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여호수아기공부

아이를 점령하다(8,1-29)

윤 베드로 2016. 12. 25. 10:51

Ⅰ-11. 아이를 점령하다(8,1-29)

 

*아이 점령(7,1-8,29) 단락은 : 여섯 개의 설화 장면으로 구성된다.

즉 ①자만심에 찬 공격과 아이에서 패배(7,2-5)

②국가적 애도(7,6-12)

③공개 재판(7,13-26)

④구원 신탁(8,1-2)

⑤아이 성 전투(8,3-23)

⑥아이 성 멸망(8,24-29).

 

*8장에서는 : 7장의 치욕스러운 패배를 회복하는 사건이 극적으로 전개되어 있다.

하느님의 진노의 원인이 되었던 아칸을 처형함으로써

이스라엘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보호를 받게 되며 힘을 얻게 된다.

⇒아이 성 파괴는 전쟁 보고서라기보다 정탐꾼 설화로 나타난다.

이스라엘의 정탐꾼 설화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하느님의 백성이

어떻게 적들에게 패배했는가를 설명하는 쪽으로 전환되었다.

이것은 여호 2장과 정확하게 대조된다.

 

*아이 성 전투 : 야음(夜陰)을 틈 타 여호수아는 부대를 파견하여 아이 성 서편에 매복 시켰다.

다음 날 아침 여호수아는 주력 부대를 이끌고 아이 성 동쪽에서 공격을 개시하였다.

지난 번 전투(7:4, 5)로 득의만만해진 아이의 왕은 성문을 활짝 열고

나와 맹렬한 기세로 여호수아 군대를 반격했다.

그러자 여호수아 군대는 패하는 체하고 거짓 후퇴 작전을 펼쳤다.

아이의 모든 군사가 더욱 의기양양하여 여호수아 군대를 추격하자

그 때를 노리고 있던 이스라엘의 매복 군대가 무방비 상태의

아이 성에 들어가 그 성을 불 질렸고, 매복 군대와 함께 협공 작전을 펼쳤다.

물론 승리는 여호수아 군대에게로 돌아갔고

그날 아이 성은 이스라엘 군대에게 완전히 전멸 당하였다.

 

1절, “두려워하지도 말고 겁내지도 말라” :

하느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정복의 大業을 맡기시면서 같은 말을 하셨다.(1:6, 7, 9).

아이 점령 때 예상 밖의 실패로 낙심하고 있을 여호수아에게

그 성을 다시 공격할 수 있도록 새로운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2절, 이 구절에서는 여호수아가 예리고 성을 정복했듯이

아이 성 또한 철저히 정복할 것이로되

단지 하나의 차이점이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즉 그것은, 예리고 성을 정복하였을 때는 거주민은 물론

모든 노략물과 가축까지 불태워 하느님께 바치도록 했지만(6:21, 24),

아이 성 정복에서는 노략물과 가축은 그들의 소유로 삼도록 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예리고 성은 가나안 땅의 첫 번째 정복지였기 때문에

첫열매로 하느님께 온전히 드려지는 것이 마땅하였지만(탈출 23:19)

그러나 이제 계속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노략물의 재활용이 반드시 필요하였기 때문에

아이 성 정복에서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3절, “힘센 용사 삼만 명” : 히브리어 원문의 이 표현은 그 숫자가

매우 많은 것 같은 데 필경사의 오류일 것이다.

70역본의 몇몇 사본에는, 실패로 끝난 1차 공격에 가담했던

병력이 “삼천 명”이라고 되어 있다(7,4).

또 12절에서는 “오천 명”이라고 언급되고 있다.

 

4-8절, 아이 정복에 대한 명령은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성읍 뒤로 가서 성읍 가까이 매복하고 예비하라(4절).

②매복한 곳에서 일어나서 그 성읍을 점령하라(7절).

③성읍을 취하면 불을 지르고 하느님의 말씀대로 행하라(8절).

 

9절, “아이 서쪽 베델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다” :

두 지점 사이의 거리는 도보로 약 15분 정도 걸리고,

두 지역 사이에 높은 돌산이 있었기 때문에 매복하기에는 적절한 곳이었다.

한편 베델은 구약 성경에 65번이나 기록된 중요한 곳으로,

아브라함이 처음 이곳에 제단을 쌓고 하느님을 경배한 이래

(창세 12:8),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장소이다.

 

11절, “그들과 아이 사이에는 계곡이 있었다.” :

아이 주변은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이 골짜기를 건너서

직접 아이를 공격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므로 아이 왕의 자만심을 이용하여 유인 작전을 구사한

여호수아의 전략은 참으로 적절한 전술이었다.

 

13절, “여호수아는 그날 밤에 계곡 한가운데로 갔다” :

여호수아는 자신의 행동이 적군에게 간파당할 것을 십분 고려하여

의도적으로 지형이 낮고 불리한 골짜기로 군대를 이끌고 들어감으로써,

아이 성 군대가 안심하고 반격해 오도록 유인한 듯하다.

여호수아의 이러한 유인전략은 14절에서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15-16절, 여호수아는 적군의 자만심을 십분 활용하여 유인 혹은 후퇴 작전을 썼다

 

17절, “성문을 열어 놓고” :

고대 전쟁에서 城門은 그 성읍의 존망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즉 성문을 지키느냐 아니면 성문이 뚫리느냐에 따라 성읍의 운명이 좌우됐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 성은 스스로 성문을 열고 뛰쳐나왔으니

그들은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그처럼 무모한 행동을 한 이유는 자만심 때문이었다.

 

18절, “네 손에 든 창을 아이 쪽으로 내뻗어라” :

여기서 ‘손에 든 창’은 비교적 짧고 조그만 창(욥기 41:30)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지휘봉을 말한다.

 

19절, “성읍에 불을 질렀다” :

이 불은 도망가던 이스라엘 군대에게는 작전대로 맞아 떨어졌으므로 즉시 반격하라는 신호였다.

그러나 추격하던 아이 군대에게는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계략에

빠진 것을 알게 하여 戰意를 상실하고 두려움에 떨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여기서의 불은 이스라엘이 성을 장악했다는 신호용 불이었다.

 

20-25절, 여호수아의 군대가 아이 성을 격파한 기본 전술 전략은

매복 → 유인 → 협공 등 3단계 전략이었다.

그 중 본문은 마지막 挾攻 작전을 펼치는 부분이다.

즉 한 번의 승리(7,4-5)로 인해 자만심에 들뜬 적군의 심리를

역이용하여 일단 성에서 유인해 낸 뒤, 복병으로 하여금 성을 점령케 하고,

이후 앞뒤 양쪽에서 협공함으로써

방심한 적의 허를 찌르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된 부분이다.

결국 전쟁은 성을 장악한 복병들의 신호용 불을 기점으로,

성을 장악한 복병들의 후방 공격과 도망하던 이스라엘

주력 부대의 세찬 반격으로 인해 四面楚歌가 되어마치 독 안에 갇힌 쥐 모양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는 아이와 베델의 연합 군대를 철저히 격파한 여호수아 군대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26절, 이는 출애굽 직후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가 지팡이를 잡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리면 졌던 사실을 연상시킨다(탈출 17:8-16).

당시 여호수아는 모세로부터 군대 지휘관으로 위임 받아 아말렉을 전멸하는데 앞장섰으며,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이 전투의 승리 사건을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고 하셨다(탈출 17, 13-14).

 

27절, 이는 2절에서 주어진 하느님의 명령을 내린 이유는

예리고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거둔 첫 열매된 성읍으로서

모든 것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쳐야 했지만,

그 이외의 성읍에서는 거주민은 죽이되,

가축과 전리품은 취득하여 계속되는 가나안 정복 전쟁에

재활용되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28절, 고고학 자료와 성경의 전후 문맥을 통해서 볼 때,

아이는 여호수아에 의해 함락된 이후 오랫동안 황폐한 채로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9절에는 생포된(23절) 아이 임금의 처리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처참한 처형인데, 이토록 가혹하게 다룬 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즉 그 이유는 ①단순히 백성들의 불타는 적개심을 만족시켜 주고자함 때문이 결코 아니라,

②우상 숭배의 소굴인 가나안 땅의 수괴(首魁)에 대한 공의로운 주님의 심판 때문이었다.

 

“아이 임금을 저녁때까지 나무에 매달았다” :

죽은 자의 시체를 다시금 나무에 매다는 행위는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후에까지라도 모욕과 수치를 당하도록 하게 함이었고,

아울러 그것을 보는 자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 하여

같은 행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경고하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