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노래를 부른 즈가리야
유다 왕 헤로데 시대에 즈가리야라는 제사장이 있었다.
그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모두 모세의 형 아론의 후예로 이른바 뼈대 있는 제사장 출신의 후손이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제였던 즈가리야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하느님의 계명과 규율을 나무랄 데 없이 지키는 신실한 신앙인이었다.
그런데 두사람 사이에는 불행히도 아이가 없었다.
"여보 미안해요. 제가 아이를 낳지 못해 조상님께 죄를 지어서…."
"아니오. 그게 어디 당신 탓이겠소. 하느님께서 아이를 주지 않으시니 어쩌겠소.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부부가 건강하고 행복하니 그것이면 되었구려."
말은 그렇게 해도 두 부부는 평생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했을 것이다.
"선하신 하느님 저희 부부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저희에게 자식을 내려주십시오."
그러나 두 사람의 나이가 점점 많아져 이제는 아이에 대한 생각을 접고 살 정도가 되었다.
어느 날 즈가리야가 성전에서 여느 때와 같이 분향을 하고 있었다. 자욱한 향 연기가 피어올랐다.
바로 그때 제단 오른 쪽에 천사가 나타났다.
즈가리야는 순간 두려움에 떨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을 감아버렸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즈가리야! 하느님은 당신의 기도를 들었소.
이제 곧 당신의 아내 엘리사벳은 사내아이를 낳을 것이오. 그 아이를 낳으면 요한이라 이름 지으시오.
장차 그 아이는 하느님을 위해 큰 일을 하게 될 아이요.
그 아이는 성령으로 가득 차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하느님께 돌아오게 하는 이가 될 것이오."
그러나 즈가리야는 천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말을 그대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제 아내는 할머니, 나는 할아버지인데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단 말입니까?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입니다."
그러자 천사는 화를 버럭 냈다.
"당신은 내가 누군지 알기나 하고 그런 막말을 하는 거요? 난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가브리엘 천사요.
이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는데 당신이 한마디로 내 말을 자르다니.
당신은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으니 벌을 받을 것이오.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말을 하지 못할 테니 그런 줄 아시오."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즈가리야가 변명할 사이도 없이 천사는 휑하니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 정말 그 순간부터 아무리 말을 하려해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즈가리야가 밖으로 나와 말을 못하게 된 것을 알자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분명히 제단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너무 궁금하다."
집에 돌아오니 엘리사벳은 말을 못하는 남편의 모습에 너무 놀라 질려버렸다.
손짓 발짓으로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즈가리야의 얼굴엔 광채가 빛났다.
엘리사벳은 마음속으로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쁜 일만은 아니구나하고 마음을 놓았다.
드디어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임신을 했다. 그리고 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 아이가 바로 세례자 요한이다. 이웃과 친척들이 몰려와서 크게 기뻐하고 축하해 주었다.
사람들은 아이의 이름을 지으려고 여러 의견을 말했다.
"아버지 이름을 따서 즈가리야라고 지읍시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반대했다.
"안돼요. 요한이라고 해야 합니다." "아니 무슨 소리요. 우리 가문엔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그러자 친척들은 아이 아버지에게 무슨 이름이 좋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즈가리야는 널빤지를 가져오라고 했다. 즈가리야는 널빤지에 글씨를 썼다.
"아이 이름은 요한." 그 순간 즈가리야의 입이 풀리면서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에 가득 찼다.
즈가리야는 다시 말을 하게 되자 성령에 가득 차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찬미하여라,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을! 당신의 백성을 찾아와 해방시키셨으며,
우리를 구원하실 능력있는 구세주를 당신의 종 다윗의 가문에서 일으키셨다.
아가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예언자가 되어 주님보다 앞서 길을 닦으며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 길을 주님의 백성들에게 알리게 되리니,
이것은 우리 하느님의 지극한 자비 덕분이라
우리의 발걸음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루가 1,67-79 참조)
즈가리야는 신앙이 깊은 사제였지만 처음에 하느님이 보낸 천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으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신앙인에게 늘 상존하는 유혹은 끊임없는 인본주의로의 회귀가 아닐까.
하느님의 역사하심도 인간의 눈으로 판단하고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한다.
그러니 보이지 않고 증명되지 않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는 합리와 이론의 절대주의에 빠진다.
그러나 신앙행위는 무한성, 영원성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하느님의 존재와 사랑을 신뢰하고 믿는 순수하고 순결한 마음만이
세상과 인간의 삶 속에 널려있는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왕자에게 말한 너무나 간단하지만 중요한 인생의 진리가 생각난다.
"우리는 마음으로만 진실을 볼 수 있단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거든."
<평화신문, 허영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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