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예레미야서 공부

예레미야서 17장 공부 : 속이는 자와 속이지 않는 자

윤 베드로 2017. 5. 16. 07:16

주님의 분노로 죄인들이 재산을 빼앗기다(17,1-4)

 

*예레미야서 17장은 16장과 마찬가지로 예언자의 단편적인 설교들을 모아 놓았다.

내용적으로 보면 유다의 죄에 대하여(17:1-4),

사람을 의지하는 자와 하느님을 의지하는 자의 비교(17:5-8),

만물보다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17:9-13),

예레미야의 기도(17:14-18),

안식일 준수에 대하여(17:19-29) 등이다.

 

17,1-4 :

하느님은 유다의 죄에 대하여 “유다의 죄는 금강석 촉 철필로 기록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제단 뿔에 새겨졌다(17:1)”라고 말씀하셨다.

유다의 마음 판에 그들의 죄가 새겨져 있다는 것은

            그들이 행하는 모든 일이 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 주고,

             “금강석 촉 철필로 기록한다”는 것은 유다의 마음이 너무 완고하여

              아무도 그들의 악한 행위를 돌이키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 “내가 너에게 준 상속 재산에서 손을 떼게 되리라(4절)”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유다에게 베풀어 주셨던 은혜를 취하여 가시겠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유다가 지금까지 누릴 수 있었던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속이는 자와 속이지 않는 자(17,5-11)

 

17,5-8 :

하느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유다와 예루살렘에게 사람을 의지하며 사는 자들과

                하느님을 의지하며 사는 자들의 결과를 비교 해 줌으로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의뢰하며 살도록 촉구하셨다.

하느님은 사람들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은 저주를 받아서

                사막의 떨기나무 같이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하느님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을 물가에 심은 나무 같아서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은 우리의 삶의 황폐함과 풍요로움은

                환경에 의존되지 않고 하느님께 의존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17,9-11

하느님은 유다에게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다.

사람은 피조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의식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느님을 의식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지만

                또한 자신을 의식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느님보다 높아지려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은 자는

                제가 낳지도 않은 알을 품는 자고새와 같다. 한창때에 그는

                재산을 잃고 끝내는 어리석은 자로 드러나리라.(17:10,11)"

마음이 하느님을 떠나 불의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수고가 마치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는 것과 같다.

자고새는 다른 새가 낳은 알을 자기가 낳은 알인 줄 알고 품어 부화한다.

그러나 부화한 새끼들은 자신들을 품어 부화한 어미새가

            자기들의 모습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속히 둥지에서 떠난다.

따라서 자고새의 수고는 어떤 결실도 얻지 못한 헛된 수고일 뿐이다.

 

예레미야의 세 번째 고백(17,12-18)

 

예레미야는 하느님을 영화로우신 옥좌, 성소, 그리고 이스라엘의 희망으로 고백하였다.

이와 같은 고백은 예언자로 하여금 하느님 앞에서 마땅히 해할 일이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즉 하느님을 높으신 분으로 아는 사람은 하느님을 경배하지만

                    무지한 사람은 하느님을 떠날 것이다.

유다는 하느님에 대하여 무지했기 때문에 생수의 근원되신 하느님을 떠났다.

이처럼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하느님을 아는 지식에 의존 되어 있는 것이다.

 

14-18에서 예레미야는 자신의 활동가운데 당하고 있는 고통을

                   하느님께 호소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해 주기를 간구하고 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였지만, 결과는 상처와 고통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나를 낫게 하여 주소서”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간구했던 것이다.

그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선포했을 때

        백성들은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예언자에게

        “주님의 말씀이 어디에 있나? 내려와 보시라지!”라고 했다(17:15).

그들은 예언자가 대언하는 말씀은 실현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거짓 예언자로 치부하고 이처럼 그를 조롱하였던 것이다.

예언자가 대언한 말씀이란 유다가 회개치 아니하면 하느님께서

                이방인을 보내심으로 그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라는 것이었다.

예레미야는 고통의 때에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 하느님께 치유해 주시기를 구했다.

 

안식일은 주님께 성별된 휴식(17,19-27)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주민에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킬 것을 말씀하셨다(17:19-23).

그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이 하느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안식일을 거룩히 하면

            그들의 나라는 영원히 굳게 설 것이고,

            예루살렘 성전은 예배의 중심지가 될 것이지만(17:24-26),

            순종치 아니하면 하느님께서 심판의 불이 내려 모든 것을 삼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불이 영원히 꺼지지 아니할 것이다(17:27-27).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 이 말씀을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 모두에게 듣도록 하셨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십계명 중의 한 계명인 안식일에 대한 율법만을 말씀하시며

                그 계명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에 따라서

               유다가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이처럼 안식일은 세속적인 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가운데서

            하느님을 예배함으로 그 동안 생활에 몰두함으로

            무관심했던 신앙을 회복할 수 있었고,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을 돌아봄으로 신앙의 고백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소극적으로는 무관심했던 신앙을 회복해 주는 시간이었으며,

               적극적으로는 신앙을 재창조하는 시간이었다.

이처럼 안식일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 때문에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한

            그들의 신앙은 날이 갈수록 새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즉 안식일은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신앙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원천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뜻대로 안식일을 지키는 한, 그들의 신앙은 새로워질 수밖에 없었고

     새로워진 신앙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뿐만 아니라

     십계명 중에서 나머지 모든 계명들도 지킬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결국은 그들로 하여금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약속된 축복을 받게 해 주었고

            이로 인하여 그들의 나라를 영원히 굳게 서게 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하느님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주민에게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셨고,

        이 계명의 말씀을 지키면 나라가 영원히 설 것과

        예루살렘 성전이 영원히 예배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그들 모두는 황폐해 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