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2 복음 묵상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3-17
1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그를 찾아가셨다.
14 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면서 그분을 말렸다.
15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16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7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오늘의 묵상
요한의 세례는 죄를 씻는 일이었고, 죄를 씻는 것이 하느님을 만나는 일로 이해됩니다.
죄를 씻기 위하여 우리는 죄를 찾아내려 애씁니다.
고해소 앞에서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되돌아보는 일은 꽤나 아픈 일입니다.
고백하건대, 지난 과오를 진정으로 뉘우쳐서 아프기보다
그 과오 때문에 부끄러운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더 아픕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지만 세례를 받으십니다.
오늘 복음이 말하는 예수님의 세례는 ‘모든 의로움’을 이루는 일입니다.
예언자 시대부터 ‘의로움’은 하느님과 제대로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그 만남은 대개 계층 간에 벌어지는 갈등의 자리에서,
권력의 다툼 안에 희생된 약자들의 자리에서 더욱 강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시고 집중하시는 곳은 아픔과 슬픔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에서, 신앙인들이 일상에서 만나고 웃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되돌아봅니다.
의로움을 이루려고 만나는 자리가 있을 수 있고, 죄를 씻기는커녕 서로의 탓을 곱씹느라 죄 속에 허덕이는
피폐한 영혼들을 맞닥뜨리는 자리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끝은 이렇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이사야서에 따르면 그 아들은 다른 이의 죄를 대신 짊어져도 말 한마디 없이 죽어 가는 고난받는 종이었습니다.
다른 이를 위하여 대신 죄를 짊어지는 희생을 실천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서로에게 죄를 짊어지우는 일만큼은 줄여야겠습니다.
의로움은 특정한 상황에서 이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과 실천으로 실현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평범한 일상에서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자신을 비워 내고, 내어 주고,
참아 주는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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