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리아와 니네베
아시리아는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에서 일어난 아시리아 제국의 첫 번째 수도다.
초기에 ‘아시리아’라는 말은 티그리스 강 상류 지역을 부르는 말이었다.
나중에 아시리아는 바빌론처럼 나라의 이름이자 동시에 도시 이름으로,
그리고 사람 이름으로 자유롭게 사용되기도 했다.
이곳은 지금의 이라크 모술 지역에서 티그리스 강을 따라 남쪽으로 약 100㎞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아시리아인은 오랫동안 바빌로니아 세력 밑에서 지배를 받았다.
아시리아는 기원전 7세기에 바빌론과 이집트를 정복해 근동 최초의 통일 제국이 됐다.
북부 메소포타미아의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는 아시리아는
티그리스 강변의 지정학으로 아주 좋은 위치에 있다.
아시리아인들은 북쪽과 동쪽은 강이 자연적인 방어를 해주고 있어
남쪽과 서쪽에 방어벽을 구축해 도시를 방어했다.
그러나 그들의 영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시리아는 점령지 주민의 강제 이주 등 가혹한 통치를 강행해 저항을 많이 받았다.
기원전 612년에 메디아와 바빌론 연합군이 수도 니네베를 함락하였고,
이어 기원전 609년 아시리아는 완전히 멸망하였다.
오늘날 이라크 내에 있는 성경 속 도시들은 거의 구약 시대와 관련이 있다.
그중에서도 아시리아는 바빌론 다음으로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중요한 도시다.
창세기에 보면 에덴 동산에 대한 이야기에 아시리아를 흐르는 강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셋째 강의 이름은 티그리스인데, 아시리아 동쪽으로 흘렀다.
그리고 넷째 강은 유프라테스이다”(창세 2,14).
기원전 922년 솔로몬 왕의 죽음 이후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왕이 통치하는
남쪽의 유다 왕국과 여로보암이 통치하는 북쪽의 이스라엘로 분열됐다.
남쪽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로 구성되었고, 북쪽은 나머지 열 지파로 구성되었다.
기원전 931년에 시작된 이 분열 왕국은 이스라엘 왕국이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 망하고,
유다 왕국이 이스라엘보다 나중인 기원전 586년에 바빌론에 멸망했다.
북쪽 이스라엘 왕국은 초대 왕인 여로보암 1세부터 호세아 왕까지 모두 19명의 왕이 다스렸다.
19대 호세아 왕 때 아시리아 왕인 사르곤의 침공을 받아 사마리아가 함락됐다.
그리고 사마리아 주민들은 아시리아로 끌려갔고 사르곤은 다른 지방 사람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켰다.
사마리아로 옮겨온 이방인들은 정착해 원주민인 이스라엘 사람들과 동화됐다.
“아시리아 임금은 바빌론과 쿠타와 아와와 하맛과 스파르와임에서 사람들을 데려다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성읍들에 살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성읍들에서 살았다”(2열왕 17,24).
그런데 이방인들이 이주해 올 때 이교 신앙도 함께 가지고 왔기에 사마리아에는 혼합 종교가 생겼다.
그래서 예수님 시대에 유다 사람들이 사마리아인을 경멸했던 것이다.
그리고 남쪽 유다의 요시아 왕은 아시리아를 도우려는 이집트군과 전투를 위해 출병했다가 전사했다.
바빌론 제국에 앞서 당대에 메소포타미아와 그 주위의 세계를 지배하며 호령했던 아시리아 제국이지만,
오늘날 그 모든 영광은 사라지고 그 화려한 유적마저 많이 도굴당했다.
그 흔적과 기록마저도 보존이 잘 안 돼 있어 권력 무상을 느끼게 한다.
니네베
니네베는 고대 아시리아 제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인구가 많았던 도시로
티그리스 강 동쪽, 오늘날의 모술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폐허로 남아있지만 남아 있는 유적을 통해 짐작컨대 큰 규모의 성벽에 둘러싸인
거대한 도시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니네베 성은 면적이 넓어 성을 한 번 도는 데 3일이 걸린다고 한다.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요나 3,3).
최초의 거주지는 신석기 시대의 작은 움집으로 기원전 7000년 쯤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니네베가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창세기에서다.
노아의 홍수 이후 노아와 그 자손들은 세상에 흩어져 살게 된다.
노아의 둘째 아들인 함의 후손 중 에티오피아가 니므롯을 낳았는데,
그는 주님 앞에도 알려진 용맹한 사냥꾼이었다.
그는 막강한 권력을 가졌기 때문에 여러 곳에 큰 도시를 건설했는데
아시리아로 가서 세운 도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니네베다(창세 10,8-12).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 군사 18만 5000명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치러왔으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들이 모두 죽어 주검뿐이었다.
하룻밤에 몰살되었고 산헤립은 간신히 목숨을 보전해 니네베로 돌아가 니스록의 신전에서 예배드렸는데,
결국 그는 두 아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날 밤 주님의 천사가 나아가 아시리아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쳤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들이 모두 죽어 주검뿐이었다.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은 그곳을 떠나 되돌아가서 니네베에 머물렀다”(2열왕 19,35-36).
니네베가 성경에서 주목을 받는 것은 역시 요나 예언자 이야기 때문이다.
니네베 성은 물질적으로 번창하여 생활이 윤택해지자 범죄가 많아져 하느님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요나를 보내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게 했으나
요나는 주님을 피하여 타르시스로 달아나려고 길을 나서 야포로 내려갔다.
이에 하느님은 풍랑을 일으켜 결국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지내며 회개했다.
이후 요나가 니네베로 가서 하느님 말씀을 전하면서 왕을 비롯해 모든 백성이 회개해서
멸망을 피하게 되었다.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요나 3,5-6).
그리고 기원전 606년에 선지자 나훔과 스바니아의 예언대로 니네베는 바빌론에 의해 멸망했다.
“너를 보는 자마다 너에게서 달아나며 “니네베가 망하였다! 누가 그를 가엾이 여기겠느냐?” 하고
말하리니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해 줄 자들을 찾으랴?”(나훔 3,7)
니네베 지역의 산업은 중세부터 직물로 유명했으며 바그다드 다음가는 대도시로
이라크 경제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특히 1939년 북부 교외에서 유전이 발견된 후 석유개발기지와 교통 요지로 급속히 발전했으나
이라크 전쟁으로 다시 쇠퇴했다.
지금은 치안 문제로 쉽게 갈 수 있는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니네베는 이라크의 다른 도시들보다 사원이 많고 고대 아시리아의 수도답게 많은 유적이 있다.
현재 이곳에서 발굴된 많은 고고학적 유물은 영국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아시리아
①아시리아는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에서 일어난 아시리아 제국의 첫 번째 수도.
아시리아는 바빌론처럼 나라 이름이자 동시에 도시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②아시리아는 기원전 7세기에 바빌론과 이집트를 정복해 근동 최초의
통일 제국이 됐으나, 그들의 영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③북 이스라엘은 아시리아 왕인 사르곤의 침공을 받아 사마리아가 함락됐다.
☆니네베
①니네베는 고대 아시리아 제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인구가 많았던 도시로
지금은 폐허로 남아있지만 남아 있다.
②니네베가 성경에서 주목을 받는 것은 요나 예언자 이야기 때문.
니네베 성은 물질적으로 번창하여 생활이 윤택해지자 범죄가 많아져 하느님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요나를 보내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게 했으나
요나는 주님을 피하여 타르시스로 달아나려고 길을 나서 야포로 내려갔다.
이에 하느님은 풍랑을 일으켜 결국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지내며 회개했다.
이후 요나가 니네베로 가서 하느님 말씀을 전하면서 왕을 비롯해 모든 백성이 회개해서
멸망을 피하게 되었다.(요나 3,5-6).
③니네베는 이라크의 다른 도시들보다 사원이 많고 고대 아시리아의 수도답게 많은 유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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