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예레미야서 공부

예레미야서 14장 공부 : 가뭄

윤 베드로 2017. 5. 13. 07:20

가뭄(14,1-15,4)

 

1 주님께서 가뭄에 대하여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①탄원(14,2-9)

 

*14-15장은 회개를 촉구하던 다섯 번째 설교에 이어

                   회개하지 않는 유다인들을 위하여 예레미야가

                    하느님께 드리는 중재기도가 중점적으로 묘사된 여섯 번째 설교이다.

이미 백성들을 향한 예레미야의 중재기도가 하느님에 의해

         거절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7,16)그는 세 번에 걸쳐 중재기도를 반복한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러한 그의 노력을 거부하고 지속적인 범죄행위로 하느님의 진노를 쌓아간다.

 

14:1-6.

하느님은 죄를 범한 유다에게 가뭄을 보내어 국가적인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

고대 국가에서 특히 팔레스타인처럼 건조한 지역에서 가뭄은 국가적인 재난이었다.

그래서 성경은 가뭄을 하느님의 심판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반면에 곡식들이 發芽하고 결실하기 위하여 時宜적절하게 내리는

              “이른 비”와 “늦은 비”는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아합시대에 있었던 삼년 육 개월 동안의 가뭄은 그들의 범죄로 인하여 내린 심판이었다.

본문은 먼저 가뭄으로 인하여 유다와 예루살렘이 당하고 있는 고통스런 모습을 말해 주고 있다.

이처럼 가뭄은 유다 모든 사람을 고통스럽게 했다.

귀족들의 종들은 물을 찾기 위하여 이곳저곳 다녔지만

               결국 빈 그릇을 가지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농부들은 갈라진 땅을 보며 茫然自失 하였고,

                새끼를 낳은 들짐승들도 풀을 찾지 못하여 자기 새끼를 버려야만 했다.

 

14,7-9 :

예언자는 이런 처참한 모습을 보며 하느님께 유다와 예루살렘을 구원해 주시기를 탄원하였다.

이처럼 가뭄으로 인하여 오게 된 처참한 모습을 묘사한 본문 이후의 내용은

            가뭄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를 탄원하는 예언자의 기도와

             그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의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다.

7-9절은 유다가 위기 가운데 있었을 때

              예언자는 하느님께 나가 그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탄원했다.

우리는 예언자의 기도를 통하여 진정한 중재기도란 어떤 것인지 보게 된다.

즉 우리가 비록 범죄 하였을지라도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회복시켜 달라는 것이다.

이처럼 진정한 중재는 하느님의 영광에 기초되어 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비록 죄를 범한 유다일지라도 용서해 주시기를 구할 수 있고,

                또한 유다가 회복되어 다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하느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라면 회복의 은혜를 주시기를 구할 수 있다.

이처럼 진정한 중재는 하느님의 영광을 우선한다.

또한 중재 기도는 오직 하느님께 구원의 소망을 두고 하는 기도다.

 

②결정적 심판(14,10-16)

 

하느님은 義의 길로 행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넘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일지라도

                義의 길로 행하기 위하여 하느님께 도움을 구한다면

                 하느님께서 그를 들으시고 필요한 능력을 주시지만,

                고의적으로 어그러진 길로 행하는 자는 하느님께서 듣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이러 자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예언자에게 이처럼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미 하느님께서 이런 자들을 받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예언자가 그들을 위하여 복을 구할지라도 하느님께서 그것을 듣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거절당한 자들이 무엇을 할지라도 그것은 헛된 수고 일 뿐이다.

그들이 금식을 해도, 부르짖어도, 그리고 번제를 드릴지라도

             하느님은 그들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하느님께 버림받은 자들에게는 멸망 외에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다.

그들에게는 오직 “칼과 기근과 염병만” 있을 뿐이다.

이처럼 본문은 우리의 기도가 응답 되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교훈해 준다.

예레미야가 그토록 간절한 마음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을 가뭄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았다.

그것은 유다가 의의 길로 행하기를 원치 않고 오히려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3-16절은 예언자가 백성들을 미혹하는 거짓 예언자들을 하느님께 고발하는 내용이다.

거짓 예언자들은 하느님께 보내심을 받지 않았지만

         하느님의 이름으로 백성들에게 거짓을 예언하므로 백성들을 미혹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평화가 없는 때 평화가 있다고 말함으로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했다.

그러므로 거짓 예언자들은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들이므로 하느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거짓 예언자들은 거짓 예언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변질 시키려 했지만,

         선포된 말씀은 오히려 이들을 심판했다.

그래서 선포된 말씀은 누구보다도 먼저 그들에게 임하여

             그 말씀대로 칼과 기근으로 멸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거짓 예언자의 거짓 예언에 미혹된 자들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그들이 거짓 예언자의 거짓 예언에 의하여 미혹을 받았다고 하여

            이미 선포된 심판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미혹을 받아 거짓에 속은 것은 어떤 핑계도 될 수 없고

                오히려 스스로 구원의 기회를 상실할 뿐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정직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거짓과 진실을 분별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 말이다.

거짓 예언자들의 거짓 예언은 자신뿐만 아니라 백성들까지 멸망에 빠지게 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거짓 예언자를 용납하기까지 부패해진유다를 보며 슬퍼한 것이다.

 

③또 다른 탄원(14,17-22)

 

14,17-18 :

17-18절은 예언자가 앞으로 바빌론의 침략으로 인하여

다가올 유다의 참상을 보며 슬퍼하는 모습을 말해 주고 있다.

하느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마지막까지 구원의 길을 보여 주셨지만

백성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진실한 예언자의 말을 듣기보다

자신들을 미혹하는 거짓 예언자들의 말을 들음으로 인하여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신 마지막 구원의 기회조차 상실해 버리고

결국은 이처럼 참상을 당하게 된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처럼 유다의 멸망을 미리 내다보다 그들에 대한 연민으로 슬퍼하고 있다.

그는 자기를 박해하던 백성들을 미워하기보다 오히려 그들에 대한 연민으로 울었다.

이것이 하느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예언자의 모습이다.

 

14,19-22 :

예언자 예레미야는 유다가 하느님께로 버림을 받을 때

             어떤 소망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견딜 수 없는 안타까움과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자비를 구하고 있다.

예언자는 유다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범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하느님께 자비를 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이처럼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구했던 것은 단순히 유다의 구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유다의 구원과 회복이 결국은 하느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