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다니엘서 공부

다니엘 3장 공부② : 아자르야의 노래와 세 젊은이의 노래

윤 베드로 2017. 11. 5. 10:34

아자르야의 노래와 세 젊은이의 노래(3,24-90) 


*3,24-90 :

이 부분은 희랍어 원본에서 번역되어

다니엘서 아람어 원본에 추가된 것이다.

이 부분은 현재 보존되어 있지 않지만,

원래는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집필되어 있었다.

교회는 언제나 이 부분을 정전 성서의 일부분으로 간주해 왔다.

공동 번역성서에서는 이 부분을 제2경전으로 분리해 놓았다.


3,24-90 : 아자리야의 노래와 세 젊은이의 노래

느브갓네살 왕때 사드락(아나니야)과 메삭(미사엘)과

아벳느고(아자리야)가 느브갓네살 왕이 만든 神像 앞에 절하지 않는다하여

느브갓네살의 王命으로 그들이 활활타는 큰 불가마 속에 집어넣어진다.

그런데 거기서 깜짝 놀랄 일들이 벌어졌다.

그들이 타죽지 않고 천사와 더불어 거닐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다니엘 3장 24-45절, 51-90절에 보면 그때 성령의 인도를 따라

부른 노래의 내용들이 그대로 적혀져 있다.

그 노래의 내용들은 모든 우주 만물을 예로 들어

하느님을 찬미한 내용들이다.

이 노래의 내용들은 꾸며낸 이야기꺼리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것도 한 국가의 왕실 안에서 일어난 명명백백한 역사적인 사실인 것이다.


네부카드네자르가 기적을 보고 하느님을 찬미하다(3,91-97) 

 

3,91-97(3,24-30) :

하느님은 세 사람의 신앙을 통하여 바빌론 제국에

“만유의 주님”되심을 스스로 나타내 주셨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 가운데는

어떤 사람도 분노한 왕의 명령에 의하여 평소보다 7배나 뜨겁게 한

불가마에 결박한 채 던져진 사람들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즉 뜨겁게 타오르는 불가마속에서는 인간적인 어떤 요행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불가마에서 그들이 무사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공개적으로 고백한 하느님께서 “만유의 주님”이라는

것을 증거 하는 것이 되었다.

느부갓네살은 분노하여 그들이 불가마에서 잔인하게 죽기를 기대하며

그곳을 응시했지만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결박된 세 사람을 불가마에 던졌는데

그곳에는 결박되지 않은 네 사람이 거닐 고 있었고

그 중 하나의 모습은 마치 신들의 아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느브갓네살은 이와 같은 광경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직접 불가마 가까이 가서 세 사람에게 나오라고 말한 것이다.

그들이 나왔을 때 그곳에 있던 총독과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그들의 모습을 확인하였고

그 결과 불이 그들을 해치지 못했음을 확인했다.

이 사건은 결국 바빌론 제국 전체에 하느님만이 “만유의 주님”되심을

증거 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 사건은 신앙을 지킨 세 사람에게 구원의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은혜의 기회가 되었고 바빌론에게도 이스라엘의 하느님만이

만유의 주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은혜의 기회가 되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들이 행하는 믿음의 행위는 자신들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유익을 가져다준다.

다음은 느부갓네살의 고백이다.

“네부카드네자르가 말하였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자기들의 하느님을 신뢰하여 몸을 바치면서까지

임금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들의 하느님 말고는

다른 어떠한 신도 섬기거나 절하지 않은 당신의 종들을 구해 내셨다.(3:28)”

왕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 바빌론 제국에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이제 나는 칙령을 내린다. 어떠한 민족이나 나라나 언어권에서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의 하느님께 욕되는 말을 하는 자는

사지가 찢겨 나가고 그의 집은 쓰레기 더미가 될 것이다.

이처럼 구원을 베푸실 수 있는 신은 다시 없다.

그러고 나서 임금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에게

바빌론 지방에서 높은 벼슬을 내렸다."(30,2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