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예레미야서 공부

예레미야서 26장 공부 :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

윤 베드로 2017. 5. 29. 07:07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26,1-19)

 

*25장의 예언의 말씀은 여호야김 제4년에 예레미야에게 내린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26장의 내용은(여호야김의 즉위 초에 내린 말씀)

                25장의 예언의 말씀보다 더 초기에 내린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26장은 예레미야의 서술의 흐름으로 볼 때

         회고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레미야가 이처럼 지난날들을 회고 하는 것은

                   자신이 지금 시드기야에게 전하는 말씀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진리이며

                   그것만이 유다를 구원할 길이라는 것을 말해 주기 위함이었다(27장).

즉 예레미야가 26장을 통하여 자신이 하느님의 말씀을 대언하다가

     생명까지 위협을 당했음을 말한 것은(26:10-11)

     자신이 증거 한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해 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것을 말함으로 언급한 것처럼 시드기야가 자신이 전해 준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고 그 말씀에 순종해 주기를 원했을 것이다.

 

26,1-9 :

여호야김의 통치 초에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은 바빌론에 항복하는 것만이

                   유다가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었다(27:10-11).

이 말씀은 당시 환경을 고려할 때 왕을 비롯하여 백성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유다는 애굽의 지배아래 있었고 애굽은 근동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때 유다 왕이었던 여호야김도 애굽의 파라오에 의하여 왕위에 오른 자였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우리로 하여금 당시 유다의 정책을 추측케 해 준다.

즉 유다는 애굽을 의지함으로 다른 나라의 침략으로부터 보호 받고자 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때에 예레미야는 유다에게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바빌론을 의지하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전한 말씀 때문에 생명까지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하느님은 예레미야에게 이르신 말씀을 주님의 집 뜰에서

               모든 백성에게 전하되 한 말도 빼지 말라고 말씀하셨다(26:2-3).

하느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명하신 것은

                     그들이 듣고 돌이켜 진노의 심판을 피하도록 해 주시기 위함이었다.

하느님의 진정한 뜻은 유다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들로 하여금 돌이켜

                구원받게 하시려는 것이었으므로 만일 그들이 말씀을 듣고 돌이킨다면

                하느님은 지금까지 그들이 행한 악한 행위를 용서해 주시고

                재앙을 내리려 하시던 뜻까지 취소하실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러나 하느님은 유다에게 기회만을 주신 것이 아니고, 경고의 말씀도 함께 주셨다.

하느님께서 유다에게 주신 경고의 말씀은 이 말씀조차 듣지 않는다면

                   유다를 실로와 같게 하실 것이라는 것이었다(26,5-6).

여기 “실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

          성막을 모신 곳으로서 약속의 땅들 가운데 가장 영광스런 곳이었다.

그러나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의 패역으로 인하여 주님의 영광이 이곳에서 떠나갔고,

            이로 인하여 엘리 제사장 집안은 몰락했고

             또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법궤를 빼앗기는 수치를 당해야 했다.

이처럼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의 부패로 인하여 가장 영광스럽던 실로는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가장 수치스런 곳으로 변해 버렸다.

예레미야가 전한 말씀은 제사장들과 예언자들과 모든 백성이 다 들었다.

8-9절은 이들이 말씀을 듣고 나타낸 반응을 기록하고 있다.

 

26,10-15 :

유다 고관들이 주님의 집 새 문 어귀에 앉았다는 것은

         그들이 재판관의 자격으로 와서 앉았다는 의미다.

이것은 예언자 예레미야를 재판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은 고관들에게 예레미야가 지은 죄는 “죽임이 합당하다”고 고소했다.

예레미야를 “죽을 죄”에 해당한다고 고소하는 이 모습이야 말로

                    주님을 고소하던 빌라도 법정을 연상케 한다.

죄인들이 의인을 “죽을 죄”에 해당한다고 고소하는 것이야말로

                부패한 세상에서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처럼 예레미야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생명을 담보로 하여

             자신이 전한 말씀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밝혔다(26:14,15).

우리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참예언자의 모습을 본다.

예레미야도 우리처럼 생명의 위협 앞에서 두려워하고 핍박을 받을 때

                   고통스러워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임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때,

                생명을 담보로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느님 경외하기를

                생명보다도 귀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증거이고

                또한 그가 전하는 말씀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므로

                반드시 그 말씀대로 성취 될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26,16-19 :

예레미야가 법정에서 증언한 것은 재판관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들은 그의 생명을 담보로 자신의 말의 진실을 증언하고

             또한 유다의 장래를 위한 증언에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그들은 예레미야를 고소한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의 고소를 부당하다고 선언하였다.

“이 사람은 사형당할 만한 죄목이 없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주 우리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였습니다.(26:16)”

재판관들뿐만 아니라 그 땅의 원로들 중에서 몇 사람이 예레미야를 변호하였다.

그들은 히스기야 시대에 미가 예언자의 예를 들며 예레미야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즉 히스기야 시대 예언자 미가는 그 시대에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히스기야는 오히려 예언자를 통하여 선포된 말씀을 두려워하였고

                    이로 인하여 하느님은 재앙을 내리기로 하신 뜻을 돌이키셨다는 것이다.

 

예언자 우리야의 운명(26,20-24)

 

그들은 또 다른 예를 들었다.

그것은 여호야김의 때에 우리야라는 예언자가 예레미야처럼

            예루살렘성을 쳐서 예언한 일이 있었는데

            왕과 대신들이 그가 선포한 말씀을 듣고 그를 죽이려 하였다.

그래서 우리야는 애굽으로 도망갔지만 여호야김은 사람을 애굽으로 보내

            그를 잡아오도록 하였고 결국은 죽였다는 것이다.

원로들은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고소한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에게

                두 가지 실례를 들어 말한 것은 권고의 말을 주기 위함이었다.

결국 그들의 변호에 의하여 예레미야는 죽음에서 구원 받았다.

이처럼 하느님의 사람들이 진실을 말할 때 무리 중에는 그 말을 듣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람들은 듣는 자가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

             하느님께서 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