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시편 공부

제77편 하느님처럼 위대한 신이 누가 또 있습니까?(14절)

윤 베드로 2022. 7. 1. 07:36

77: 어느 일정한 유형으로 분류하기가 어렵다.

주로 공동체를 위한 개인 탄원시편이나 찬양시편으로 분류.

첫째 부분(2-13) 작가가 자신의 불행을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θ이 백성을 버리시는 것 같이 보여, 오히려 그것을 애달파하는 일종의 애가와도 같다.

둘째 부분(14-21) 전형적인 찬미가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작가가 지난 날, 특히 탈출사건 당시에 θ이 행하신

        영광스러운 위업과 현재 상황을 대조시키기 위해서 옛 찬미가에서 이런 형식을 빌린 것이다.

 

1. 하느님의 은총은 어디에?

1 [지휘자에게. 여두툰에 따라. 아삽. 시편]

2 내게 귀를 기울이시라고 나 소리 높여 하느님께, 나 소리 높여 하느님께 부르짖네.

3 곤경의 날에 내가 주님을 찾네.

               밤에도 내 손을 벌리지만 지칠 줄 모르고 내 영혼은 위로도 마다하네.

4 하느님을 생각하니 한숨만 나오고 생각을 거듭할수록 내 얼이 아뜩해지네. 셀라

5 당신께서 제 눈꺼풀을 붙잡으시니 불안하여 말도 채 못합니다.

6 저는 그 먼 옛날을 회상하고 아득히 먼 시절을 생각합니다.

7 밤새 마음속으로 되새기고 묵상하며 정신을 가다듬어 헤아려 봅니다.

8?주님께서 영원히 버리시어 더 이상 호의를 베풀지 않으시려나?

9 당신 자애를 거두시고 당신 말씀을 영영 그쳐 버리셨나?

10 하느님께서 불쌍히 여기심을 잊으셨나? 분노로 당신 자비를 거두셨나?? 셀라

11 제가 말합니다. ?이것이 나의 아픔이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오른팔이 변해 버리신 것이!?

12 저는 주님의 업적을 생각합니다. 예전의 당신 기적을 생각합니다.

13 당신의 모든 행적을 되새기고 당신께서 하신 일들을 묵상합니다.

 

2. 하느님의 크신 업적

14 하느님, 당신의 길은 거룩합니다. 하느님처럼 위대한 신이 누가 또 있습니까?

15 당신은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느님 백성들 사이에 당신 권능을 드러내셨습니다.

16 당신 팔로 당신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야곱과 요셉의 자손들을. 셀라

17 하느님, 물들이 당신을 보았습니다. 물들이 당신을 보고 요동치며 해심마저 떨었습니다.

18 비구름은 물을 퍼붓고 먹구름은 소리를 지르며 당신의 화살들도 흩날렸습니다.

19 회오리바람 속에 당신의 천둥소리 나고 번개가 누리를 비추자 땅이 떨며 뒤흔들렸습니다.

20 당신의 길이 바다를, 당신의 행로가 큰물을 가로질렀지만 당신의 발자국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21 당신께서는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당신 백성을 양 떼처럼 이끄셨습니다.

 

77:

기도는 언제나 구원의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대하여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할 수 있다.

시인에게도 이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환난 날에 은혜의 옥좌 앞으로 나가 하느님께 부르짖을 수 있었다.

3-4절은 그가 곤경의 날에 얼마나 간절하게 하느님께 기도했는지 말해 주고 있다.

곤경의 날에 내가 주님을 찾네. 밤에도 내 손을 벌리지만 지칠 줄 모르고 내 영혼은 위로도 마다하네.

하느님을 생각하니 한숨만 나오고 생각을 거듭할수록 내 얼이 아뜩해지네. 셀라

시인은 환난 날에 주를 찾았다. 여기 주를 찾았다는 말은 기도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시인은 일상적인 기도로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손을 들고 기도했고 또한 그 손을 거둘 수 없었다.

이것은 너무 간절하여 기도하기를 중단할 수 없었다는 의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난을 당하면 하느님을 가까이 하기보다는 오히려 멀리한다.

환난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환난으로 인하여 받게 된 고통에 대하여 하느님을 원망하고,

             또한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고 말하며 하느님의 존재까지 의심하며 기도를 포기한다.

그러나 시인은 고통이 더할수록 기도응답이 없을수록 더욱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 기도했다.

 

시인은 주님께서 자신의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기 때문에

             그 고통이 말할 수 없을 정도임을 말했다(77,5).

본문 전체의 내용으로 볼 때 이 표현은 주님께서 기도에 대해

         응답해 주시지 않기 때문에 자신은 잠을 잘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이처럼 시인으로 하여금 밤에 잠조차 잘 수 없도록 불안하게 했던 것이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하여 8-10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님께서 영원히 버리시어 더 이상 호의를 베풀지 않으시려나?

당신 자애를 거두시고 당신 말씀을 영영 그쳐 버리셨나?

하느님께서 불쌍히 여기심을 잊으셨나? 분노로 당신 자비를 거두셨나? 셀라

이런 의심이 그의 마음으로부터 계속 흘러나오기 때문에 그는 밤에도 편히 잘 수 없었다.

여기 중요한 교훈은 하느님께서 그의 백성들의 탄원에 대한 응답을 지연시키실 때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때 하느님의 백성들은 시인이 고백한 것처럼 불안하여 밤에도 잠을 잘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백성들에게는 이와 같은 때에도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이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는 길이 있다.

11-21절은 이 길이 무엇인지 말해 주고 있다.

시인이 이와 같은 때 행한 일들 가운데 하나는 현재의 고통스런 문제를 뒤로하고

             과거로 돌아가서 주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행하신 일들을 묵상한 것이다 (77,12-13).

특별히 시인은 묵상을 통하여 주님은 모든 신위에 뛰어나신 분이라는 것과

            이 하느님이 야곱 곧 이스라엘 백성을 구속하셨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다 (77,14-16).

 

다음으로 시인은 자연 현상 가운데 주님의 위엄을 보았다(77,17-19).

회오리바람, 우뢰소리, 번개와 폭우, 번개 등은 하느님의 능력을 계시해 준다.

그는 이처럼 자연 현상을 통하여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보았다.

또한 시인은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며 하느님께서 그의 전능하신 팔로

        어떻게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는지 살펴보았다(77,20-21).

하느님은 주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바다를 가르시고 거기에 길을 내셨다.

주님의 명하심에 바다의 큰물도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자기 백성을 양떼처럼 모세와 아론의 손을 통하여

            애굽으로부터 인도해 내셨다.

시인은 이와 같이 이전에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행하신 기적들을 묵상했을 때

            지금도 변함없이 자기 백성들을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지금 자신이 당하는 고통으로부터

            능히 구원해 주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시인은 고통 가운데서도 오히려 구원의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