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모세의 기도와 하느님의 응답 ; 모세의 간청(33,12-17)
12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보십시오. 당신께서는 저에게
'이 백성을 데리고 올라가거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누구를 저와 함께 보내실지
알려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신께서는
'나는 너를 이름까지도 잘 알 뿐더러, 너는 내 눈에 든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3그러니 이제 제가 당신 눈에 든다면, 저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쳐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당신을 알고, 더욱 당신 눈에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민족이 당신 백성임도 생각하소서."
14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몸소 함께 가면서 너에게 안식을 베풀리라."
15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당신께서 몸소 함께 가시지 않으려거든,
저희도 이곳을 떠나 올라가지 않게 해주십시오.
16이제 저와 당신 백성이 당신 눈에 들었는지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저희와 함께 가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야만 저와 당신 백성이 땅 위에 있는 다른 모든 주민과
구분되는 것이 아닙니까?"
17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청한 이 일도 내가 해주겠다.
네가 내 눈에 들고, 나는 너를 이름까지도 잘 알기 때문이다."
9). 하느님의 얼굴을 볼 수는 없다 ; 하느님의 영광을 본 모세(33,18-23)
18모세가 아뢰었다.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십시오."
19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나의 모든 선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네 앞에서 '주님'이라는 이름을 선포하겠다.
나는 내가 동정을 베풀려는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
자비를 베풀려는 이에게 자비를 베푼다."
20그리고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21주님께서 말씀을 계속하셨다. "여기 내 곁에 자리가 있으니,
너는 이 바위 위에 서있어라. 22내 영광이 지나가는 동안
내가 너를 이 바위굴에 넣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너를 내 손바닥으로 덮어주겠다. 23그런 다음 내 손바닥을 거두면,
네가 내 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얼굴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33,12-23 ; 모세의 기도
*금송아지 사건 이후, (이 대목을 보기 전에 잠시 33장의 앞부분을 보아야한다.)
야훼 θ께서는 : 그들의 여정에 당신이 직접 동행하시지 않고
대리인격인 천사를 보내 도와주겠다고만 하신다(33,2).
⇒θ이 동행하시길 거부하신 것은 :
금송아지 사건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지만
또한 도중에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를 보고
하느님이 결국 없애버릴까 염려가 돼서라고 하신다(3절).
*모세는 : “내가 친히 너희와 함께 가리라”하신
θ의 약속을 물고 늘어진다.
결코 θ의 대리자와는 아무런 관계도 하지 않으려 한다.
⇒그 결과 야훼께서는 또다시 모세의 부탁대로 해 주신다.
(나들이 길에 “나는 가고싶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시어머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다간 큰일난다
- 부모님의 말이 아니라 마음을 살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인간사에 일어나는 일을 통해 하느님과 모세의 끈끈한 사랑을
표현하는 성서저자의 기지가 돋보인다.)
*모세는 : 개인적으로 ‘너는 잊을 수 없는 이름,
너는 내 눈에 든 사람’이라고
하느님의 눈에 드는 은총을 입었다.
⇒그러나 이것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자신보다도
(14절 : “내가 친히 너를 데리고 가서
너를 편하게 하리라”는 약속을 받았음에도)
백성 전체의 해방을(15-16절의 ‘우리’, ‘당신의 백성’을 강조하는모세의 말에 유의) ,
그들 모두가 약속의 땅에 가는 일을 훨씬 더 값지게 여겼다.
*17절 : “너야말로 과연 내 마음에 드는 자요,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지금 네가 청하는 것을 다 들어주리라.” 라고 하는데,
⇒이 말은 : 집요한 모세의 간구가 하느님의 마음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 깨어진 계약이 회복될 수 있는 길이 마련된 셈이다.
※당신은 ‘하느님의 위로’를 원하는가? 아니면 ‘위로의 하느님’을 원하는가?
언제나 인간은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달콤한 선물만을 원하지만
그분 자체와 늘 함께 있음을 원하는 것이 지혜이다.
모세는 그분이 주시는 위로와 영예를 원하지 않고 그분 전체를 갈구했으며
또한 자신뿐만이 아니라 온 백성과 함께 그 체험을 나누길 원했다.
*18절 : 모세는 하느님께 당신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청한다.
모세는 한층 구체적으로 하느님을 알고싶었던 것이다.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달라는 이 간청은
하느님의 이름을 알려달라는 간청과 같은 맥락이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더 깊이 알고 싶어지는 것
- 기도를 하면 할수록 그분을 관상하고 싶은 것.)
*19절 : “내 모든 선함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며
야훼라는 이름을 너에게 선포하리라” :
하느님의 선함은 : 하느님의 영광과 동일시되며,
그분의 형상이나 모습이라기보다 그분의 본질을 밝혀준다.
⇒다시 말해 그분의 선함을 드러내는 행위는 야훼라는 분이 누구신지
그 이름을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하느님의 이름, 영광, 모든 선한 모습 등은
모두 하느님의 본질의 일면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이다.
*20절 : “나의 얼굴만은 보지 못한다.
나를 보고 나서 사는 사람이 없다”고 이르신다. :
이 말씀은 : 하느님을 뵙는 일은 너무나 엄청나고 위험한 일이다.
※니사의 그레고리오는 하느님은 너무도 아름다우신 분이어서
누구라도 그분을 한번 뵙고 나면
다시는 인간으로 돌아오고 싶어하지 않을 만큼이라 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신비스런 체험 이후부터
빨리 죽기만을 바랐다고 한다.
⇒어떻든 θ께서는 : 모세를 바위굴에 집어넣고 손바닥으로 가려
그를 보호해 주신 다음 뒷모습만을 볼 수 있게 하겠다고 하신다.
(인간은 온전히 하느님을 체험하지 못한다.
누구나 그분의 일면만을 체험할 수 있을 뿐이므로
‘뒷모습’이란 표현을 씀)
⇒하느님의 영광을 뵙는 것은 :
그분이 선택한 사람에게 주시는 예외적인 특별 선물이다.
“정녕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거처하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요한 1,14)고 말하게 되기까지는
여러 세기가 걸렸다.
정작 모세가 하느님을 뵙게 되는 것은 재계약이 이루어지는
34,6절 이하에서 이루어진다.
*예수님도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시고
이제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뵙게 되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 가서이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을 통해서 어렴풋이 보고 있지만
그 때가 되면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할 것입니다”(1고린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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