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의 첫 번째 고백(11,18-12,6)
11,18-23 :
유다는 예언자의 메시지를 싫어했다. 그래서 그들은 예언자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하느님은 자신의 종들을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신다.
하느님은 예언자에게 유다가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시고
또한 하느님께서 그를 지켜 주실 것을 말씀하시며 두려워 말라고 말씀해 주셨다(11,18).
예언자는 대적들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끌러서 도살당하러 가는
순한 어린 양”에 비유하였다(11,19).
이와 같은 연약한 자를 도와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시다.
예언자는 이와 같은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대적들이 자신을 죽이려 하였지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어떤 것도 할 수 없었고
다만 하느님께 자신을 지켜 주시기를 간구할 뿐이었다(11:20).
특별히 예언자의 고향인 아나돗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죽이려고까지 했다(11:21).
하느님은 언제나 그의 종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삶의 여정 가운데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일을 당할 때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12,1-6 :
예언자 예레미야는 하느님께 의로우시며 공의로우신 하느님께서
어떻게 악인에게 성공을 허용하십니까?라고 물었다.
하느님의 백성들은 악인이 성공할 때 그들을 부러워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하느님의 백성들이 이런 유혹에 빠진다면 세속화됨으로부터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모든 시대 하느님의 백성들을 세속화시켰던 요인들 가운데 하나는
하느님의 백성들이 악인들의 성공을 부러워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이방나라들이 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부러워하여 왕을 구했고,
그들의 타락한 문화까지 좋아하여
결국은 그들의 부패한 문화와 함께 우상숭배까지 받아들였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주변의 이방 나라를 부러워함으로 세속화되었다.
이런 일은 이스라엘 역사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모든 시대 그리스도교 역사 가운데서도 찾을 수 있었고
또한 이런 유혹들은 우리들의 시대 가운데서도 계속 되고 있다.
예언자는 악인들의 성공도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로 된 것이지만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하느님을 배반하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12,2-3).
“그들은 입으로는 당신을 가까이 모시지만 속으로는 당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라는 말은 마음이 떠난 형식화된 신앙을 말한다.
예언자는 4절에서 죄로 인하여 오게 된 황폐함을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인들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스스로 이르기를
“그가 우리의 나중을 보지 못하리라”고 말하였다.
즉 하느님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시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에 대하여 심판도 하실 수 없다는 의미다.
이처럼 악인들은 심판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심판으로 알지 못하고 있다. 악인들은 모두 무지한 자들이다.
하느님은 예레미야의 물음에 대하여(12:1)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다.
“네가 사람들과 달리기를 하다가 먼저 지쳤다면
어찌 말들과 겨루겠느냐? 네가 안전한 땅에만 의지한다면
요르단의 울창한 숲 속에서는 어찌하겠느냐?(12:5)”
이 말씀은 예레미야의 흔들리는 믿음을 책망하시는 말씀이다.
즉 하느님은 예레미야에게 “네가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 부르심에 합당한 신앙의 고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어째서 이 고백이 흔들리고 있느냐”라고 물으신 것이다.
주님께서 당신의 소유를 포기하시다(12,7-13)
본문에서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부르실 때 “내 집” “내 소유”
“내가 사랑하던 그들” 등과 같은 말을 사용하셨다.
하느님은 본문 외에도 많은 곳에서 이스라엘을 부르실 때 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셨다.
“나는 내 집을 버리고 내 소유를 포기하였다.
내가 사랑하던 이를 그 원수들의 손아귀에 넘겼다.”(12:7)라는 말은,
하느님은 자기 백성 유다를 버리셨다.
언급한 것처럼 이것은 그들에 대한 징계를 표현한 말이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은 그들이 하느님을 대적하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목자들이 내 포도밭을 파괴하고 내 몫을 짓밟았다.
그들은 내 탐스러운 몫을 폐허의 광야로 만들었다(12,10)” 라는 말씀은
열국이 유다를 침략하여 유다를 황폐시켰다는 의미다.
이처럼 하느님은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열국들 가운데 원하는 나라를 택하여 심판의 수단으로 사용하신다.
하느님께서 이처럼 어떤 나라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실 때
그들은 이와 같은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일에 봉사하는 것이다.
“폐허가 된 그곳이 나를 향해 통곡한다(12:11).”라는 말씀은
기쁨으로 충만해야 할 유다 땅이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황폐해져서 이제는 슬픔의 땅으로 변하게 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이처럼 동일한 땅일지라도 그 땅에 하느님의 축복이 있느냐
심판이 있느냐에 따라서 기쁨의 땅으로 또는 슬픔의 땅으로 변하는 것이다.
12절, “주님의 칼이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휩쓸고 지나가니
살아 있는 모든 목숨이 안전할 리 없다.”는 말씀은 인명의 손실을 말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느님의 심판은 땅(환경)과 생명 모두를 황폐케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처럼 심판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황폐해 졌기 때문에 그곳에 밀을 심어도 거두지 못하고
수고하여도 소득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12:13).
다른 민족들에 대한 경고(12,14-17)
여기서는 유다 백성을 괴롭혀 온 이웃 나라 백성들에게도 주님께서 역사하셔서
유다 백성들에게 임하는 심판이 그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할 것이며
또한 그들에게도 회복의 때가 있어서 주님께로 돌아와
그를 섬기게 될 것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신약시대에 복음이 만민에게 전파될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그들은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물려준 상속 재산을 건드렸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그들의 땅에서 그들을 뽑아낸 뒤,
그들 가운데에 살던 유다 집안을 뽑아내 오겠다(12,14).”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들을 심판하신 후에 유다에게 회복의 기회를 주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회복의 은혜를 주실 것이다.
이와 같은 은혜는 하느님의 자애하심으로 인하여 내리는 은혜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애하심을 받는 자들에게만 회복의 은혜가 임할 것이고
이 은혜를 멸시하는 자들은 은혜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은 자애하심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그 민족이 순종하지 않으면,
나는 그들을 뽑아 없애 버리겠다(12,17).” 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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