-9)라고 찬양하고 있다.
정말 십자가의 이치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오로는 "유다인들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따름입니다."(1고린 1, 22-23)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다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에게는 그분이 곧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힘이며 하느님의 지혜라고 한다.
이렇게 십자가가 갖는 의미는 너무도 크고 깊다.
그러므로 이제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이 아니라 축복과 구원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그리스도 신자들은 예수님을 모셨던 십자가를 경배한다.
역사상 십자가를 경배하기 시작한 것은
4세기 초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정적이었던
리치니우스와의 밀비우스(Milvius) 다리 전투에서
"십자가 표로써 승리(in hoc signo vinces)"를 거둔 이후부터였다.
그와 관련하여 또한 4세기 초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모친 성녀 헬레나가
예루살렘의 골고타 언덕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발견했는데
이 때부터 십자가 경배가 촉진되었다.
이제 십자가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의 상징이며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진정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수난을 통해 영광을 받았듯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러러보며 우리에게 매일 지워지는 십자가를 지고
따름으로써 십자가의 영광, 곧 부활을 향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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