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교본 해설/레지오 훈화자료

聖母 마리아가 말하는 아들 예수

윤 베드로 2021. 10. 31. 17:48

*예수는 : 누가 뭐래도 내가 낳은 나의 아들이었다. 나는 그의 어머니다.

그러나 끝내 예수는 나의 아들이 아니었다.

나는 아들을 떠나보낸 못난 어미요 서러운 여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의 아들 예수를 세 번쯤 만난 것 같다.

한 집안에 살면서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야 수없이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아들 예수와의 특별한 만남은 세 번쯤 되는 것 같다.

맨 처음의 만남은 : 그가 서른 살쯤 된 어느 날 갑자기 광야로

                 요한이라는 예언자를 만나러 가겠다는 말을 했을 때이고,

두 번째는 : 그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먼 길을 찾아갔을 때

                  어느 집 대문 밖에서 이루어졌다.

       사실 그때에는 얼굴도 마주 보지 못했지만 그러나 만남은 분명히 만남이었다.

마지막 만남은 : 그 날 골고타 언덕의 십자가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이 세상 모든 어미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아들을 내 품에서 길러,

            내 품으로부터 내어보내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맨 처음 예수가 나의 곁을 떠나 광야의 스승을 찾아가겠다고 했을 때

              나는 무슨 말로도 그를 붙잡아 둘 수 없겠다는 강한 느낌에 사로잡혀

              다만 하늘에 떠 있는 흰구름을 쳐다보았을 뿐이다.

 

*세상은 : 이렇게 저렇게 어지러웠고 뒤숭숭하기만 했다.

로마의 앞잡이들은 : 갈수록 날뛰었고 그들에 대한 민중의 증오도

             불꽃처럼 타오르기만 했다.

심심치 않게 우리는 스스로 메시아임을 자칭하는 무리들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갈릴래아를 중심으로 로마에 대한 무장투쟁도 갈수록 심해졌고,

잔혹한 로마군에 의하여 수백 명이 한꺼번에 십자가에 달려 처형되었다는 끔찍한 소문도 들려왔다.

 

*그때, 숱한 소문 가운데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베푼다는 요한의 소문도 들렸다.

그에 대한 소문은 : 요원의 불길처럼 마을과 마을을 삼키며 펴져 나갔다.

모두들 그를 보러 광야로 달려갔다.

예수도 : 그를 보려 광야로 달려간 젊은이들 가운데 하나였다.

나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열심히 일을 하는 편이었지만 나무를 깎고 다듬고 못질하는

그런 일에 몰입하여 자신을 잊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일을 하다가 잠시 쉬는 동안, 무언가 강렬한 힘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 같았다.

새벽에 사람 없는 바위틈에서 기도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가끔 볼 수도 있었다.

 

*나이는 성년이 되었지만 여자에 대한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같은 마을에 처녀가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남자가 장가들어 가정을 꾸미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보다 훨씬 더 귀중하고 다급한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예수는 한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아니 집을 떠나기 전까지는 본인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가 : 요한을 만나러 광야로 가겠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마을의 다른 어머니들처럼 그를 말렸다.

꼭 가야만 하겠니? 네가 집을 떠나면 나는 어떻게 살아나가란 말이냐?”

어머니, 가야겠습니다. 내가 집을 떠나도 살아갈 일을 걱정하지는 마세요.

들에 핀 꽃들을 보세요. 누가 일부러 가꿔주지 않아도 아버지께서 저렇게 길러주시지 않습니까?

나를 붙들려고 하거나 이 길을 막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아무도 나를 붙들거나 이 길을 막지 못합니다.”

 

*나는 힘없이 길을 비켜섰다. 그리고 사라지는 그의 등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나는 아들의 참모습을 비로소 보았던 것이다.

 

*얼마 후에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젊은이들 편에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곧장 요한을 찾아가 세례를 받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가 홀로 유대 광야로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그가 유대 광야로 들어갔다는 소식이 있은 뒤에는 더 이상 그에 대한 소문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람결에 아들의 소식이 들려왔다.

갈릴래아 호숫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어부들과 사귀는 가운데

             하느님 나라의 비밀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무하고나 닥치는 대로 만나고 사귄다는 것이었다.

 

*어떤 소문에 의하면 일곱 마귀 들렸던 여자를 깨끗하게 고쳐주고는 그 여자와 함께 산다고도 했다.

또는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고 문둥이들과 어울려 다닌다고 했다.

어디서 그런 능력을 얻었는지는 모르나 온갖 귀신들린 자들을 성한 사람으로 고쳐주고

             몇 십 년씩 앓던 고질병도 고쳐준다고 했다.

 

*때로는 사마리아 사람, 그것도 여자와 만나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그들의 마을에서 며칠씩 머물러 있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요컨대, 나자렛 태생인 예수라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놀라운 능력으로

             기이한 일을 하면서 그동안 사람들이 지켜온 아름답고 질서정연한

습관을 마구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무지막지한 밑바닥 인생들이 그를 메시아인양 따르며

          미칠 듯이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안식일 법을 어기는 것은 흔히 있은 일이요, 부유한 자들을 면박주며

가난한 자들을 부추기는 언설을 틈 있을 때마다 되풀이하고,

세상을 뒤집어엎을 최후의 날이 임박했다고 외쳐댄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소문의 결론은 : 아무래도 그가 돌아버린 것 같다는 데로 귀결되었다.

          돌지 않았다면 악마의 두령인 베엘제불에게 사로잡힌 게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사람도 나무도 살지 않는 뜨거운 사막에서 오랫동안 단식을 했다더니

           마침내 머리가 돌아버린 것 같다는 그런 소문도 들려왔다.

어떻게 내가 그냥 집에 앉아 있을 수가 있겠는가?

한 마을에서 자라난 그의 형제들을 데리고 나는 소문이 들려오는 곳을 따라 그를 찾아 나섰다.

아들이 있는 곳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갈릴래아 지방 전역에서 그는 이미 소문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여자들에게는 육감이라는 것이 있다.

어쩐지 그를 쉽게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또는 그를 쉽게 만나면 안 될 것 같은 육감 때문에,

             야고보와 함께 그 문둥이였던 사람을 집 안으로 들여보내 어미가 밖에 있다고 이르게 하였다.

그들이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집 안으로 들어간 뒤 조금 있자니

           분명한 예수의 목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누가 내 어머니며 형제란 말이오? 여기 있는 여러분들,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곧 나의 어머니요 형제입니다!”

 

이어서 야고보가 창백한 얼굴로 나왔다. 나는 거기 더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내 귀에까지 들리라고 일부러 크게 말하는 예수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단호했다.

칼로 자르듯 도무지 사이를 두지 않고 하는 말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가슴에 안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몇 번이나 이런 말을 되뇌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예수가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 처형을 당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가 성전의 장사치들을 몰아내는 일에 앞장을 섰고,

        그 까닭으로 사제들의 미움을 사서 빌라도의 협조를 얻어

         마침내 처형당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문 밖에 어미를 두고 누가 나의 어머니냐?”라고 소리치던 아들,

            그래서 쫓겨나듯 그 자리를 떠나게 만들었던 아들이었지만,

             나는 그를 끝내 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그의 어미였다!

그런데 죽어 가는 마당에서 그는 나에게 이번에야말로 영원한 아들로서 다가와

          뜨거운 손으로 나의 가슴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이윽고 숨진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그가 내 품안에 안겨준 영원한 아들을 포옹했다.

그렇게 떠남으로써 나에게 마침내 돌아왔고

          그렇게 숨짐으로써 마침내 진정한 아들이 되었던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성모님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느낄 것 같다.

우리는 성모님의 좋은 면만 보아왔지, 이렇게 고통스러운 모습은,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성모님의 가슴속은 새까말까? 아니면 힐까?

성모님께 더욱 더 고개 숙어진다. 각자 묵상해 보시기 바란다.

 

<예수와 만난 사람들 /이현주, 생활성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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