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공부/사도행전 공부

펠릭스 앞에서 해명하는 바울로(23,10-27)

윤 베드로 2023. 3. 17. 07:40

10 그 때에 총독이 바울로에게 눈짓을 하여 말을 해 보라고 하자 바울로가 이렇게 답변하였다. "저는 각하께서 여러 해 동안 이 나라 전체의 재판권을 행사해 오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쁜 마음으로 제 자신에 대한 사실을 각하께 해명하겠습니다. 11 각하께서도 확인해 볼 수 있는 일입니다만 제가 순례하러 예루살렘에 올라 온 지는 이제 열 이틀밖에 되지 않습니다. 12 그 동안에 성전이나 회당이나 거리에서 어느 누구와도 논쟁을 벌인 일도 없으며 군중을 선동한 일도 없습니다.

13 그러니 이 사람들은 지금 저를 고소하면서도 각하께 그 증거는 댈 수 없을 것입니다. 14 다만 제가 각하 앞에서 시인하는 것은 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그리스도교를 따라 우리 조상의 하느님을 섬기고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는다는 사실입니다. 15 그리고 저를 고소하는 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하느님을 믿으며 올바른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다 같이 부활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16 그래서 저도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 언제나 거리낌 없는 양심을 간직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17 저는 제 동족에게 구제금을 전달하고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러 여러 해 만에 고국에 돌아 왔습니다. 18 제가 정결예식을 행하고 나서 그 일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이 성전 안에서 저를 보기는 하였지만 제가 군중을 선동하거나 소란을 피운 일은 없습니다. 19 그 자리에는 다만 아시아에서 온 유다인 몇 사람이 있었는데 저를 걸어 고소할 일이 있다면 그들이 직접 각하 앞에서 고소 했어야 할 것입니다. 20 그것도 아니라면 제가 예루살렘 의회에 불려 갔을 때 이 사람들이 저에게서 무슨 죄목을 찾아 냈는지 말해 보라고 하십시오. 21 다만 저는 그들 앞에 서서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문제로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재판을 받고 있소' 하고 한 마디 소리쳤을 뿐입니다." 22 펠릭스는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파견대장 리시아가 내려 온 다음에 바울로의 사건을 심의하겠다고 하면서 재판을 연기하였다. 23 그리고 백인대장에게 바울로를 지키되 어느 정도의 자유를 주고 친지들의 뒷 바라지를 막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24 며칠이 지나서 펠릭스는 자기 아내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로를 불러 내어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신앙에 관하여 이야기를 들었다. 펠릭스의 아내는 유다 여자였다. 25 바울로가 정의와 절제와 장차 다가 올 심판에 관해서 설명하자 펠릭스는 두려운 생각이 들어 "이제 그만하고 가 보라. 기회가 있으면 다시 부르겠다" 하고 말하였다. 26 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바울로에게서 뇌물을 받아 내려는 속셈으로 바울로를 자주 불러 내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27 두 해가 지난 뒤에 펠릭스 총독의 후임으로 보르기오 페스도가 부임하였다. 그런데 펠릭스는 유다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바울로를 감옥에 그대로 가두어 두었다.

 

*바울로의 변론도 : 만만치 않다. 바울로의 논증은 명확하다.

바울로 역시 간단하게나마 총독에 대한 인사말을 하지만

                데르딜로의 인사말과는 달리 추켜올리지 않는다.

폭동 선동죄에 대해서는 : 예루살렘에 올라온 지

             겨우 열 이틀 밖에 되지 않았음을 청중들에게 상기시킨 후,

             이 짧은 기간에 어느 누구와 논쟁을 벌이거나 군중을 선동한 일이 없다.

또 성전에 들어간 것은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고

         나지르의 정결 예식을 합당하게 바치기 위해서지, 성전 모독이라는 말은 터무니없다.

바울로는 자신이 고발당한 진짜 이유는 :

                    죽은 자들에 대한 부활 교리 때문이라고 밝힌다.

        ⇒사실 이 교리는 유다교의 가르침에도 있다.

바울로는 누구든지 자신의 이같은 논리적이고 일관된 증언에

                    이의가 있는 사람은 총독 앞에 당당하게 나서라고 요청한다.

 

원고와 피고의 증언을 들은 총독은 : 판결을 유보하고,

                바울로를 석방시켜 주지 않는 대신  그의 수감생활을 좀 편안하게 해주고

                 가까운 친지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한다.

 

*바울로가 : 58년 오순절쯤 가이사리아 총독부에 도착했을 때

                   당시 총독은 펠릭스였다(52-60년 재직).

 

펠릭스 총독은 : 노예 출신이었지만 클라우디우스 황제(41-54년재위)

                환심을 사서 팔레스티나 총독이 되었으나

                 천성이 천박한지라 바울로에게 뇌물을 바라면서

                  두 해 동안이나 재판을 미루었다.

 

펠릭스는 : 바울로가 유대인 광신주의의 희생물임을 알았고,

                      그리스도교에 대하여도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자신의 삶은 설교자의 말이나 자신의 양심이 요구하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그러나 펠릭스는 : 로마 관리로서 그의 권한 안에서

                  바울로를 적대시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고

                  감옥에서 어느 정도의 자유를 주었으며 그의 친지들과의 접촉을 허락했다.

 

이 사실은 : 유대인들의 불평과 비난에 대해 로마 당국의 대표자들이

                       진실한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 후임 페스도 총독(59-62년 재직) 역시 : 유대인들의 요구에 따라

               바울로를 예루살렘으로 압송코자 했기 때문에,

   바울로는 로마 시민권을 발동해서 총독의 재판을 불신임하고

                   로마로 가서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노라고 상소했다.

                   그래서 바울로는 60년 가을 로마로 압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