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예레미야서 공부

예레미야서 13장 공부 : 아마포 띠의 가르침

윤 베드로 2017. 5. 12. 06:57

아마포 띠의 가르침(13,1-11)

 

*13장은 두 개의 상징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다.

하나는 “아마포 띠”를 통하여 주는 메시지고(13:1-11),

               다른 하나는 “병에 가득 찬 포도주”에 관한 것이다(13:12-14).

하느님은 백성들에게 이와 같은 메시지를 주신 후에

                “교만하지 말아라,”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

                 “네가 얼마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냐?”라고 물으시며

                  그들에게 회개를 요청하셨다(13:15-27).

이처럼 하느님께서 상징적인 메시지를 주신 것은

              마음이 완고하여 듣지 않는 유다와 예루살렘에게

               하느님의 경고의 말씀을 분명하게 심어 주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13,1-11 :

하느님은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아마포 띠를 사서

                그것을 가지고 유프라테스 강으로 가서 그곳에 묻으라고 말씀하셨다.

며칠이 지난 후 하느님은 또 다시 예레미야에게 유프라테스 강가에 묻어 두었던

            아마포 띠를 가져오도록 말씀하셨다.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묻어두었던 아마포 띠를 꺼냈을 때

                   이미 그것은 썩어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8-11절 말씀은 하느님께서 아마포 띠에 일어난 일을 상징으로 한

            이 메시지를 예레미야에게 해석해 주신 말씀이다.

여기 “그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 띠처럼 되고 말 것이다”는 말과

          “내 말을 듣기를 마다하고(13:10)”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가지신 계획이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좌절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에 대하여 가지셨던 계획은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 같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하느님께 속하게 하여 그들이 하느님의 백성이 되게 하며

                    하느님의 명성과 칭송과 영광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계획은 참으로 이스라엘에게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순종으로 인하여 이 영광스런 부르심을 상실하였다.

유다와 예루살렘은 스스로 하느님을 멀리하는 것을 택함으로 인하여

             물가에 묻혀 썩어버린 아마포띠처럼 무가치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분노의 항아리(13,12-14)

 

하느님은 아마포 띠를 통하여 주시는 메시지를 마치신 후

                 또 다시 “항아리마다 술이 가득 차는” 새로운 메시지를 주셨다.

이것은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 모두가 술에 취하게 될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사람이 술을 취하게 되면 통제력을 상실한다.

그러므로 이 예언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권고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신의 정욕에 이끌려 살고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내버려 주시겠다는 의미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내버려두실 때, 그들은 정욕대로 계속 죄의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스스로 자멸할 수밖에 없다.

 

너무 늦기 전에 들어라(13,15-17)

 

하느님은 이처럼 두 가지 말씀을 전해 주신 후,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너희는 들어라. 귀를 기울여라(13:15)”라고 말씀하심으로

                  들은 말씀에 대하여 응답하도록 촉구하셨다.

하느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기대하셨던 응답은

                   그들이 스스로 죄인 됨을 인정하고 회개함으로

                    겸손히 하느님께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들에게 “우쭐거리지 마라(13:15)”

             “스스로 낮추어 앉아라(13:18)”라고 촉구하시며

             “네가 언제까지 깨끗하지 못하게 지내려느냐?(13:27)”라고 물으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회개의 촉구도 언제까지 지속 되는 것은 아니다. 정하신 때가 있다.

 

불충한 자들에게 내리는 징벌(13,18-27)

 

13,18-21 :

여기 임금과 모후는 여호야긴과 그의 모친 느후스다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하느님은 유다에게 “눈을 들어 북방에서 오는 자들을 보라”고 말씀하시므로,

                지금 북방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치기 위하여 군대들이 오고 있음을 말씀해 주셨다.

그러므로 지금은 그들에게 잃어버릴 수 없는 은혜의 기회였다.

더 이상 지체하게 된다면 이런 은혜의 기회조차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죄 가운데 살면서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살고 있던

                 유다와 예루살렘에게 주는 메시지가 그들과 동일하게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메시지인가?

오늘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유다와 예루살렘에게 주신 말씀대로

             “눈을 들어 북방에서 오는 자들”을 바라보며

               스스로 각성하고 하느님께 돌아가야 할 것이다.

하느님은 유다에게 20-21절에서 두 가지를 물으셨다.

하나는 “네게 맡겼던 양 떼 네 아름다운 양 떼는 어디 있느냐”인데

             이것은 그들이 하느님께 받았던 축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라는 의미로서

             어째서 그 축복을 상실했느냐는 물음이고,

다른 하나는 “네 친구가 되도록 네가 직접 가르친 자들이

                      네 위에 군림한다면 너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

아이 낳는 여인의 진통과 같은 고통이 너를 사로잡지 않겠느냐?”인데,

        이것은 유다가 바빌론과 화친하려고 했지만

        결국은 그들로부터 배반당하여 버림받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하느님의 백성들은 언제나 영원한 안전은 하느님밖에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13,22-27 :

예레미야는 지은 죄를 씻을 수 없게 되어 버린 예루살렘에 화가 있을 것을 말하였다(13:22).

그들은 죄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여기 “네 치마가 걷어 올려지고 네 몸이 폭행을 당한 것”은

         유다가 바빌론에게 패망하여 그들의 포로가 될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만군의 하느님의 택한 백성이 어떻게 포로가 될 수 있는가?

이것은 그들이 죄를 범함으로 하느님을 떠났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포로가 되었다는 것은 그들의 죄가 세상에 밝히 드러난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실 자체가 그들에게 수치가 되는데

                 그것은 마치 여인의 치마가 들리는 것과 같은 수치스러움이다.

또한 그들은 죄로 인하여 “광야 바람에 불려가는 검불 같이 흩어질 것”이다.

 하느님께서 이처럼 유다에게 혹독한 심판을 하신 것은 징계의 채찍이 없으면

                     그들로부터 돌이 킬 것을 기대할 수 없으셨기 때문이다.

 

유다의 마음이 완악해 져서 그들이 스스로 죄를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것이 마치 에디오피아인의

검은 피부를 희게 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불가능하고

         표범의 반점을 없앨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유다에게 징계의 채찍을 드신 후에는 그들이 하느님께 돌아 올 것이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유다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말한 후

                “깨끗하지 못한 너, 언제까지 그렇게 지내려느냐?(13:27)”라고 말함으로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소망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느님의 징계의 채찍이야 말로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 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특별한 은혜라는 것을 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