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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0. 바오로는 어떻게 그 많은 여행을 했는가?

윤 베드로 2015. 2. 2. 18:23

30. 바오로는 어떻게 그 많은 여행을 했는가?

 

바오로는 초세기에 어떻게 그토록 많은 여행을 할 수 있었을까?

그가 넓은 지역을 여행한 유일한 사람인가?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오로는 세 차례의 선교여행과

자신에 대한 고소에 맞서기 위해 마지막으로 로마 여행을 했다.

바오로의 여행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오로의 여행

동행인

                                    경      로

1차 선교여행

(13,1-14,28)

바르나바

안티오키아(시리아)에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건너가 ➞ 파포스에서 팜필리아의 페르게 ➞ 소아시아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 이코니온 ➞ 리스트라 ➞ 데르베로 간다

예루살렘 사도회의

(15,1-35)

바르나바

중재를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 이방인들에게 가서 선교활동을 해도 좋다는 승인을 받고 안티오키아(시리아)로 돌아온다

2차 선교 여행

(15,36-18,22)

실라스

(실바누스)

시리아와 그의 고향 소아시아 속주 킬리키아, 프리기아와 갈라티아에 가서 복음을 전한다.

바오로는 소아시아 해안의 트로아스에서 환시를 보고 유럽 대륙의 마케도니아 지역을 향해 배를 타고 떠나 필리피. 테살로니카. 베로이아. 아테네. 코린토에 간다. 다시 배를 타고 소아시아의 에페소로 갔다가 카이사리아에 내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후 안티오키아에 돌아온다.

3차 선교 여행

(18,23-21,17)

실라스

갈라티아와 프리기아 지방을 거쳐 에페소로 갔다가 다시 마케도니아로 건너간다. 원래 배를 타고 시리아로 갈 계획이었으나, 유다인들이 그를 해칠 음모를 꾸며 마케도니아를 거쳐 틀로아스로 되돌아간다. 그 후 그의 일행은 배를 타고 미틸레네와 사모스 섬을 거쳐 밀레토스에 도착한다. 아시아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에페소는 그냥 지나치고 다시 배를 타고 로도스와 시리아의 티로로 간 후 야고보를 만나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4차 선교 여행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됨

(27,1-28,16)

카이사리아에서 페스투스와 아그리파스 앞에 나타난 바오로는 다른 죄수들과 함께 로마로 간다. 카이사리아에서 배를 타고 시돈. 리키아의 미라. 크레타 섬으로 간다. 기후로 인해 항해가 어려워지자 크레타 섬에 머물다가 다시 떠나지만 배가 파선되어 몰타에서 석 달을 보내고 시라쿠사와 레기움을 거쳐 로마로 가서 가택연금 상태로 지낸다.

 

이 요약 도표를 통해 바오로가 폭넓은 지역을 두루 여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학자는 바오로가 약 1만 6천 킬로미터 가량 선교 여행을 했다고 추정한다.

바오로도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에서 잦은 여행과 몇 번의 조난사고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여행에 대해 언급한다. (11,25-26)

 

날씨 때문에 항해가 심하게 위협받지 않은 시기에만 선박 여행이 가능했지만

(사도 28,11. '겨울을 난' 배에 대해 언급함) 바오로는 육로와 해로를 모두 이용했다.

로마 제국의 도로 체계는 편리한 여행을 가능하게 했다.

바오로가 자주 이용한 주요 도로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뻗어 있는 에그나시아 대로였다.

그가 방문했던 테살로니카나 필리피 도시는 그 길가에 있었다.

 

세 차례의 선교 여행을 요약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두 가지 한계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는 바오로 서간에서는 이런 식의 선교 여행을 재구성할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많은 고대 작품이 영웅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여행'이라는 주제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에는 코린토. 필리피. 에페소와 같은 교회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바오로가 정말 세차례만 여행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그는 또 다른 여행을 했을 수도 있다.

그의 생애의 어느 시점, 특히 아라비아에서 보낸 시간(갈라 1,17)은 장막에 가려 설명할 수 없다.

 

바오로가 선교 활동 초기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때부터 다시 예루살렘을 방문하기까지 십사 년이라는 연대를 설정하는 일도 논쟁거리다. (2.1)

넓게 잡아 회심했을 때부터 14년일까, 아니면 첫 번째 예루살렘 여행 후 14년을 의미하는 것일까?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은 바오로의 여행에 대해 가장 포괄적인 서술을 담는다.(1,17-2,1)

바오로는 회심 후에 아라비아(아마도 나바태아)로 갔다가 다마스쿠스로 돌아갔다.

그리고 3년 후 처음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갔고,

이어서 시리아와 그의 고향 킬리키아로 갔다.

 

그리고 14년 후 예루살렘 사도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갔다.

이 가운데 어떤 것은 앞에서 본 사도행전 내용과 뚜렷하게 일치한다.

그러나 어떤 것은 바오로의 행적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확실한 것은 바오로가 자신의 고유한 소명을

로마 제국 방방곡곡에 이르는 폭넓은 지역을 여행하는 순회 선교로 여겼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는 에스파냐와 로마 제국 밖의 지역을 향해 서쪽으로 확장해 나가는 선교 활동을 계획했다. (로마 15,24.28)

 

바오로가 그토록 넓은 지역을 여행한 유일한 선교사는 아니다.

그는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새로운 선교지로 가는 것을 선호했으나 (15,20-21)

때때로 이미 복음이 전파된 곳을 찾아가 기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그 뒤에 나는 시리아와 킬리키아 지방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나는 유다에 있는 그리스도의 여러 교회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때 우리를 박해하던 그 사람이 지금은 자기가 한때 그렇게 없애버리려고 하던 믿음을 전한다'는 소문만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 때문에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갈라 1,21-24)

 

역사는 수많은 초기 선교사들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검증될 수 없는 고대 전승을 통해 알려지고,

어떤 사람들은 이름조차 남겨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베드로는 로마에서 선교활동을 했으리라 추정되지만 바오로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은 이 전승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

바오로한테도 각자 나름대로 선교를 함께한 동반자들이 있었다.

 

초대교회는 그 당시 여행에 따르기 마련인 커다란 위험을 기꺼이 받아들인 바오로와 같은 순회 선교사 덕택에 널리 확장되었다. (2코린 11,26)

바오로는 여행 중에 배가 파선된 적도 있었고 강도와 해적을 만났으며,

힘든 노동과 배고픔과 목마름을 체험했으며 때때로 머리를 누이고 잠잘 곳마저 없었다고 자신의 체험을 회상한다. (11,25-28)

 

바오로 시대에는 여행이 쉽지 않았다.

대부분 걸어서 여행했고, 상인들은 수송용 짐승과 마차를 가지고 있었으며 병사들이나 정부 관리만 수송용 말을 사용했다.

 

선박 여행은 사치슬운 여행 노선이 아니어서 여행자들은 대개 자신이 원하는 행선지로 가서 상업용 선박을 이용했다. (사도 21,2-3; 27,2)

이런 어려움에도 바오로를 비롯한 선교사들은 놀라운 선교 결과를 거두면서 복음 메시지를 널리 전했다.

 

 

 

바오로의 2차 선교여행 지도.hwp

 

 

출처 : 퍼렁별나라공쥬님의 블로그
글쓴이 : 찬미예수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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