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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멸망

윤 베드로 2021. 11. 26. 17:27

1. 이스라엘의 멸망과 처참한 운명의 유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뉘어 혼란 속에 빠져 있을 때,

      티그리스강 상류의 동쪽 연안지대에서는 초강대국 앗시리아 제국이 건설되고 있었다.

앗시리아 제국의 팔레스타인 침공은 기원전 1,100년에서 633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 시기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하여, 멸망의 길로 치닫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앗시리아 제국은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에 대하여 여러 번에 걸쳐 공격을 하였다.

이 와중에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 사마리아는 앗시리아의 3년에 걸친 공격 끝에

             침략자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기원전 722).

이렇게 북이스라엘의 역사는 끝나고 말았다.

멸망한 북이스라엘에는 異民族이 옮겨와 살았고, 앗시리아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러한 격동 속에서 유다의 운명은 어찌되었을까?

앗시리아가 활동할 당시 남유다의 왕은 히스기야였다.

                   그는 다른 왕들처럼 바알 을 따르지 않고 하느님을 섬겼다.

이에 히스기야왕은 하느님의 도움으로 앗시리아의 엄청난 공격을 막아내고 승리하게 된다.

때문에 유다는 북이스라엘처럼 앗시리아에 멸망당하지 않고 살아남게 되었다.

 

그러나 정세의 변화는 어지러웠고, 기원전 650년경에는 그때까지 앗시리아의 지배하에 있던

          바빌로니아가 점점 세력을 키워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하게 된다.

과연 바빌로니아 제국의 등장은 유다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당시 주변 정세를 살펴보면,

신흥 바빌로니아 제국의 등장으로 앗시리아의 세력이 쇠퇴하자,

그것을 두려워한 이집트가 바빌로니아에 대항하여 앗시리아와 동맹을 하게 된다.

이 사이에 낀 유다 왕국은 복잡한 정치적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집트와 동맹하여 바빌로니아에 대항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바빌로니아와 화해하여 대국 이집트에 대적할 것인가?

   유다는 왕국의 존립을 놓고 일생일대의 선택을 해야만 하였다.

   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의 처참한 운명이었다.

 

2. 예언자 예레미야의 등장

 

이러한 혼란 속에서 홀연히 나타나 절망을 누르고 고난의 길을 걸은

          예언자가 있었는데, 바로 유다 왕국의 예레미야였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근교의 제사장 집안에서 태어나 생애의 대부분을 예루살렘에서 보냈다.

이집트일까 아니면 바빌로니아일까라는 선택 속에서,

            예레미야는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재위605-562)

            유다 왕국을 위하여 하느님이 사용할 왕이라고 예언하고, 이집트와 동맹을 맺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주장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커다란 반감을 샀다.

결국 예레미야는 배신자로 고발당하고 지하의 흙탕물에 잠기게 된다.

기원전 605, 드디어 대국끼리의 격돌이 현실로 나타났다.

   바빌로니아왕 느부갓네살과 이집트 느고왕이 격돌하는데,

          이것이 유프라테스강 주변에서 발생한 카르케미쉬 전투이다.

   결과는 느부갓네살왕의 승리로 끝난다.

바빌로니아 군대는 지중해의 해안을 따라 평야 쪽으로 침공해 왔다.

   모든 것이 예레미야의 예언대로였던 것이다.

 

3. 유다도 멸망

 

유다 왕국의 여호야킴왕 시대에 바빌로니아가 침공하자

          여호야킴은 항복하고 조공을 바칠 것을 약속한다.

그런데 정세가 다시 변하게 된다. 이집트 느고왕이 세력을 회복하여 바빌로니아를 내쫒게 된다.

   이제 또 다시 유다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지금이야말로 바빌로니아의 지배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유다의 여호야킴왕은 상황을 뒤집고 이집트의 느고왕에게 붙었다.

그러나 이를 어쩌라! 여호야킴왕의 판단은

             결국 유다 왕국이 바빌로니아로부터 침략당하는 계기가 되었다.

드디어 태세를 재정비한 느부갓네살왕은 반역을 이유로

          즉시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을 침략하여 점령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예루살렘의 군사와 목공과 철공 등 1만여 명이 체포되어

    바빌로니아로 끌려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1바빌론 유배로 불리는 사건(기원전 598)이다.

이때 유다는 간신히 독립왕국의 체면을 지키는 것을 인정받게 되는데,

          이는 느부갓네살왕의 특별한 처분에 의한 것이다.

          예레미야의 예언이 그대로 적중한 셈이다.

이때 유다 왕국은 여호야킴왕으로부터 시드키야왕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시기였다.

   새롭게 왕이 된 시드키야는 이러한 굴욕을 참아내지 못하고 이집트와 동맹을 맺게 된다.

이에 느부갓네살왕의 노여움이 폭발하여 바빌로니아 군단이 예루살렘을 침공하게 된다.

   양국간의 격렬한 공방은 약 2년간 계속되었고, 유다 군대는 모두 힘을 다 쏟아 부었지만,

                결국 예루살렘은 함락당하고 만다.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지고, 거리는 일순간에 비탄에 잠기게 되었다.

   약탈이 곳곳에서 일어났고, 병사들은 체포되어 쇠사슬에 묶여 바빌로니아로 연행되어 갔다.

   이때 연행되어진 병사가 1-2만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2차 바빌론 유배이다.

열왕기에서 제2차 바빌론 유배에 대해 이제 남아 있는 것은

                  포도를 만드는 자와 농부뿐이었다라고 전하고 있다.

이제 남유다도 멸망하여 이스라엘은 완전히 역사의 뒷무대로 사라지고,

   또한 번성하였던 바빌로니아 제국도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에 의해 멸망당하고 만다.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성서 이야기/삼양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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