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의 역사와 중요성
1. 성전의 역사 | ||||
순서 |
연대 |
내 용 |
파괴 및 파손 | |
제1성전 : 솔로몬 의 성전건축 |
기원전 968 -961년 |
솔로몬이 : 최초의 성전을 아브라함이 제사를 지냈다는 예루살렘 동쪽 모리야 산에 세웠다. 그는 : 이 성전건축을 위해 다윗이 준비해둔 자재 외에도 레바논으로부터 목재를 구입했고, 띠로 왕 히람이 보낸 건축 기술자와 이스라엘 인부들을 동원하였다. 이 성전은 완성된 후 Is의 중심지가 되었다. |
기원전 587년 바빌론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파괴됨. | |
제2성전 : 즈루빠벨의 성전재건 (1차) |
기원전 520 -515년 |
바빌론을 멸망시킨 폐르샤왕 고레스는 : 유다인들에게 귀향을 허락하고 예루살렘 성전재건을 명했다. 즈루빠벨은 : 옛 예루살렘 성전에 비해 규모가 매우 축소된 것이긴 했지만, 옛 성전자리에 성전을 재건하였다. 그렇지만 성전 안에 계약의 궤를 안치하지는 못했다(2마카 2장). |
기원전 169년 시리아왕 안티오쿠스 에 의해 파손됨. | |
마카베오의 성전보수 |
기원전 164년 |
마따디아의 아들 유다 마카베오는 파손된 성전을 보수했다. |
기원전 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장군에 의해 다시 파손됨. | |
제3성전 : 헤로데의 성전재건 (2차) |
기원전 20년경 시작 |
헤로데는 : 파손된 성전을 모두 헐고 새 양식으로 엄청나게 확장하여 다시 짓기 시작했다. 또한 성전 둘레에 거대한 장벽을 둘러쌓았다. 오늘날 이중 일부가 보존되어 ‘통곡의 벽’이라 불린다. 그러나 이 재건작업은 예수시대에도 완성되지 않았다. ⇒서기 64년경 헤로데 아그리빠 2세 때에 완성 되었다는데 매우 화려하고 웅장했다고 한다. |
유다전쟁이 있었던 서기 66-70년경에 폐허가 됨. | |
*그후 남아있는 성전 터에는 : 로마의 하드리아누스황제가 주피터 신전을 지었고(서기135년), 아랍인들에 의해 회교 대사원이 지어지기도 했으며(서기 687-691년), 십자군에 의해 ‘주의 성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 뒤 아랍인들에 의해 예루살렘이 다시 정복되면서 회교 사원으로 개조된 후 지금까지 이곳은 이슬람교도들의 성지가 되고 있다. |
2. 성전의 중요성
*예루살렘 성전은 :
․ 하늘과 땅을 잇는 가교 역할,
․ 전례적으로 제사를 바치는 장소,
․ 사제직이 수행되는 곳.
․ 경제적으로는 유다 국가의 금고,
․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통치에 맞서 하느님의 통치를 추구하는
유다인의 안식처요 유일한 희망.
*모든 유다인은 : 해마다 반 세겔씩 성전세를 바쳤고(탈출기 30,11-16),
3대 순례 축제 때는 성전으로 순례를 와야 했다.
*70년 성전이 파괴된 후에도 : 성전은 유다인들의 정신세계 속에서
언제나 첫 자리를 차지하였다.
*성전에 대한 인식은 : 1세기에 존재했던 종교 파당마다 다르다.
․ 사두가이들 : 실제로 성전에서 사제직을 수행하던
사두가이들은 성전의 파괴와 더불어 사라졌지만,
․ 바리사이들은 : 성전이 재건되리라는 희망을 늘 간직하고 살았고,
동시에 바리사이들은 성전의 제사를 자선으로 바꾸어 실천.
․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
①예수님을 성전 권위에 도전하신 분으로 묘사하고,
②그들 가운데 일부 유다인들은 성전예배에 충실하게 참여했으나,
③세월이 지나면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결국 성전의 제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로 대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