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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부부갈등이 급증하는 이유
정년 후 은퇴자들이 함께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사람이 배우자라는 점에서, 은퇴생활의 행복은 부부생활의 만족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은퇴설계란 부부관계의 회복설계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우리나라 베이비부머 부부관계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충 만족하고 산다’는 비중이 무려 62%에 달한다. 왜 우리나라 중·장년층 부부들은 그렇게 행복하지 못한 것일까?
오랫동안 조직형 인간으로 살아온 남편은 회사에서 은퇴후 여러 가지 증세를 보이게 된다. 집에서 쉬면서 갑자기 노화증세를 보이거나 극심한 부부갈등을 겪기도 한다. 이른바 은퇴 남편 증후군(Retired Husband Syndrome)이라는 심한 병이다. 사소한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잔소리가 심해지는 행동이 대표적인 증세다. 동시에 탈진증후군(burnout syndrome)에도 시달린다. 은퇴하면서 권위와 명예를 모두 상실하고 마치 삶이 끝난 것 같은 상실감에 시달린다.
은퇴 후 후유증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집보다는 직장 등 외부생활에 중심을 두고 살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아직도 공부를 끝내지 못했거나 결혼을 하지 못한 경우 부인과 갈등은 더욱 심해지기 마련이다. 노후자금마저 부족하면 사태는 좀 더 심각해진다.
지금 60∼80대 남자들은 평생을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들이다.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적인 경쟁 자세가 몸에 배어 있고, 지시하고 복종하는 상하관계에 길들어져 있다. 부지불식간에 이런 자세를 아내와 자녀들에게 보인다. 이런 남편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부인이나 자녀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남편이 은퇴 후 이런 생활방식을 고치지 못하면 가정이 파탄날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은퇴한 남편들은 식사나 청소와 같은 집안일을 아내에게만 맡기고 겉도는 생활을 지속한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우리나라 은퇴부부 생활실태에 따르면, 은퇴한 부부 중 남편이 집안일을 전혀 도와주지 않는 경우가 61%에 달하며, 남편이 집안일을 약간 도와주는 경우도 35%에 그치고 있다. 즉 전체 부부의 96%가 은퇴를 하더라도 부인이 주로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생활태도는 노년기 부부관계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은퇴한 남편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자기의 역할을 빨리 되찾는 것이다. 생활비를 벌어다주는 전통적 가장이 아니라, 아내의 멋진 친구로서, 자녀들의 멋진 아버지로서의 새로운 역할을 되찾는 것이다. 이런 노력은 ‘머리’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고, ‘행동’의 변화를 통해 실천해나가야 한다.
우선 가장의 권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내게 필요한 일은 직접 하는 것이 원칙이다. 아침에 집 앞 신문도 가져오고, 커피도 끓여 먹고, 집 안 청소도 하고, 간식도 만들어 먹는다. 때때로 직접 요리를 하여 아내와 아이들을 기쁘게도 해 본다. 아내가 백화점에 갈 때 자동차를 운전하고 짐도 들어준다. 집안에서 무게만 잡는 가장이 아니라, 다정한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을 되찾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이 일어서는 것을 배울 때 수백 번 넘어지는 것처럼, 아버지가 되는 훈련도 수백 번 해야 한다. 그래야 쑥스러운 마음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살가운 마음이 들어서게 된다. 이런 일에 적응이 잘 안 되는 사람은 요즘 시중에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는 ‘아버지 학교’에 입학해 교육을 받아보기를 권한다.
우리나라 중년들은 은퇴 후에 배우자와 의견을 맞추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다, 부부간 갈등이 매우 클 것이다가 정답이다. 일반적으로 한국 남편들은 은퇴후 부인과 여가생활을 같이하고 싶어 하며, 전원주택에서 살기를 원하고, 자신의 건강이 악화되면 부인이 간병을 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부인은 가능하면 남편과 떨어져서 지내길 원하며, 전원생활보다는 대도시와 아파트를 더 선호한다. 이렇게 중년부부들은 은퇴생활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최근 30~40대 부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년 부부들은 노후자금과 같은 재무적 문제보다는 주거계획, 부부가 같이 지내는 시간, 부모봉양과 같은 비재무적인 사항에 대해 부부간의 의견차가 크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주거 문제에선 부부가 이주지역, 주택유형 등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고, 은퇴 후 부부 공유시간과 관련해서도 5쌍 중 3쌍이나 의견이 달랐다. 부모에 대한 재정지원에 대해서도 남편과 아내의 견해차가 뚜렷했다.
이런 부부간의 인식차이를 극복하고 행복한 은퇴생활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첫 번째는 부부간에 일치될 수 있는 은퇴설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 일방적으로 남편이나 부인 위주로 노후생활을 이끌어갈 수는 없다. 노후생활비, 주거계획, 간병계획, 부부가 같이 할 수 있는 취미여가 등 많은 계획을 세워야 한다. 계획수립 과정에서 부부가 충분한 대화를 통해 공통점을 발견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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