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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 요한 세례자의 순교 - 허망한 죽음이 아니다

윤 베드로 2018. 11. 17. 08:01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세례자 요한은 왜 죽었을까?
          헤로디아의 앙심 때문에 죽었을까?
           
          그렇다면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한 여자의 앙심으로 인한 희생이고,
          그 죽음의 값어치가 없을뿐더러 무의미하고 허망한 죽음입니다.
           
          그러니 헤로디아의 앙심에 의한 죽음이 사실 차원에서 맞다 하더라도
          헤로디아에 의한 죽음, 그것도 앙심에 의한 죽음이 아니라고 해야 되고
          세례자 요한의 숭고한 희생정신에서 비롯된 죽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고,
          그래야 오늘 축일을 지내는 의미와 맞다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세례자 요한이 왕의 불륜에 침묵을 하였다면
          진리에 대한 증언을 하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진리를 위해 죽는 것이 바로 주님을 위해 죽는 것입니다.
          왜냐면 예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의 기도 독서에서 베다 성인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자기 목숨까지 바치게 된 것은

          우리 구속주이신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박해자가 그를 보고 그리스도를 부인하라하지 않고

          진리를 말하지 말라 하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죽었습니다.

          그리스도 친히 “나는 진리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우리는 얼떨결에도 주님의 십자가에 참여합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키레네의 시몬을 생각하는데
          시몬이 주님의 십자가를 진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의미부여 해야 할까요?
           
          지나가다 재수 없이 붙잡혀 주님의 십자가를 진 것으로 이해해야 할까요,
          아니면 주님께서 돌아가시는데 제자들처럼 배반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말해서 제자가 아니더라도 모르는 척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주님을 따라가다 보니 병사의 눈에 띄어 얼떨결에 진 것으로 이해할까요?
           
          또 생각을 하게 됩니다.
          키레네의 시몬은 주님의 십자가를 진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당신 때문에 왜 내가 십자가를 져야 하냐고 원망을 했을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의미 부여를 잘해야 함을 여기서 생각해야 합니다.
          살다보면 수없이 지게 되는 십자가와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죽음이 어떤 십자가와 어떤 죽음인지 말입니다.
           
          나의 십자가인지, 주님의 십자가인지.
          나 홀로 지는 십자가인지 주님과 함께 지는 십자가인지.
          재수 없어서 지게 되는 십자가인지 영광스럽게 지게 된 십자가인지.
           
          프란치스코는 권고에서 주님께서 당신을 따르려면

          자기를 버리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말씀을

          살짝 바꿔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십자가를
          매일 지는 일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싫건 좋건 매일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이 그 십자가가 자기가 져야 할 십자가가 아니라
          남이 져야 할 십자가라고 하며 남에게 그 십자가를 떠넘기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일상의 십자가를 남에게 미루지 않고 자기 십자가로 지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대로 매일 자기 십자가를 훌륭히 지는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 훌륭하게 십자가를 지고 더 현명하게 십자가를 지는 것은
          프란치스코의 권고대로 나의 십자가를 주님의 십자가로 지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선구자이기에 모든 것을 주님보다 먼저 했고,
          십자가와 죽음도 그래서 주님보다 먼저 지고 먼저 죽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구자는 못되더라도 추종자는 되어야 할 것이고,
          어차피 져야 할 나의 십자가를

          주님을 따르는 십자가로 바꿔져야겠습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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