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4ㄴ-20
그때에 14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무릎을 꿇고 15 말하였다.
“주님, 제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간질병에 걸려 몹시 고생하고 있습니다.
자주 불 속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또 자주 물속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16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려가 보았지만 그들은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이리 데려오너라.” 하고 이르셨다.
18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 호통을 치시자 아이에게서 마귀가 나갔다.
바로 그 시간에 아이가 나았다.
19 그때에 제자들이 따로 예수님께 다가와,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0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오늘의 묵상
“지금 이 환시는 정해진 때를 기다린다. 끝을 향해 치닫는 이 환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지체하지 않는다. ……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오늘 독서에서 하바쿡 예언자는 민족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하느님께 말씀드립니다.
비록 유다 왕국이 잘못하여 바빌로니아를 하느님의 도구로 삼으신 것을 인정하지만,
악인이 의인을 처벌해도 되는가 하는 문제로 번민하다 하느님께 따졌던 것입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는 모두 스러질 것이며,
오직 의인들만이 ‘성실함’을 통하여 살게 되리라고 답하십니다.
이처럼 믿는 이의 삶에 근거가 되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의인의 성실함은, 화답송의 시편 저자가 노래하듯
“당신을 찾는 이들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성실함에서 비롯됩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하바쿡에게, 겉모습은 그렇지 않게 보여도 분명히 실재하는 당신의 성실함에 관한 환시를 주십니다. 따라서 믿는 이들은 정해진 때를 기다려야만 합니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지 못하여 의인의 성실함 대신 존재의 가벼움을 드러낸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아쉬움을 토로하십니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는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입니다(갈라 5,22 참조).
우리의 인내가 산을 옮길 수 있는 믿음으로 드러나도록 기다리시는 예수님의 인내가,
바로 의인의 성실함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며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모든 것이 다 지나가지만, 하느님께서는 변치 않으시는 분,
인내가 모든 것을 얻게 하리니, 하느님을 가진 사람은 아무런 아쉬움 없고, 하느님만으로 넉넉하도다.”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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