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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종교개혁

윤 베드로 2014. 6. 11. 19:22

루터의 종교개혁

 

1). 시작과 영향 :

 

1517년 독일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은수사會의 수사신부이며

         성서학 교수였던 마르틴 루터는 대사 남용에 항의하면서

         대사 교리의 재정립을 제의하기 위해

           그의 교구장(주교)과 동료 교수와 신부들에게 편지를 보냈었다.

 

⇒이 편지에는 : 유명한 ‘95개조항의 신학명제’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명제는 : ①전통 신앙의 基底를 뒤흔들었고

                   ②그리스도교를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분열시키는

                            종교개혁시대(1500-1650)를 열었다.

 

⇒그래서 ①프로테스탄트에서는 독일의 루터의 종교개혁을 위시하여

               ②스위스에서는 쯔빙글린의 종교개혁칼빈의 종교개혁,

               ③영국에서는 國敎會(성공회)가 탄생하였다.

 

2). 루터라는 인물 :

     ․루터는 1483년 독일에서 태어났고,

     ․성 아우구스티누스 은수사회에 들어가, 1507년 사제로 서품되고,

     ․신학연구 활동을 시작한 경건한 신앙인이고, 모범적인 수도자,

                   열성적인 사목자였다.

 

3). 루터의 주장 :

루터는 성 베드로 대성전 재건을 위한 ‘전대사’의 시행과정에서

           드러난 대사 남용에 충격을 받고,

             1517년에 대사시행에 관한 항의 편지와 대사의 남용을 논박하는

           신학명제(95개 조항)을 작성하여 교구장과 고위 성직자에게

             보냄으로서 대사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이는 그리스도교 세계의 분열의 원인이 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개신교의 기원을 루터의 종교개혁에 두고 있다면

           그 시발점은 이 ‘대사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루터는 사목자로서 설교를 통해 대사교리와 구원론을 설명하면서

              대사 설교가들을 비판하며, 신자들에게 대사 남용의 위험을 경고했고,

  ․또 “우리는 원죄로 말미암아 고질병에 걸려있기에

                 어떠한 선행도 할 수 없으며, 참다운 보속이란

                 실행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가톨릭 교리를 배척하였고,

  ․구원에 대해서 “인간은 義로와 질 수 없고 선행도 필요치 않다”

               말함으로서 오직 신앙만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고백성사, 자선사업, 덕행, 고신 극기 등이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아무런 조건 없이 그리스도의 자비,

                   이에 대한 신뢰만 필요하다고 하면서

                   “우리를 구하는 것은 선행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순수한 자비만이 우리를 구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1518년에 이르러 루터의 그러한 주장은 신학자들에 의해서 반박을 받았고,

                  그는 수도회 참사회에 소환을 받아

                  로마에서 파견된 추기경의 심문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 1518년 11월에 반포된 대사에 대한 교회 입장과

                     1520년 6월에 공포된 ‘교황교서’에 불복하여

                     1521년 1월 3일에 파문을 받았다.

 

3). 대사 발부에 관해서(大赦 논쟁) :

․가톨릭 교회에서 대사라는 것은 : 인류구원 과정에 있어서 보조수단으로

             교회가 간직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인들이 쌓아 놓은

             보속의 보고에 있는 교회의 권리로

             각 영혼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대사는 : 전대사(죄인이 받아야 할 벌을 전부 없애주는 것)

               한대사(벌의 일부분을 없애주는 것)로 나눈다.

                  이러한 대사제도는 초대교회 박해 시대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교회의 보속 규정에 의하면 : 죄인은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일정기간 자신의 죄를 補贖하는 속죄기간을 거쳐야

           그에 해당하는 벌을 사면 받는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박해기간 동안에 이런 규정을 지키기가 어려웠고,

                후에 신자들이 다시 교회에 돌아오는데 장애요소로도 작용하였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에 주교들은 속죄기간을 단축하여 주기도 했는데

                이 속죄기간 단축이 대사의 기원을 이루게 되었다.

 

․중세에 이르러 속죄기간 단축대신 속죄를 사면하는 관습이 생겨났다.

             이에 속죄 규정서가 나왔는데, 이른바 대사의 원형이 되었다.

  십자군 운동이 일어나면서 대사는 십자군에 참가하는 자나

              십자군을 위하여 재산을 기부하는 자에게 주어졌는데,

              이러한 대사는 십자군 운동이 끝난 후에도

              일정한 공익사업을 위해 기부하는 자에게 대사가 주어졌다.

 

⇒이는 중세 말에 ‘대사 설교가’라는 사람들이 나타나 대사를 남용하면서

           소위 “免罪符” (대사를 뜻하는 라틴어의 원 뜻을 잘못 옮김으로써 생긴 말이다)라고

           알려진 증서를 발매했는데,

           이것이 바로 루터의 95개항의 ‘항의 명제’가 나온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 대성전의 재건을 위한 대사 발부

              종교개혁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는데

              당시 교황 율리오 2세는 1506년 로마 대성전의 재건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 레오 10세와 함께 전대사를 반포하고

            신자들의 재정지원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당시에 대사의 반포가 빈번했고,

            대사 선전자들 주위에는 탐욕이 뒤따랐다.

            그들은 이 대사를 기회로 잡아 돈벌이로 이용하였고,

            그 폐단이 사람들 사이에서 비난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15세기 중엽에 이르러 대사는 교회의 수입원으로 오용되어

               설교가들은 모금의 성금을 위하여

                대사의 효과를 과대하게 설명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죄의 잘못과 죄와 벌 사이의 구분이 불투명해졌고

            무지한 신자들은 대사를 구원과 혼동하여 대사 부여를 약속하는

            고해성사 표를 곧 천국 통행증으로 오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신자들은 돈이면 구원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대사교리가 중세말기 때 지배적인 견해였고,

               여기에 근거한 대사시행과 대사발부의 행위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교회는 공식적으로 이러한 과장된 교리를 밝힌 적은 없다.

    이는 교회가 언제나 정통에 맞는 교리를 가르쳐 왔음을

                      상기시켜주고 있다고 하겠다.

 

4). 대사를 얻기 위한 조건 : 대사를 얻기 위한 조건들은

                대사부라고 알려진 고해성사 표에 기입되어 있었다.

그 조건들은,

     ①신자는 자신의 선행을 수행해야 하는데,

                자기의 경제사정과 사회적 신분에 맞는 금액을 지불한다.

    ②신자는 고해성사를 받아야 하는데,

                   고해 신부는 교황에게 유보된 죄를 赦할 수 있는 특권을 받는다.

   ③신자는 赦罪를 받기 위하여 반드시 자기 죄에 대해

              진정으로 통회해야 한다.

 

5). 결과 : 대사교리는 잘못됨이 없다. 단지 대사발부의 남용이 문제였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잘못된 대사 시행에 대한 개혁의 소리가 높았고,

                 대사에 대한 본래의 의미를 재확인하여

                 공식적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볼 때

            루터가 대사교리에 대한 토의를 제기하기 위해 ‘95개항의 명제’를

             발표한 사실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건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루터의 교리는 정통에 위배되었다.

    그의 교리는, ①인간의 의로움은 인간의 의지가 필요없고

                                       신앙(은총)만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②교회의 교계제도를 부정하고,

                         ③인간의 이성의 개입을 배격하였다.

 

이러한 영향으로

           ①구원 예정설(칼빈),

           ②신앙의 기준은 성서다는 것(칼빈 자신의 해석만이 옳다고 주장),

           ③로마 교회와 분열하는 영국 교회 등이 출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