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자료/오늘복음 묵상

9/24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윤 베드로 2020. 9. 24. 07:51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7-9
그때에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7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8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9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오늘의 묵상

소문에 예수님께서는 예언자이셨나 봅니다. 소문에 예수님께서는 꽤나 유명하셨나 봅니다.

소문에 예수님께서는 …… 소문에 예수님께서는 …….

이천 년 동안 예수님에 관한 소문은 무성하였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삶의 처지에서 예수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때로는 거부하며 내친 결과가

          예수님에 관한 무성한 소문으로 전해지고 또 전해졌겠지요.

소문을 다 믿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소문의 가치를 애써 무시할 이유도 없습니다.

어찌 되었거나 소문을 통하여 교회는 지금까지 제 모습을 유지하고 다듬어져 왔으니까요.

문제는 다양한 소문을 듣고 불안해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헤로데가 예수님을 만나 보고 싶어 한 것은 다른 뜻, 다른 권력, 다른 유명세를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도 죽인 헤로데가, 새로운 가르침을 얻어 새롭게 거듭나고자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한 것은 분명 아닙니다.

헤로데의 호기심은 권력에 대한 애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소문에 헤로데는 당황하였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잘못이었음이, 그 잘못이 드러날까 불안했을 터이지요. 헤로데의 모습이 저의 일상 모습인 것 같아 헤로데의 마음에 한참이나 머물며 이 묵상 글을 적고 있습니다.

무성한 소문과 그에 따른 다양한 해석들에도 교회는 지금껏 여유로운 의젓함으로 살아왔습니다.

잘못과 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잘못과 흠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오로지 예수님의 자비만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소문이 어떻든 예수님을 어떻게 평가하든, ‘나는 예수님 앞에 솔직히 서 있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하겠지요.

오늘도 여전히 끝기도 때 저는 하루 동안 저지른 잘못으로 아파하고 용서를 빌겠지요.

다만 자비로우신 예수님께서 위로해 주시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