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 종말론 차이
1. 공관복음서의 종말론은 :
①세상에 큰 환란이 닥쳐 우선 종말의 징조가 보이고
마침내 천지가 개벽하며 하늘에서 천군만마를 이끌고
하느님(혹은 하느님의 대리자인 인자)이 내려온다.
②그때 살아 있는 자는 살아 있는 상태 그대로,
죽은 자는 일시에 부활하여 심판관이신 하느님 앞에 선다.
③하느님은 죄과에 따라 분류할 텐데
한쪽은 구원을 받고 다른 한 쪽은 멸망한다.
④예수 당시 유행하던 종말 - 묵시 사상의 기본 줄거리이다.
⇒종말 - 묵시 사상은 : 공관 복음서에 영향을 끼쳐
부활한 예수의 재림 날을
곧 종말의 날로 간주했다(마르 13장).
2. 요한 복음서에서는 : 종말을 실존적 차원으로 받아들여
현재적 종말론, 혹은 실현된 종말론을 제시한다.
⇒볼트만의 표현을 빌리면, 묵시적 종말론을 脫神話化시킨 것이다.
전쟁과 기근이 잇따르고, 천지개벽이 있고,
하느님이 天軍을 이끌고 내려온다는 것은
모두 종말을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가시화시켜 놓은 데 불과하다.
그런 신화적 표상에서 벗어나 인간 실존의 차원에서 종말을 이해해야 한다.
‘나의 종말이 곧 우주의 종말’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교회의 종말 이해에 극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3. 요한 복음서의 종말론도 그리스도론 만큼이나 독특하다.
요한 복음서의 종말론을 보여주는 대표적 본문은 11장 1-44절이다.
그 중에서 11,25-26절은 요한 복음서의 종말관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 암시를 주는 구절로 간주된다.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이것을 믿습니까?’”
①예수의 말씀에는 : 두 가지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하나는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죽었더라도
다시금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 살아 있다면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예수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 믿음을 제시한다.
② ‘예수가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상은 :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대표적 정체 설정이다.
예수를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3,1-21).
이는 예수 자신이 영원한 ‘생명의 빵’이기 때문이다(6,22-59).
⇒예수는 : 원래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인 로고스로 천지창조 사업에 동참했고,
만물이 그를 통하여 생겨났으니,
그로부터 생명을 얻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즉, ‘생명을 주는 일’은 先在한 로고스의 전공 분야인 셈이다(1,1-4).
③종말이란 : 철저히 현재에 달려 있으며,
현재는 종말을 맑게 보여 주는 거울이다.
⇒따라서 누구인가 지금 이 자리에서 예수를 믿어
그를 주님으로 받아들이기로 결단하면,
이미 그에게 종말은 실현된 셈이다.
중요한 일은 지금 이 자리에서 내리는 결단이며,
궁극적 미래(영원한 생명)도 이 결단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뜻이다.
예수에 대한 믿음을 통해 미래적 종말이 현재로 앞당겨졌다는 점,
혹은 현재의 결단으로 미래적 종말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요한 복음서의 종말관이 가지는 특성을
읽을 수 있다(현재적 종말론).
<복음서와 시간, 박태식, 생활성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