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마르 6,30-44 ; 마태14,12-21,루가9,10-17,요한6,1-15)
(1). 제자들의 선교 보고(마르 6,30-34)
30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31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32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33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34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언제, 어디서 : 29년 2-3월, 코라진⟶갈릴래아호수⟶베싸이다>
*파견된 제자들이 선교 사명을 수행하고(현장실습?) 돌아와 예수께 보고.
→ 함께 잠시 쉬기 위해 → 한적한 곳으로 갔지만
→ 군중들이 몰려와서 쉴 수 없게 됨.
(오랫만에 Je의 칭찬, 위로 → 군중들 때문에 무산 위기?).
⇒참 목자이신 Je께서는 군중들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들과 같은 그들을 측은히 여기시며 가르침을 주신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은”(34절) :
우리는 목자 없는 양들이 얼마나 불쌍한지를 잘 모른다.
양은 牧者없이는 ①살아갈 수 없는 동물.
②어디에 풀이 있는지도 모르고,
③한순간도 평화롭게 지낼 수 없다.
⇒목자 없는 양들이란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들과 같은 존재.
※양의 습성 :
①양은 방향 감각×, 歸巢本能×,
②무리를 이탈한 양은 찾아오지도 ×
③최소한의 자기방어 수단 ×,
(날카로운 뿔도, 발톱도, 빠른 다리도, 보호색조차 없다).
④서로 부닥쳐 불이 붙을 정도로 미련하다
⇒ ∴ 염소를 함께 방목.
⇒ ∴목자 없이는 살아가기 어렵다.
※이스라엘에서 목자 : 지도자, 특히 王을 가리킨다.
참된 목자이신 Je께서는 : 지치고 피곤한 당신과 제자들의 쉼이 방해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군중들을 늦게까지 가르치신다.
(2).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 빵의 기적(마르 6,35-44)
제 자 |
예 수 |
군 중 | ||||
배경 : 예수 일행은 휴식을 위하여 한적한 곳으로 갔으나(배를 타고), 군중들이 몰려와 쉴 수 ×. ⇒Je는 군중들을 보시고, 측은히 여겨 가르침을 주신다. | ||||||
저녁때가 되어 외딴곳, 늦었으니 군중들을 보내자고 요구. |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라고 말씀. |
|||||
사다가 먹이라는 줄 알고 다시 묻다 : 37절, “저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 어치나 사다가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 ①도저히 불가능한 일 ②말도 안 된다는 반응. |
“지금 가지고 있는 빵이 몇 개냐?” |
|||||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
군중들을 풀밭에 앉혀라 |
백명씩, 50명씩 모여 앉히자. | ||||
빵과 물고기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①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들에게 나누어주어라. ②물고기도 나누어 주셨다. ⇒ 성찬의 예시 |
그러자 군중은 배불리 먹었고, 남은 것 12광주리. 먹은 사람은 남자만 오천 명.
| |||||
가르침 : ①기적의 위대성 - 풍족히 먹이시는 기적, ②나눔의 중요성 -모든 사람이 가진 것을 조금씩 고루 나누어 갖도록 마음을 쓴다면, 우리 주위에 배고픈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배불리 먹고도 남을 것이라는 가르침. |
*빵의 기적은 : 네 복음서에 모두 나오는 유일한 기적으로,
이 이야기가 초대교회에 그만큼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말.
⇒이 사건은 성체성사의 상징.
카타콤바 등지에서 발견된 빵과 물고기 그림들은
성체성사를 상징하는 것.
*참 목자이신 예수님은 군중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주시기 위해
빵의 기적을 행하신다.
예수님께서는 :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도 5천명이나 되는 이들이 배불리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을 만큼 풍족히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셨다.
*이 기적은 교회 안에서 지금까지 놀라운 체험으로 남아 있다.
Je의 말씀을 믿고 빵을 나누었을 때의 풍요로움이 이 정도로 컷다면,
특별히 빵의 형상 안에 현존하시겠다는 당신의 말씀을 믿고
주님의 몸인 성체를 나누었을 때의 풍요로움은
상상할 수가 없기 때문.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부터 이 빵의 기적을 성찬의 예시로 본다.
*저자의 편집 의도 : 예수님은 엘리사보다 훨씬 탁월한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
⇒엘리사는 보리떡 스무개로 백명을 먹였지만(1 : 5)
(☞열왕기 하 5,42-44 ; 백 명을 먹인 기적),
예수님은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신다(1 : 1,000).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 어치나 사다가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묵상 :
우리는 제자들의 태도에서 몇 가지 놀라운 것을 발견.
①자기들과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에 당황하는 태도.
②자기들이 갖고 있는 것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는 태도.
③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빵의 의미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Je이 그들에게 먹일 빵은 : 단순히 물질적인 빵 ×,
그 빵은 곧 당신.
그런데 제자들은 이 점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
즉, 생명의 빵이신 Je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 빵을 알아보지 ×,
이것이 제자들의 한계이며 영적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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