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교본 해설/레지오교본 해설

[스크랩] 제39장. 레지오 사도직의 주안점

윤 베드로 2015. 8. 22. 17:10

제39장 레지오 사도직의 주요점

 

새교본의 레지오 사도직의 주요점은 현교본 제38장에서 다루고 있으나 차이점이 있다. 새교본은 항목 순서 배열이 다르다. 그뿐 아니라 현교본 39장 "가서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 15)에서 다루고 있는 3가지 항목을 새교본 본문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새교본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레지오 단원의 용기는 현교본에서 레지오 단원의 의무 사항에 들어 있다(28장 3항, 196-198쪽 참조). 현교본에는 레지오 사도직의 주요점이 모두 32항목이지만 새교본에는 총 35항목으로 구성되었다.

레지오 사도직의 주요점은 레지오 단원이 사도직 활동을 할 때 명심하고 지켜야 할 행동 지침이다. 레지오의 사도직 활동은 주로 이웃의 구원을 위한 봉사 활동과 선교 활동이다. 행동 단원은 자신의 성화와 이웃의 구원을 위해 매주 회합에 참석하며 1주일에 두 시간 이상 사도직 활동을 하도록 되어 있다. 사도직 활동은 레지오의 외부적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단원들의 활동 덕분에 교회가 발전하고 신자수가 늘어나며 냉담자가 줄어든다. 단원들은 가정의 주부처럼 드러나지 않게 성실히 봉사 활동을 한다.

레지오 활동의 동기는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와 성모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에서 비롯한다.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에 관한 성서 말씀은 특히 다음 두 곳에 잘 나타나 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 40) ;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사도 9, 4-5). 레지오 활동은 또한 인류의 모친이신 성모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단원들은 성모님과 일치하여 사도직을 수행한다.

레지오의 사도직 활동은 순수한 영적 활동이다. 물질적인 구제 활동이 아니다. 따라서 교본은 레지오 활동이 물질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특별히 강조한다.

새교본에서 제시하고 있는 레지오 사도직의 주요점은 다음과 같다.

1) 마리아와 함께 가지 않으면 영혼들에게 접근할 수 없다,

2) 무한히 값진 영혼에게 무한한 인내와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3) 레지오 단원의 용기,

4) 상징적 행동,

5) 적극적인 활동을 해야한다,

6) 활동은 쁘레시디움이 주관한다,

7) 짝을 지어 방문하는 것은 레지오 규율의 안전 장치이다,

8) 레지오 활동의 본질은 친밀한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9) 집집마다 방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0) 물질적 원조는 금지한다,

11) 모금을 금지한다,

12) 레지오에 정치는 금물이다,

13) 모든 영혼을 찾아서 대화하라,

14) 향상될 가망이 없을 만큼 나쁜 사람도 없고 향상될 필요가 없을 만큼 훌륭한 사람도 없다,

15) 막연한 사도직은 가치가 없다,

16) 감화의 비결은 사랑이다,

17) 레지오 단원은 활동 대상자 하나 하나 안에서 그리스도를 뵙고 봉사한다,

18) 마리아는 레지오 단원을 통하여 성자를 사랑하고 보살피신다,

19) 겸손하고 정중한 단원에게는 어느 집 문이나 열린다,

20) 공공기관을 방문할 때의 태도,

21) 레지오 단원은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22) 악평에 대한 태도, 23) 결코 낙심할 필요는 없다,

24) 십자가의 표지는 희망의 표시이다,

25) 성공은 기쁨이며 실패는 연기된 성공일 뿐이다,

26) 쁘레시디움이나 단원들의 결점에 대한 태도,

27) 사욕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28) 단원들에게 금품을 주어서는 안된다,

29) 레지오 안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

30) 다리를 놓는 일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31) 조만간 레지오 단원은 가장 어려운 활동을 착수해야 한다,

32) 위험에 대한 태도,

33) 레지오는 교회가 벌이는 전투의 최전방에 서야 한다,

34) 레지오 단원은 가톨릭적인 것이면 무엇이나 전파해야 한다,

35) 널리 알려야 할 동정녀

동정녀는 모든 이의 어머니이시니 모든 이에게 소개하고 알려야 한다.

행동 단원들이 이러한 레지오 사도직의 주요점들 즉 사도직 활동의 행동 지침을 준수할 때 단원 자신의 개인 성화와 질적 향상은 물론 레지오 전체의 발전으로써 레지오의 궁극 목적인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제1항 : 마리아와 함께 가지 않으면 영혼들에게 접근할 수 없다



이 항목은 원래 교본 39장의 선교에 관한 항목 중의 하나였으나 새교본에서는 레지오 사도직의 주요점들 가운데 첫 자리에 두게 되었다. 왜냐하면 성모 마리아는 사도들의 모후로서 레지오의 사도직 활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항목은 성모 마리아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 및 성모님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함으로써 마리아와 함께 가지 않으면 영혼들에게 접근할 수 없음을 밝히려고 하기 때문에 그 부피가 무려 9쪽이나 달해 레지오 사도직의 주요점들 가운데 가장 긴 내용이다. 이 항목의 내용은 두 책 즉 <마리아께 대한 지식>(The Knowledge of Mary)과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True Devotion to the Blessed Virgin)을 요약한 것이다.

프랭크 더프는 1918년에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가 지은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을 구입하여 통독했으나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1919년 10월 친구 조 가벳의 알콜 중독 치유를 위해 멜러리 산의 시토회 봉쇄 수도원에서 며칠간 지내면서 <마리아께 대한 지식>을 읽게 되었다. 그 책은 미국의 요셉 드 꼰칠리오(Joseph De Concilio) 신부의 저서로서 1878년에 뉴욕에서 출판된 것이었다. 그 책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성모 마리아의 지위 및 역할, 하느님의 은총에 의한 성모님의 특전, 성모 마리아의 지상 생활로 구성되어 있었다. 더프는 그 책을 통해서 자기에게 부족했던 마리아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cf. R. Bradshaw. Frank Duff, Founder of the Legion of Mary, pp. 56-58).

그런 후에 프랭크 더프는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을 다시 읽고 큰 감명을 받게 되었다. 그는 <마리아께 대한 지식>을 통해 몽포르 성인의 책에서 놓친 마리아론의 토대를 다시 쌓게 된 것이다. 그는 1921년 8월, 앞으로 최초의 레지오 단원으로 탄생할 사람들과 함께 몽포르 성인의 <참된 신심>이 가르치고 있는 '하느님 계획에 있어서의 마리아의 역할'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 결과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성모님은 훨씬 더 위대한 분이라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런 다음 레지오의 첫 모임에서 그들은 성모님께 의탁하였고 곧 이어 세상 곳곳에 그들이 사도직 활동이 뻗어 나가게 되었다(cf. Frank Duff, Victory through Mary, pp. 513-514).

프랭크 더프는 마리아와 함께 가지 않으면 영혼들에게 접근할 수 없음이 하느님의 계획임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레지오 단원들로 하여금 마리이와 함께 사도직 활동을 하면서 영혼들에게 접근하도록 하였다. 성모님을 뒷전에 감추지 않고 성모님과 함께 활동함으로써 사도직의 열매를 풍부히 맺게 되었다.

그는 후에 레지오의 협조 단원들에게도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 계획에 필수적인 고리'(Mary a Vital Link in God's Plan of Grace)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였다. 그 내용은 바로 교본 본문과 같은 것이다(프랭크 더프, 상게서, 205-220쪽 참조).

교본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11개조의 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1) 태초부터 마리아는 하느님의 마음 속에 계셨다,

2) 마리아는 예언을 통하여 생생하고 확실하게 계시되었다,

3) 주의 탄생예고(Annunciation)sms 마리아의 막중한 지위를 나타낸다,

4) 성부께서는 구원사업이 마리아에게 매이도록 하셨다,

5) 마리아 없이는 참 그리스도교가 없다,

6) 성자는 언제나 당신의 어머니와 함께 계신다,

7) 예수님과 아담 ; 마리아와 하와 ; 십자가와 나무,

8) 성령께서는 항상 성모님과 함께 일하신다,

9) 우리는 마리아께 어떤 지위를 드려야 하는가?

10) 모든 행동은 성모님의 피앗(Fiat)을 뒷받침해야 한다,

11) 마리아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라.

그러면 이 11가지 조목을 요약해 보자

1) 태초부터 마리아는 하느님의 마음 속에 계셨다

성부께서 태초부터 마리아를 마음속에 두시어 구세주와 운명을 같이 하도록 계획하셨다. 그리하여 마리아는 영원으로부터 모든 피조물 중에 유일하게 드높은 자리를 차지하셨다. 창세기 3장 15절의 사탄에 대한 구원의 첫 번째 예언대로 마리아는 모든 이 가운데 빼어난 존재로 인정받으셨다. 이처럼 하느님은 당신의 마음 속에 구세주와 함께 마리아를 구원의 공동사업자로 두셨던 것이다.

2) 마리아는 예언을 통하여 생생하고 확실하게 계시되었다

구약성서 안에 마리아가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예언을 통해 생생하고 확실하게 계시되었다. 예컨대 '동정녀, 동정녀와 아기, 여인과 아기, 임금님 오른편에 앉은 모후'(이사 7, 14 ; 미가 5, 2 ; 창세 3, 15 ; 1열왕 2, 19 참조) 등의 예언은 한 여인이 인류 구원의 으뜸 요소가 될 것임을 확인해 준다.

마리아는 새 하와로서 새 아담이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서 분리시킬 수 없는 필수적이 존재이고 모든 은총의 중개자이다. 따라서 마리아를 소홀히 하는 이들은 하느님 나라의 이방인이 된다.

3) 주의 탄생 예고는 마리아의 막중한 지위를 나타낸다

주의 탄생 예고(Annunciation)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평화 회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회담에서 하느님의 대표는 가브리엘 대천사이고 인간의 대표는 마리아이다. 천사의 아룀에 대한 마리아의 자유로운 응답 여하에 따라 전인류의 운명이 달려 있었다. 동정녀는 한참 동안의 머뭇거림이 있은 후에 자유로이 결단을 내려 "주님의 종이오니 당신 뜻대로 제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루가 1, 38)고 대답하였다. 이 대답이야말로 하느님을 이 땅위에 모셔오게 했으며 인류의 위대한 평화 조약을 발효시켰다.

4) 성부께서는 구원사업이 마리아에게 매이도록 하셨다

구세주의 강생은 주의 탄생 예고에 대한 마리아의 동의에 매여 있었다. 마리아의 동의에 의해 구세주가 마리아께 오셨고 동시에 온 인류에게도 오셨다. 결국 인류의 운명은 마리아의 수중에서 안전하게 되었고 인류의 구원 사업이 마리아께 매이게 되었다.

5) 마리아 없이는 참 그리스도교가 없다

마리아는 이 세상에 그리스도를 모셔 왔기 때문에 마리아 없이는 참 그리스도교가 없다. 세례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자녀뿐 아니라 마리아의 자녀도 되게 한다. 구원의 은혜는 마리아를 통해서 신자들에게 전달된다. 그러므로 모든 세대의 사람들은 이 땅위에 참 그리스도교를 가져오게 한 인류의 어머니 마리아를 복도다 일컫고 공경하며 감사드려야 한다. 마리아를 공경하고 마리아께 감사하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 신자의 특징이 되어야 한다.

6) 성자는 언제나 당신의 어머니와 함께 계신다

성탄전야에 마리아를 문전에서 박대한 사람들은 마리아가 잉태한 예수님을 박대한 것이다(루가 2, 7 참조). 성자 예수님은 늘 당신의 어머니와 함께 계신다. 목자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갔을 때에도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계셨고(루가 2, 16 참조)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경배할 때에도 역시 함께 계셨다(마태 2, 11 참조). 성전에서의 봉헌식에도 마리아가 함께 계셨다(루가 2, 22-24 참조). 그뿐 아니라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에 있었던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도 성모님이 함께 계셨고 성모님의 요청으로 첫 기적이 일어났다(요한 2, 1-11 참조). 마지막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성모님과 함께 계셨다(요한 19, 23). 이처럼 성자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언제나 당신의 어머니와 함께 계셨다.

7) 예수님과 아담 ; 마리아와 하와 ; 십자가와 나무

구원 사업의 마지막 장면에서 예수님은 십자나무에 매달려 계셨고 마리아는 그 아래 서 계셨다. 이 때 마리아는 모든 인간을 위해 주의 탄생 예고 때에 동의하셨던 것과 꼭같은 인류의 대표 자격으로 성자를 성부께 바치는 데 동의하면서 서 계셨던 것이다. 십자나무로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와 마리아는 생명나무로 인류를 죽게 한 아담과 하와와 대조된다. 예수님은 새 아담이고 마리아는 새 하와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께의 불순종으로 생명나무에서 죽음을 가져왔다면 새 아담과 새 하와는 성부께의 순종으로 십자나무에서 생명을 가져왔다.

8) 성령께서는 항상 성모님과 함께 일하신다

마리아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성령의 배필이다. 구세주는 성령의 힘으로 마리아에게 탄생하셨다. 마찬가지로 성령강림절에도 마리아가 함께 계심으로써 교회가 새로이 탄생하였다. 성모님은 성탄과 공현 때와 마찬가지로 성령강림 때에도 반드시 필요한 분이셨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위해 성령은 항상 성모와 함께 일하신다.

9) 우리는 마리아께 어떤 지위를 드려야 하는가?

우리는 마리아를 믿음의 대상이나 여신으로 여겨서는 결코 안되지만 피조물 가운데 으뜸 가는 지위를 드려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께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모께도 기도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직접 성모께 기도를 바치게 되면 하느님께 등을 돌리게 되지 않나 걱정한다. 그것은 현세적인 사고 방식을 영적 세계의 일에 적용하는 데서 나오는 잘못된 생각이다. 그런 걱정의 해결책으로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드리되 마리와 함께 드리면 될 것이다.

10) 모든 행동은 성모님의 피앗(Fiat)을 뒷받침해야 한다

피앗(Fiat)은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루가 1, 38)란 뜻으로서 가브리엘 대천사의 주의 탄생 예고에 대한 마리아의 응답이다. 이 말은 하느님의 계획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항구하게 실천하고 봉사하겠다는 응답이다. 마리아는 온 인류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응답하였고 하느님은 마리아를 통하여 인류를 보신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자는 마리아가 자기를 대신해서 응답하신 것을 끊임없이 승인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행동이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행동이 된 것은 마리아 덕분임을 인정하고 마리아께 감사드려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행동 하나 하나가 성모님의 피앗(Fiat)을 뒷받침해야 한다.

11) 마리아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라

마리아는 인류의 어머니로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신다. 기도할 때에도, 찬미할 때에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는 마리아와 함께 마리아와 일치해서 주님을 모셔야 한다. 하루 동안에 하는 모든 행동과 기도를 마리아와 함께 할 정도로 마리아의 의향에 일치시켜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마리아를 제외시켜서는 안된다. 우리의 삶이란 우리가 지닌 모든 것을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다. 마리아께 바치는 것은 곧 하느님께 바치느 것이다. 우리가 마리아께 모든 것을 바치는 신심을 가질 때 구원사업에서의 성모님의 역할을 올바로 인정하는 것이다. 결코 성모님을 축소하거나 격하시켜서는 안된다. 레지오의 취지는 마리아를 거울처럼 비추는 것이다.

제2항 : 무한히 값진 영혼에게 무한한 인내와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레지오 단원은 활동을 할 때 강인함을 보여 주어야 한다. 강인함에는 부드러움과 상냥함이 내포되어야 한다. 교본 본문에 의하면 레지오 단원이 성공적인 활동을 하려면 딱딱한 인상을 주지말고 따뜻한 마음가짐과 한결같이 상냥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특히 버림받은 사람이나 죄를 범한 사람을 다룰 때에 온정과 친절은 필수적이다. 온정과 친절이 없는 활동은 실패할 것이다. 꽃도 따뜻한 공기에서 활짝 피고 찬 공기일 때 오므라들 듯이 훌륭한 단원은 사람들이 지닌 문제들에 대해 따뜻한 분위기로 정성을 다해 들어주고 도와줌으로써 큰 성과를 거둔다.

극히 다루기 힘든 사람들에겐 최대의 인내심과 존경심, 그리고 자비심을 보여야 마음의 문이 열린다. 예수님은 성모님께 자비의 왕국만을 주시고 정의의 왕국은 당신 스스로 간직하고 계신다는 말이 있다. 세계 최초의 쁘레시디움 명칭도 '자비의 모후'였다. 이것은 우연이라기 보다는 성모님이 레지오 단원의 특성을 드러내기 위해 붙여 준 명칭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사악하고 하느님에 대한 증오심과 종교에 대한 반항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은총의 빛이나 영신적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시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하신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그들에게도 당신의 성자를 구원자로 보내실 정도로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영혼 하나 하나가 모드 하느님께는 무한히 값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들은 그들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는 아직도 죄많은 영혼들에게 붙들려 십자가에 못박히고 있으며 조롱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히브 6, 6 참조) 레지오 단원들은 그들의 구원을 위해 활동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종식시키기 위해 회개에 완고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활동을 해야 한다. 아무리 완고한 마음이라도 무한한 인내와 친절을 아낌없이 베푼다면 마침내 부드럽게 펴지고 말 것이다.

제3항 : 레지오 단원의 용기



레지오 마리애의 사도직 활동을 수행하는 데에는 반드시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레지오의 정신과 덕목 가운데 하나로서 단원들이 반드시 지녀야 할 자질이다. 일반적으로 단원들에게 믿음은 모자라지 않는데 용기가 부족한 것이 문제이다.

로마 군단의 군인들이 황제의 영토 확정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용기와 용맹을 보였다면 마리아 군단의 단원들고 그리스도 왕국의 영토 확장을 위해 그와 같은 용기를 보여야 할 것이다. 로마 군단의 군인들이 물리적, 신체적 용기를 보였다면 영적 군대의 단원들은 도덕적 용기를 보여야 할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선교를 위해 사람들과 접촉하는 활동에 있어서 체면을 차리지 말아야 한다. 단원들이 용기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체면(human respect) 때문이다. 프랭크 더프는 성덕의 장애물 중의 하나가 체면이라고 하면서 체면은 '우리 양심의 자리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갖다 놓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cf. F. Duff, Can we be Saints? p. 14).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저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할까'하는 생각 때문에 기가 꺾이는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는 사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욕 당하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가 되는 것이다(사도 15, 41 참조).

체면은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지고 나타난다. 예컨대 신중성, 다른 사람들의 의견존중, 가망이 없다, 인도자를 기다린다는 등의 그럴듯한 이름이다. 이런 말들은 실상 아무런 행동도 싹트지 못하게 할 뿐이다. 체면은 레지오 활동에 있어서 치명적인 독소이다. 체면이라고 하는 소심한 태도 때문에 영혼들을 위한 활동이 보잘 것 없게 된다. 비판을 받거나 비웃음을 사고 화내는 말을 듣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몸을 움츠리게 된다.

프랭크 더프는 늘 체면과 두려움을 물리친 용기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두려움'(Fear)이라는 주제로 교본 본문의 용기에 대해 설명하면서 두려움을 물리치고 용기를 발휘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두려움은 모든 생명체를 시들게 하지만 용기는 인생에 꽃을 피우게 한다'면서 두려움을 물리치는 방법으로 체면을 버리고 용기의 표본인 성모 마리아를 따를 것을 강조하였다(cf. F. Duff, Victory through Mary, pp.16-30).

교본 본문은 레지오 단원들 안에 체면치레라는 해독이 퍼지지 않도록 다음과 같은 계획적인 운동을 벌이도록 촉구하고 있다

첫째로, 건전한 규율의 힘으로 체면치레를 누르도록 한다.

둘째로 군인이 비겁한 행동을 경멸하듯이 레지오 단원은 체면치레를 경멸하도록 교육한다. 무엇보다도 단원들에게 체면을 차리려는 충동을 억누르고 행동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희생과 용기를 발휘하지 못하면 사랑과 충성이라는 것도 결국 하잘 것 없는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중국이 공산화될 당시 중국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용기 역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들은 공산 정부의 공적 제1호로 낙인 찍혀 박해를 받았으나 끝까지 굴하지 않고 용기를 보임으로써 2만명 이상이 투옥되고 2천명 이상이 순교하였다. 이러한 놀라운 사실은 꺾이지 않는 도덕적 용기를 지닌 레지오의 정신 덕분이었다. 중국에서 추방당한 아일랜드인 영적 지도자 이단 맥그라쓰(Aedan McGrath) 신부의 표현에 의하면 "중국에서 레지오 마리애의 순교자들을 낳게 한 바로 그 정신이 레지오 마리애가 전세계를 통하여 사도직 활동에서 뛰어난 성과를 달성하게 했다. 결국 중국 공산주의자들은 레지오 마리애의 성공을 불멸화 시킨 셈이다"(cf. F. Duff, Victory through Mary, p.X-XI). 레지오 단원들은 그들처럼 불굴의 용기를 가지고 사도직 활동을 수행해야 한다.

제4항 : 상징적 행동



사도직 활동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마리아의 정신을 지니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레지오 마리애의 기본 원칙이다. 흔히들 불가능한 활동도 아닌데 어려운 일에 부딪치면 불가능이란 말을 쉽게 한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일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가끔은 인간적인 노력을 초월하는 난관에 부딪치기도 한다. 그럴 경우 인간적인 능력에만 의존하여 판단해 버린다면 꼭 해야할 중요한 활동도 손을 대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불가능한 일이라도 마리아의 군인으로서 용기를 발휘하여 우선 시작해놓고 봐야 한다. 불가능을 거부할 때 가능성이 보인다. 불가능한 일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이 레지오 마리애의 신념이다.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기 때문이다(루가 1, 37 참조).

레지오 마리애는 사도직 활동에 있어서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하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한다. 즉 상징적 행동이다. 상징적 행동(Symbolic Action)이란 불가능에 대한 도전적인 자세를 가지고 굳건한 믿음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의존하면서 성모님과 일치하여 문제를 단계적으로 나누어 풀어나가는 레지오 마리애의 활동방식이고 행동 철학이다,

상징적 행동이란 용어는 존 부캔의 소설 '39단계'(Thirty-nine steps)에 착성하여 프랭크 더프가 붙인 레지오 활동의 표어이다(cf. Thomas O'flynn, Frank Duff as I knew him, p. 39).

상징적 행동에 대한 교본 본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레지오 마리애는 "어떠 불가능성이든지 39단계로 나눌 경우 그 하나 하나의 단계는 가능하게 된다"는 말을 표어로 선언한다. 이것은 성취의 기반이며 성공 철학의 요점이다. 어려운 상황에 부딪치거든 여러 단계로 나누어서 정복해야 한다. 한 번만에 뛰어서 지붕 꼭대기에 올라갈 수는 없지만 계단을 통하여 한 번에 한 단계씩 올라가면 가능하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렵더라도 한 발자국을 먼저 옮겨 디뎌야 한다. 우선 그 첫 발자국에 정신을 집중하면 된다. 그러면 다음 발자국도 따라오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하느님의 은총이 작용하여 39발자국을 다 옮겨 디디기 전에 이미 불가능의 관문을 통과하게 된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우선 행동에 착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행동하지 않고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불가능하다고 해서 하느님께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첫 발자국을 내디디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난공불락으로 여겼던 예리고의 성벽도 적은 숫자로써 함락한 것처럼 레지오 단원들은 상징적 행동을 통하여 불가능의 성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

상징적 행동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의 하나는 성모 마리아이다. 성모 마리아는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하는 분이다(요한 2, 1-11 참조). 성모님은 은총의 중개자요 결실의 원리이다. 예수님은 당신 혼자서 결실을 맺기를 즐기지 않으신다. 성모님 없이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과 일치하여 성모님과 함께 상징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cf. F. Duff, Victory through Mary, p.118).

프랭크 더프는 자신의 저서에서 상징적 행동을 함으로써 불가능으로 보이던 일도 하느님의 은총이 작용하여 연쇄 반응을 일으켜 문제가 해결된 직접 경험 사례를 많이 나열하고 있다(상게서 118-121쪽

쉬넨스 추기경은 레지오 마리애가 불가능한 일에 겁없이 뛰어들어 미쳤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성공을 거둔 활동 사례 몇 가지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 "더블린에서 시작된 레지오가 성공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사람들은 한 세기 이상이나 온갖 악습의 소굴이었던 벤틀리 구역을 소탕한다든가, 윤락녀들만 모아놓고 피정을 실시한다든가, 개신교 신자들과의 일치를 도모한다든지, 샛별 숙박소의 부랑 남자들을 사도로 변신 시킨다든지 하는 일들은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못박았었다"(L. J. Suenens, Teologia dell'Apostolate, p. 120).

이렇게 볼 때 상징적 행동은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격언을 이행하는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는 상징적 행동으로 인해 '초자연적 영웅 행위의 학교'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5항 : 적극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레지오 마리애는 강력한 사도직을 행동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활동은 레지오 사도직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레지오는 단원들에게 한 주일에 최소한 두 시간 이상의 활동을 의무적으로 하되 적극적으로 할 것을 요구한다.

레지오의 외부적 목표 중의 하나는 당면한 실제 활동이다(72-73쪽 참조 ; 교본 55-56쪽 참조). 레지오는 현실적으로 필요한 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을 적극적인 활동으로 배당한다.

레지오 활동의 취지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에게 모셔다 드리도록 성모님을 적극 도와 드리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의 동기는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와 성모님의 모성적 역할에서 기인한다. 레지오 창설자 프랭크 더프는 빈첸시오회원이 되어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마태 25,40)을 예수님으로 여기면서 봉사할 것을 결심하였다. 또한 그는 성모님에 관한 책들을 읽고 사람들에게 성모님의 모성적 역할을 실천하기로 작성하였던 것이다.

성모님을 도와 예수님을 모든 사람에게 모셔다 드리려면 가서 사람들을 직접 만나야 한다. 레지오 활동은 이웃 구원을 위한 선교 활동이기에 주로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방문 활동이 주축을 이룬다. 활동 대상자를 직접 만나지 않고 전화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적극적인 활동으로 볼 수 없다. 그리고 영적인 신심 행위로써 활동 시간을 채우려고 하는 것도 적극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없다.

교본 본문에 의하면 적극적인 활동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원인은

(1) 어렵다고 생각되는 활동을 꺼려하고,

(2) 활동거리를 찾지 않거나 찾을 능력이 없으며,

(3) 반대자들의 비평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인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고 단원들에  하찮은 활동 과제를 배당하는 경향이 있다.

적극적인 활동에는 반드시 노력이 따르게 마련이다 교본은 레지오의 봉사 자세로서 "노고와 고통을 피해서는 안된다"(14쪽 ; 고본 8쪽)고 강조하고 있다. 노고와 노력이 따르지 않는 활동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활동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피곤하고 시간이 없다는 등이 이유로 부담되는 어려운 활동을 회피한다면 늘 쉽고 하찮은 활동만 골라서 하려 할 것이다. 노력이 따르지 않는 소극적인 활동 자세는 레지오의 봉사 정신을 희박하게 만들어 결국 퇴단하는 결과를 빚게 될 것이다.

노력과 희생을 아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투철한 레지오 정신과 복무 자세가 요구된다. 레지오 단원은 영적 군인으로서 한 주간의 모든 시간을 복무 시간으로 여겨여 한다. 레지오 정신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다. 교본 본문의 말대로 "레지오의 정신은 단원들을 크게 변혁시킨다. 생명과도 같은 레지오 정신은 오직 노력을 통하여 얻는 은총의 산물이다. 레지오의 정신은 레지오 단원이 이행하는 활동 및 그 방법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노력이 없으면 그 정신은 깜박거리다가 꺼져 버리게 된다.

프랭크 더프에 의하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에 달려 있지만 은총도 노력을 뒤다르기 때문에 큰 노력으로써 적극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cf. F. Duff, Victory through Mary, pp.35-36).

교본 본문은 레지오가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을 관장하는 기구로 설계되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깨달아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적극적인 활동을 강조하고 있다. "레지오가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그 조직을 설립해야 할만한 타당성이 없다. 전투에 종사하기를 마다하는 군대가 있다면 얼마나 잘못된 이름인가! 마찬가지로 어떤 행태의 적극적인 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쁘레시디움 단원들이 있다면 마리아의 레지오 단원이라는 이름을 지닐 권리가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영신적인 신심 행위만으로는 적극적인 활동을 해야 하는 레지오 단원의 의무를 채우지 못한다.

활동성이 없는 쁘레시디움은 강력한 사도직을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레지오의 목적에 충실하지 못할 뿐 아니라 레지오에 큰 손상을 입히기까지 한다.

제6항 : 활동은 쁘레시디움이 주관한다



레지오 마리애의 특징 중의 하나는 강력한 조직이다. 레지오는 규율이 엄격한 군대식 조직체로서 조직적인 사도직 활동을 일관성있게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치지에서 활동은 쁘레시디움이 주관한다.

그런데 조직에서 시키는 활동보다는 단원 개인의 자유 활동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조직을 경시하는 행위이다. 이 점에 대해 교본 본문은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레지오의 활동은 쁘레시디움에서 배당한 일정한 활동 임무여야 한다. 단원 각자의 기호에 따라 선택하여 결정된 활동이어서는 안된다"(191-192쪽 ; 교본 194쪽) ; "단원들은자신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활동을 마음대로 골라서 레지오의 이름으로 수행해서는 안된다

단원들이 종종 활동의 성립 여부에 대해 질문하는 경우가 있다. 활동의 성립 여부는 쁘레시디움 단장이 결정한다. 단장이 판단하여 주회에서 배당한 것은 모두 활동이 된다. 그런데 단장이 활동 배당을 제대로 주관하지 못함으로서 그런 질문이 나오게 되고 단원 개개인의 자유 활동에 의존하게 된다.

그렇다고 쁘레시디움에서 단원의 자유 활동을 무시하거나 막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레지오 단원은 늘 복무 중에 있으므로 비록 쁘레시디움에서 배당받지는 않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예기치 안게 발견하여 수행한 선교 활동과 선행 및 봉사 활동도 사도직 활동이 되기 때문이다. 단원은 일상 생활에서 늘 '착한 사마리아 사람'(루가 10, 25-37 참조)이 되어야 한다.

교본 본문의 말대로 "우연히 발견되어 수행한 자유 활동도 그 다음 회합에 보고할 수 있으며 그 때 단장이 인정하면 통상적인 레지오 활동이 된다...규율의 근본 목표는 사람들로 하여금 활동을 하도록 추진하는 데 있지 억제하는 데 있지 않다.

자유 활동의 대상은 주로 외인, 환자, 상가, 재해자 등이다. 그런나 선행과 자유 활동을 많이 하는 단원이라도 쁘레시디움에서 배당한 활동을 우선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조직에 해를 끼치게 되므로 단장은 견제를 해야 한다.

제7항 : 짝을 지어 방문하는 것은 레지오 규율의 안전장치이다



단원들이 '둘씩 짝지어' 활동하는 것은 레지오 마리애가 초창기부터 실시해 온 규율이다. 이에 대해 교본은 레지오 초창기의 보고서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그 때 한 여성 단원의 이름을 부르고자 보고를 시작했다...그 단원의 뒤를 이어 공동 방문자가 보고했다. 이를 보아 그 활동은 둘이 함께 하였음이 명백하다

활동에 있어서 둘씩 짝지어 파견하고 보고하도록 한 것은 예수님의 방법을 그대로 본뜬 것이다(루가 10, 1.17 참조).

교본 본문의 말대로 둘씩 짝지어 활동하도록 규정한 이유는

1) 레지오 단원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2) 단원 서로 간에 힘과 용기를 북돋우기 위함이다.

3) 활동과 관련된 규율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즉 약속된 방문 활동을 미루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외에도

4) 사도직의 모범이 된다

5) 도제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2인1조 중에 한 명이 사정상 활동을 못할 경우 나머지 단원 혼자서도 할 수는 있지만 그 단원을 어려운 환경에 빠뜨릴 위험이 있다면 방문 활동을 보류할 수 있다. 그렇다고 3명 이상 함께 평소에 몰려 다니면서 활동하는 것은 방문 대상자에게 위압감과 부담을 주게 될 것이다.

교본 본문에 의하면 두 사람이 짝을 지어 방문해야 한다는 규정은 두 사람이 같은 사람들을 같은 시간에 방문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예컨대 병원의 병실 방문의 경우 두 단원이 별도로 환자 방문을 해서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은 규칙에 부합할 뿐 아니라 적절한 방법이기도 하다.

제8항 : 레지오 활동의 본질은 친밀한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레지오 활동은 빈 깡통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친밀한 개인 접촉을 통해 조용하고 신중하게 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교본 본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레지오 활동은 본질적으로 숨은 활동이다. 레지오 활동은 각 단원의 마음속에서 시작하여 열정과 사랑의 정신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레지오는 직접적이고 꾸준한 개인 접촉을 통하여 전체 공동체의 영신적 수준을 끌어올리고자 힘쓴다. 활동은 조용하고 신중하며 꼼꼼하게 이루어진다.

레지오 활동의 본질은 활동 대상자와 친밀한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직접 만나 관심 어린 대화를 통해 대상자의 신원과 여러 가지 형편을 파악해야 한다. 이 때 유념할 것은 대상자를 대하는 태도와 말투이다. 온화한 태도와 상냥하고 친절한 말투여야 한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격언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무뚝뚝하고 딱딱한 말투로 대상자를 심문하듯이 대한다면 친밀한 관계를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교본 본문은 "레지오 방문의 본질은 친밀한 관계를 이루는 데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주의를 환기시킨다. "만일 레지오 단원들이 나쁜 일을 적발하려고 찾아다닌다는 소문이 나게 되면 방문의 본질을 깨뜨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레지오 단원들의 가정 방문이나 그 전반적 행동은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런 의심을 받게 되면 방문자를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친우로 여기기 않고 조직을 위해 정탐 활동을 하는 것으로 오해할 것이다. 그 결과 레지오의 방문을 꺼려하게 될 것이고 마침내 레지오의 참된 효용 가치는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다.

레지오는 소공동체 운동을 통해서도 친밀한 관계를 이루는 활동을 할 수 있다. 서울의 어느 쁘레시디움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서로 낯선 신자들을 대상으로 반상회를 조직하는 활동 배당을 준 결과 신자들끼리 친밀한 관계를 이루었고 나아가 믿지 않는 이웃들에게 전교까지 하게 되었다는 훌륭한 사례를 남겼다(월간 레지오 마리애, 제62호, 81-82쪽 참조).

제9항 : 집집마다 방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레지오의 주요 홀동은 방문 활동이다. 그 중에서도 가정 방문은 전통적인 레지오 활동으로서 훌륭한 열매를 거두는 방법이다집집마다 방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레지오 활동 대상은 모든 사람이므로 몇몇 가정을 선별하여 활동할 것이 아니라 가가호호 순서대로 방문할 것을 권장한다. 모든 가정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려면 한 집도 빠뜨리지 않고 방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가호호 순서대로 방문한다면 활동거리를 찾지 못해 활동 배당과 활동 보고에 어려움을 겪는 쁘레시디움 단장과 단원들의 애로가 덜어지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낯선 사람들의 가정 방문을 곱지 않는 시선으로 보고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가가호호 방문은 상품 판매원이나 다른 종교 단체에서도 하기 때문에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단원들은 둘씩 짝지어 방문 대상자에게 천주교회에서 왔음을 알리고 정중하게 인사한 다음 친교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한 집에 오래 머무르는 것은 삼가야 한다. 가정 분위기를 보아 결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이다.

교본 본문은 가가호호 방문을 다음과 같이 권장하고 있다. "레지오는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가능한 한 집집마다 방문해야 한다. 만일 일부를 가려서 방문한다면 그들만이 주목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여 반발할지 모른다.

비가톨릭 신자들의 집까지도 반대할 만큼 특별 이유가 없는 한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 이런 방문은 신앙적인 공세를 취하기 위한 접근이 아니라 우정의 발판을 만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 가족들과 알고 지내기 위해서 모든 집을 방문하고 있다고 설명하면 가톨릭 신자가 아닌 가정에서도 대개는 친절하게 맞이해 줄 것이다.

제10항 : 물질적 원조는 금지한다



물질적 원조 금지 조항은 금과옥조도 되고 활동의 걸림돌도 된다고들 한다. 물질적인 원조를 금지하는 취지와 이유, 해결 방법을 알게 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물질적 원조 금지 조항은 세계 최초의 레지오 회합에서 결의된 규율로서 빈첸시오회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당시 프랭크 더프는 물질적 구제 활동을 하는 빈첸시오회 지부장이었다. 빈첸시오회의 취지는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께로부터 잊혀지지 않고 교회 역시 그들의 궁핍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님을 물질적인 구제 활동으로써 보여주는 것이다.

프랭크 더프는 레지오 마리애가 비록 빈첸시오회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만 빈첸시오회와는 전혀 달리 영신적인 자선 활동만 하는 단체임을 밝히고자 했다. 그는 자선을 물질적인 의미로만 축소하지 않았다. 영신적인 의미까지 포함되어야 완전한 자선이 된다고 보았다. 자선을 베푸는 일 중에 가장 뜻있는 것은 모든 이의 영혼을 보살피는 일이다. 물질적인 구제 대상 숫자에 비해 영신적인 구제 대상자는 제한이 없다. 바로 여기에 레지오 단원의 임무가 있다고 그는 역설하였다.

또한 그는 레지오 마리애 첫 지단의 이름을 '자비의 모후'로 정한 이유 중의 하나도 영신적인 자선 단체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물질적인 자선 외에 어떠한 종류의 것이든지 가리지 않고 영혼과 마음에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들을 자비롭게 보살피려는 의미에서 '자비의 모후'로 정했던 것이다(cf. F. Duff, Victory through Mary, pp.61-63).

레지오 활동 성격은 영신적인 구제이므로 꾸리아는 쁘레시디움의 물질적인 원조 활동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매년 정기적으로 회계 장부를 감사한다

빈첸시오 회원은 레지오 행동 단원이 될 수 없도 협조 단원만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행동 단원은 빈첸시오 회원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레지오 단원이 물질적인 구제 활동까지 하게 된다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부작용은 다음과 같다.

(1) 레지오가 물질적 원조 단체로 이름나면 활동 범위가 극히 좁아진다. 물질적 원조는 레지오에 있어서 열쇠가 아니라 자물쇠가 되어 버린다.

(2) 궁핍한 이들이 물질적 원조를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불만을 품게 되어 레지오의 감화력이 떨어진다.

(3) 레지오 활동 중에 개인 자격으로 물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레지오 단원으로서 준 것이 되며 레지오 규율을 어긴 것이 된다.

(4) 물질적 자선을 베푸는 입장이 됨으로써 자칫 우월감으로 교만해질 수 있다.

레지오 조직은 사랑과 봉사 활동을 통하여 영신적인 유익을 모든 사람에게 가져다 준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설립되었으므로 결코 물질적인 원조를 통하여 영신적인 목적을 달성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본 본문의 말대로 "원조를 베푸는 행위 자체를 경시하지 않는다. 가난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특히 초자연적 동기로 그런 도움을 주는 것은 매우 훌륭한 가치가 있다." 물질적인 자선과 애덕 실천은 최후 심판의 기준이 되며(마태 25, 31-46 참조) 물질적 도움이 절실한 이들에게 말로만 위로한다면 행동없는 믿음에 지나지 않는다(야고보 2, 15-16 참조).

레지오는 물질적 원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에 결코 무관심하지 않는다. 다만 레지오는 직접 그 일을 수행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수행한다. 이 말은 레지오 단원 자격으로 직접 도와주거나 혹은 방문 활동에서 레지오의 이름으로 기금을 사용하면서까지 직접 물질 구제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레지오는 빈첸시오회, 인성회, 본당 사회 복지 분과 위원회 등의 적절한 기관과 단체를 통하여 돕도록 활동한다.

레지오 단원은 평소에 불우한 이웃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얼마든지 줄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레지오 활동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물질적인 구제 활동을 주회에서 보고해서는 안된다.

제11항 : 모금은 금지한다



모금할 목적으로 레지오 단원이 방문하는 것은 물질적 원조의 경우와 같은 범주에 속하므로 금지한다. 모금으로 인해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레지오의 목적과 취지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레지오는 영신적 성격을 띤 자체 사업을 할 수 있으며 초창기부터 그러한 사업을 해 오고 있다. 예로서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부랑자들을 위한 숙박소와 미혼모들을 위한 숙박소를 들수 있다. 아무리 영신적인 사업이라 할지라도 경비가 들기 마련이고 물질이 필수적이다. 이는 정부 보조금만으로는 충당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레지오의 기금이 필요하다. 그래서 쁘레시디움은 주회를 통해 비밀헌금을 거두게 되고 의연금을 상급 평의회에 바친다.

레지오의 기금에 관한 교본의 가르침에 의하면 한낱 지단에 불과한 쁘레시디움도 클럽(Club), 숙박소(Hostel) 등 특별 사업을 할 수 있다. 그러려면 자금이 필요하다. 쁘레시디움 단원들이 비밀 헌금으로 자금을 대거나 정부 기관의 보조를 받거나 희사를 받을 수 있으며 꾸리아나 다른 쁘레시디움의 호의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금지하는 것은 기금 마련을 위해 별도로 방문하여 모금하는 행위이다.

교본 본문의 말대로 "모금을 하면 돈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영신적인 유익을 이루는 분위기는 결코 얻을 수 없다 이는 '한 푼에는 약으나 한 냥에는 어리석다'는 격언의 좋은 본보기가 된다.

제12항 : 레지오에 정치는 금물이다



교본 본문은 레지오의 정치적 개입을 규제하기 위해 "레지오는 그 영향력이나 자산이 정치적 목적이나 정당을 돕는 데 이용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단언하고 있다. 레지오는 사목과 선교면에서 영신적인 활동을 하는 단체이므로 정치는 금물이다. 레지오는 정당과는 무관하다. 물론 단원 각자가 국민의 일원으로서 참정권을 행사해야 하지만 레지오 마리애의 이름이나 레지오 단원 자격으로 정치나 정당에 개입해서는 안된다.

레지오는 사회적, 정치적, 신분적 차별을 두지 않으므로 정치인도 레지오 단원이 될 수 있겠지만 단원 자격으로서 자신이 속한 레지오 조직을 이용할 수 없다.

레지오는 정치가 아닌 각종 사회 운동 참여를 적극 권장한다. 사회 운동 참여에는 영향력 있는 레지오 조직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레지오의 사회 참여 역시 정치나 정당에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제13항 : 모든 영혼을 찾아서 대화하라



이 항목은 '군중과의 접촉 과 '레지오는 영혼 하나 하나를 겨냥해야 한다' 레지오 단원은 모든 영혼을 찾아 접촉하고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레지오 사도직의 대상은 모든 영혼이다. 교본 본문의 말대로 "종교적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을 개별적으로 접촉하여 그들이 사도직의 테두리 안에 들어오도록 열심히 추구하는 것이다. 곧 냉담자, 신자 가정, 가난한 사람, 또는 타락한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활동해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사도직은 신자건, 비신자건 간에 그들과 대화하여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양성되어야 한다"(평신도 사도직 교령 31항)고 가르치고 있다.

프랭크 더프에 의하면 사도직이란 교회의 영적 보화를 모든 사람 개개인에게 가져다 주는 데 있다. 그러려면 군중과의 개별 접촉이 필수적이다. 레지오 단원은 군중을 개별적으로 보아 그들 하나하나와 대화를 나누고 영적으로 보살펴 주어야 한다(cf. F. Duff, Victory through Mary, pp.52-60).

레지오의 개별 접촉 방법은 대화이다. 예컨대 상가를 방문하여 유가족과의 대화없이 그냥 연도만 바치고 나온다거나 가두 선교 활동을 하면서 대화없이 선교 책자만 나누어 준다면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도 없고 활동의 효과도 별로 내지 못한 채 오히려 쌀쌀하다는 인상을 심어 주게 될 것이다. 레지오의 활동 대상과 접촉 방법은 모든 영혼과의 대화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제14항 : 향상될 가망이 없을 만큼 나쁜 사람도 없고 향상될 필요가 없을 만큼 훌륭한 사람도 없다



프랭크 더프는 레지오 활동 경험을 통해 향상될 가망이 없을 정도로 나쁜 사람도 없고 향상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훌륭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터득하였다. 그는 윤리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을 보호하면서 향상되도록 노력하였으나 그 중에 도저히 가망이 없는 한 여인이 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날 그 윤락녀가 회개하여 새 생활을 시작하였던 것이다(cf. Hilde Firtel, A Man for Our Time, pp.46-47). 또 하나의 사례를 들면 회교 신자인 인도 청년이 레지오와 관련된 어떤 모임에서 자기 조국의 분열을 해결하는 방법은 소련의 공산주의 사상으로써 무산화하는 길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 자리에 참석한 프랭크 더프는 입교 가능성이 희박한 청년으로 판단했지만 사실은 그 청년이 그 단체에서 가장 먼저 입교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사례는 그 외에도 많이 있었다(cf. F. Duff, Victory through Mary, pp.37-38).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불가능이 없기에 단원들은 방문 대상자를 처음과 똑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게 두어서는 안된다. 한편 단원들이 자기보다 더 훌륭하게 보이는 이들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도 하느님께 더 가까이 접근시킬 필요가 없거나 향상될 필요가 없을 만큼 훌륭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활동해야 한다. 단원들이 사도직 생활을 활발하게 실천한다면 사람들의 덕성을 더 높일 수 있다.

방문 활동을 하는 단원들은 비록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마리아 군단의 대표로서 활동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활동 대상이 누구든지 간에 단원들은 하느님이 도와주시고 성모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방문 활동을 해야 한다.

제15항 : 막연하 사도직은 가치가 없다



레지오는 당면한 실제 활동을 실시하기 때문에 추상적이고 막연한 사도직을 가치 있게 보지 않는다. 단원들은 주회에서 구체적인 활동 배당을 받아 활동을 이행한다. 단장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활동을 배당하지 않는다면 단원들은 막연한 사도직을 수행하게 된다. 예컨대 단장이 단원들에게 막연하게 선교 활동하라, 방문 활동하라, 자유 활동하라고 지시한다면 그것은 막연한 사도직을 이행하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단원들은 구체적인 활동대상과 장소를 배당받아야 구체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

교본 본문의 말대로 "어느 경우나 중용하고도 확고한 활동의 실천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단원들이 확고하고 뚜렷한 사도직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많은 선행을 많은 이들에게 베풀지 못함으로써 남에게 유익한 구실을 하지 못한다고 느끼게 된다면 결국 단원 생활 자체가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제16항 : 감화의 비결은 사랑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1요한 4, 8) 향주삼덕 중 믿음과 희망은 사라지더라도 사랑은 영원하며 가장 위대한 덕이다(1고린 13장 참조). 믿음은 사랑으로 전달되어야 영향력과 감화를 줄 수 있다. 사랑이 담기지 않는 선교나 종교적 지식 전수는 대상자와의 친밀한 관계를 이루기 힘들다. 레지오 활동의 본질은 친밀한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친밀한 관계를 이루어야 활동의 효과가 있다.

감화의 비결은 참된 사랑이다. 예컨대 환자 방문을 갔을 때 기도와 대화뿐만 아니라 환자의 손발을 씻겨 주고 청소를 해 주는 등 실제로 사랑의 행위를 보여 주어야 감화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교본 본문의 말대로 "실질적이고 광범위한 활동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려면 단원들과 방문 대상자 사이에 친밀한 관계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 이루어진 활동은 그 성고가 빈약하거나 일시적인 것에 불과할 것이다.

흔히 방문 활동을 한 번으로 끝내려고 하는데 그것으로 친밀한 관계가 이루어지기는 힘들다. 계속 방문해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게 된다.

제17항 : 레지오 단원은 활동 대상자 하나 하나 안에서 그리스도를 뵙고 봉사한다



이 항목은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는 레지오 봉사와 활동의 기초이다

레지오의 상훈 셋째 대목에서도 '레지오 단원은 활동 대상자 안에서 성모님의 성자 그리스도를 다시금 보고 섬기시듯이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는 방문 활동 특히 병원 방문과 가장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방문 활동에 적용된다. 이 활동은 가장 미천한 사람들도 우리와 대등한 관계에 있다는 가톨릭 원리를 강하게 드러낸다. 말하자면 레지오 단원은 활동 대상자 하나 하나 안에서 그리스도를 뵙고 존경하며 사랑하는 것이다

교본 본문은 그러한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어떤 장소,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불행한 사람들에 대한 박애적 정신이나 단순한 인간적 동정심에서 방문 활동을 해서는 안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 40).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레지오 단원은 차별없이 모든 사람 안에서 우리 주님을 뵙고 알맞은 봉사를 드려야 한다.

교본 본문은 또한 레지오 단원이 활동 대상자에게 대하는 태도는 어디까지나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종이 주인에게 대하듯이 존경심을 가지고 상냥한 말씨와 rauths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제18항 : 마리아는 레지오 단원을 통하여 당신의 성자를 사랑하고 보살피신다



이 항목 역시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와 관련된 내용이다(9장 2항 참조 ; 교본 31장 2항 참조). 활동이 성공하려면 먼저 단원들이 방문 대상자를 사랑해야 한다. 방문 대상자를 감화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원들이 활동할 때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려면 활동 대상자 하나 하나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아야 한다.

아울러 마리아께서도 당신이 일찍이 성자께 쏟았던 그런 사랑이 신비체의 지체들에게도 베풀어지기를 바라고 계신다. 왜냐하면 성자를 기르고 사랑하고 보살피는 성모님의 임무는 그리스도 신비체의 모든 지체들에게도 해당되기 때문이다. 성모님은 모든 지체를 보살피는 임무를 수행할 때 당신을 도울 레지오 단원들을 부르신다. 성모님은 레지오 단원들을 통하여 당신의 성자와 그 지체들을 사랑하고 보살피는 것이다

프랭크 더프는 레지오의 사도직에 마리아의 노력을 포함시켜야 하며 신비체의 지체들을성자께로 인도하려는 마리아의 갈망이 단원들의 활동 동기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cf. Hilde Firtel, A Man for Our Time, Frank Duff and the Legion of Mary, p. 119).

제19항 : 겸손하고 정중한 레지오 단원에게는 어느 집 문이나 열린다



이 항목은 앞의 17항 "레지오 단원은 활동 대상자 하나 하나 안에서 그리스도를 뵙고 봉사한다"와 결부되어 있다. 거기에서도 겸손한 방문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교본 본문에 의하면 경험이 없는 단원은 첫 번째 방문을 불안해 하겠지만 겸손하고 정중한 태도만 보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방문자가 무슨 권리가 있어서 그 집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집 주인의 호의에 의한 것이므로 겸손하게 방문 용건을 말하면 어느 집 문이나 열리게 될 것이다. 또한 단원들은 방문 대상자를 이해하고 친교의 씨앗을 심기 위해 방문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방문하였을 때 자녀가 있으면 그들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대화의 계기를 마련해 준다. 그리고 방문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다음에 다시 만나고 싶다는 인사를 통해 재방문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아야 한다.

제20항 : 공공 기관을 방문할 때의 태도



교본 본문에서는 공공 기관을 주로 병원 방문에 적용시키고 있다. 레지오 단원들이 활동하는 공공 기관은 병원뿐만 아니라 교도소와 양로원, 고아원 등의 사회 복지 기관도 해당된다.

공공 기관 방문은 가정 방문과 공통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공통점은 둘 다 방문 대상자의 호의에 의해 방문이 허용된다는 점이다. 다른 점은 가정이 한 가족에게만 해당된다면 공공 기관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에게 해당된다는 것이다. 공공 기관을 방문할 때 유의할 사항은 그곳의 규율과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방문 시간을 어긴다거나 특히 병원 방문에 있어서 약품이나 그 밖의 금지된 물건을 환자에게 갖다 주어서는 안된다. 단원들이 규율과 규정을 어긴다면 재방문의 길이 막힐 우려도 있다.

공공 기관을 방문할 대 단원들이 특히 유의해야 할 태도는 그 기관의 내부적인 분규나 수용된 사람들의 불평, 불만에 대해 현명하게 대체하는 일이다. 이 점에 대해 교본 본문은 다음과 같이 충고하고 있다. "그 기관에 내부적인 분규가 있을 경우에는 어느 편도 들어서는 안된다. 직원이나 다른 환자들로부터 학대를 받고 있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런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런 고충을 없애는 일은 레지오 단원들의 책임이 아니다. 물론, 단원들은 고충을 하소연하는 말을 동정심을 가지고 들어 주어야 하고 한편으로 진정을 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대개는 그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만일 레지오 단원 중에 분노의 감정이 일어난다면 쁘레시디움에서 그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안전판의 구실을 할 것이다.

제21항 : 레지오 단원은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레지오 단원은 사도지 활동을 하면서 올바르지 못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자들도 만나게 된다. 그러한 경우에 그 사람에 대해 비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단원 자신의 사고 방식이나 언행 혹은 판단이 남들이 따라야 할 규범이나 표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사람들이라고 해서 무가치한 사람들이 아니다.

예수님은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판단하는 대로 너희도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남을 저울질을 당할 것이다"(마태 7, 1-2)고 하셨다. 판단은 단원들의 몫이 아니고 하느님의 몫이다. 교본 본문의 말대로 "많은 이들이 보기 흉할 정도로 악습에 젖어 있는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그 마음속을 알고 그 진실을 올바로 판단할 수 있는 분은 하느님뿐이다.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의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 성모님은 이해할 수 없는 경우에 그것을 함부로 발설하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하는 분이셨다(루가 2, 19.51 참조). 따라서 단원들은 마리아의 부드러운 눈길이 주위 환경과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실 것인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비록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더라도 단원들은 흉을 보거나 비판하지 말고 침묵을 지키거나 상대방의 장점을 발견하여 칭찬해 주는 덕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남을 비판하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여 감화를 주기는커녕 오히려 반발과 반감을 유발하여 사도직 활동에 역효과가 날 것이다. 프랭크 더프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비결은 상대방의 결점을 보지말고 좋은 점만 보는 호의를 갖는 것이라고 하였다(cf. F. Duff, Can we be Saints? p.29).

교본 본문은 레지오 단원이 판정관이나 비평가의 구실을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면서 성모님의 정신을 본받아 아프리카에서 활동한 레지오 선교사 에델 퀸(Edel Mary Quinn ; 1907-1944년)을 그 본보기로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에델 퀸은 남의 결점이 눈에 띄었을 때는 반드시 동정 성모 마리아께 의논하는 것을 하나의 생활 습관으로 삼았다.

제22항 : 악평에 대한 태도



이 항목은 레지오 단원이 남들로부터 터무니없는 말이나 악평을 듣게 될 때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레지오 마리애는 단원들의 개인 성화와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 단원들은 모범적인 사도직 생활을 하려고 애씀으로써 남들의 본보기가 되고 칭찬을 받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러한 레지오 마리애를 선호하고 모범 단원들의 권유로 레지오에 입단하게 된다.

반면에 레지오 단원들이 때로는 사람들로부터 반발을 사기도 한다. 단원들의 본보기는 수준 낮은 사람들에게 반항심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반항심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교본 본문의 말대로 그 본보기는 평범한 사고 방식에 자책감을 주고 건전한 반응을 일으켜 향상을 가져오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들로부터 악평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선의를 가지고 하려는 활동이 마비되어서는 안된다.

교본 본문은 또한 사도직 노력을 지배하는 원리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사람은 사랑과 친절로 정복되며 또한 자존심을 상하지 않고 강제성을 띠지 않으며 조용하고 슬기롭게 모범을 보여 줌으로써 정복된다. 그러나 정복하려는 의욕만을 가지고 �격을 하면 반발만 산다"(Giosue Borsi)

레지오 단원의 활동에 있어서 강요나 공격 등 방법상의 잘못이 없다면 악평에 대해 염려를 하지 말 것이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위안 삼아야 할 것이다. "나 대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마태 5, 11-12).

제23항 : 결코 낙심할 필요는 없다



단원들이 활동 배당을 받아 장기간에 걸쳐 냉담자, 혼인장애자, 외짝 교우 배우자 등을 대상으로 헌신적이고 영웅적인 활동을 했는데도 거의 열매를 거두지 못했을 때 좌절하거나 낙심하기 쉽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뚜렷한 결과가 없었다 할지라도 훗날에 좋은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시기는 우리의 생각과 꼭 같지 않다. 단원들은 씨를 뿌리고 가꾸기만 하면 된다. 열매 맺는 것은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다.

한 가지 활동이라도 꾸준히 실천하면 단 하나의 죄라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겉보기에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사실은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교본 본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단 하나의 죄만이라도 막는 것은 무한한 이득이 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위안을 느낄 것이며 더욱 더 큰 노력을 하도록 애쓰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하나의 죄는 불행한 결과를 끝없이 잇달아 일으킴으로써 헤아릴 수 없이 큰 해약을 끼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 하나의 대죄를 방지하는 일이라도 열성적인 노고를 바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 한 사람의 노고로 모든 영혼이 숱한 은혜를 받았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그 한 죄를 막는 일이야말로 운명을 결정하는 계기가 되며 향상의 실마리가 됨으로써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하느님 없는 삶에서 성덕의 삶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프랭크 더프는 단원들이 활동한 후 성과가 없더라도 낙심하지 말 것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의 영적 가치는 거기서 얻은 결과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것에 쏟은 의도와 노력의 순수함으로 평가됩니다. 많은 사람을 개종시키는 훌륭한 설교나 책보다는 가장 작은 자기 희생의 행위가 더 가치 있습니다. 따라서 외적 성공에 의해 의기양양하게 되거나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다고 해서 실망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일을 해서 성공적인 결실을 맺기도 하지만 성인들은 종종 계속적인 실패를 겪곤 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맡은 일에 전념하고 결과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프랭크 더프 지음, 안상인 옮김, 우리도 성인이 될 수 있는가?

제24항 : 십자가의 표지는 희망의 표시이다



십자가는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 인류 구원의 도구가 되었다. 구세주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으므로 십자가 없는 부활이나 구원을 기대할 수 없다.

프랭크 더프에게 크나큰 영향을 준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는 십자가를 대단히 사랑하셨다. 그는 언제나 하느님의 뜻만을 실행하고 싶었기 때문에 어떠한 십자가도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데 커다란 기쁨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십자가를 하느님의 귀한 선물로 여기고 감사하였다(에디 도허티 지음, 이동수 옮김,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전기, 21쪽 참조). 그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십자가의 벗들이라고 불렀고 <십자가의 벗들>이란 저서도 남겼다.

프랭크 더프는 레지오 마리애를 창설한 후 레지오 확장에 있어서나 레지오 활동과 사업에 있어서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좌절하지 않고 굳건하나 믿음과 성모님께 대한 신심, 겸손과 끈기로 극복해 나갔다. 그는 숱한 어려움을 십자가로 받아들였다. 그는 십자가의 표지를 희망의 표시로 보았다. 그의 영적 딸이 증언한 대로 "프랭크 더프는 외부로부터의 십자가, 내부로부터의 십자가, 크고 작은 십자가가 많았지만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꿋꿋하였다"(Hilde Firtel, A Man for Our Time, p. 81).

십자가가 없다면 더 많은 수확을 거둘 것이라고 레지오 단원들이 생각하여 어려움이나 부담이 별로 없는 활동만 바란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하느님의 생각은 우리 인간의 생각과는 다르다. 교본 본문의 말대로 "주님의 일은 주님 자신의 표지 곧 십자가의 표지를 지닌다는 것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한다. 이 표지가 찍히지 않으면 활동의 초자연적 특성은 의심스러우며 참된 성과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주위 환경의 악조건도 성공의 필요 조건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가망없는 상태에서 성공을 이끌어 냄으로써 당신의 권능을 기꺼이 드러내고자 하시기 때문이다. 교본 본문은 레지오 단원들이 태만하면서 하느님의 권능을 바라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레지오 단원은 자신의 태만이나 죄로 말미암은 잘못을 가지고 성공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제25항 : 성공은 기쁨이며 실패는 연기된 성공일 뿐이다



활동에 성공을 거두면 레지오 단원들은 기뻐하고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단원들이 태만하지 않고 힘껏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을 했음에도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실망하거나 좌절해서는 안되고 굴복하거나 조급해서도 안된다. 오히려 성공이 연기된 것으로 보고 좋은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다시 시도해야 한다. 레지오 단원들은 실패를 믿음에 대한 시련과 보속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교본 본문의 말대로 "실패란 사려 깊은 레지오 단원에게는 한 차원 높은 즐거움이 된다. 실패는 성공이 뒤로 미루어졌을 뿐이며 더 큰 성공을 기약하느 것이다.

프랭크 더프는 초창기에 레지오 마래의 확장에 대해 절박한 사명감을 느꼈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레지오 마리애 안에 하느님의 손길이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차근 차근 확고한 토대를 세우고 모든 실패를 단지 연기된 성공으로 보면서 현명하게 일을 추진해 나갔다(cf. R. Bradshaw, Frank Duff, Founder of the Legion of Mary, p. 213).

교본 본문의 내용대로 방문 활동에 있어서 사람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거나 환영을 하지 않을 때에도 좀더 깊은 차원의 위안으로 삼아야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이제껏 주의를 끌지 못했던 무엇인가 심각한 낌새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레지오 단원들의 경험에 따르면 가톨릭적 감정을 지닌 사람들은 비록 냉담 중에 있다 할지라도 우정과 온정을 가지고 방문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비록 정반대의 반응이 나타나더라도 단원들은 그것을 연기된 성공으로 여기고 성공의 기쁨을 기약하면서 꾸준히 활동해야 한다.

제25항 : 쁘레시디움과 단원들의 결점에 대한 태도



인간은 누구나 결점과 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레지오 단원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천차만별의 남녀노소가 레지오 단원이 된다. 불안전한 사람들로 구성된 쁘레시디움 역시 결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레지오에 입단하게 되면 단원들은 개인성화를 위해 노력하게 된다. 또한 기도와 공부와 활동 보고와 훈화가 있는 쁘레시디움 주회를 통해 자신을 수련하게 된다.

레지오 단원 생활을 열심히 오래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사령관이신 성모님을 본받게 되고 참을성이 생겨 점차로 결점이 줄어들게 된다. 레지오 단원이 되면 주회를 통해 남에게 봉사하는 사도적 정신을 갖게 되며 영적 수준이 향상된다.

레지오 단원들은 남의 결점에 대해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려 하지 말고 먼저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마태 7, 3-5 참조).

교본 본문은 쁘레시디움과 단원들의 결점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지를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가르치고 있다.

쁘레시디움이나 단원의 결점에 대해서는 참을성을 발휘해야 한다. 열성이 모자라고 거의 향상이 없으며 또 세속적인 결함이 뚜렷하게 드러날지라도 실망해서는 안된다. 레지오라는 조직에서 채찍질을 받고 또 기도와 신심으로 틀림없이 감화를 받는 단원들인데도 결점이 발견된다면, 레지오가 없었더라면 그 영적 수준이 어떻게 되었겠는가? 그러므로 누구에게도 못지않은 참을성과 온화한 태도를 가지고 활용 가능한 사도적 인재들을 개발하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가톨릭 정신은 천천히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사도적 정신만이 당장에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겠는가? 결코 쁘레시디움과 단원들의 결점에 대해 낙심을 해서는 안된다.

제27항 : 사욕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레지오에 정치가 금물이듯이 사욕 추구도 금물이다. 레지오는 물질과 상관없는 순수한 봉사 단체이다. 단원들은 레지오를 통해 영적인 유익을 추구하며 결코 단원 자신의 물질적 이익이나 영리를 추구하는 수단으로 레지오를 이용해서는 안된다.

일반적으로 신자들은 레지오 단원들을 신뢰하며 특히 세나뚜스, 레지아, 꼬미씨움, 꾸리아 단장을 비롯한 평의회 간부들과 쁘레시디움 단장에 대한 신뢰도는 더 높다. 신자들은 레지오 간부나 단원이 하는 말을 정직한 말로 받아들일 것이다. 따라서 레지오 간부나 단원이 불순한 마음을 가진다면 신분을 이용하여 사욕을 추구할 수도 았을 것이다.

레지오 단원들은 세례자 요한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 요한은 사람들이 자신을 구세주로 여겼을 때 정직하게 그것을 부인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영광되게 하였고 자신의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을 따르도록 했다. 그는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키고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 결코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사람들을 이용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교본 본문의 말대로 "레지오 단원은 레지오 안이나 밖에서 단원으로서의 신분을 부당하게 악용한다는 비난을 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제28항 : 단원들에게 금품을 주어서는 안된다



레지오에서 물질적인 원조나 돈을 걷는 일을 할 수 없듯이 레지오 단원들에게 금품을 주어서도 안된다. 연총친목회, 아치에스, 애회행사, 쁘레시디움 친목회 등의 레지오 행사 때 모든 레지오 단원들에게 기념푸이나 선물을 주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단원이 특별한 경조사를 맞았을 때도 돈을 각출하여 축복이나 위로를 표시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레지오에서 금지된 규율이다. 오히려 그럴 경우 영적 꽃다발을 바칠 것을 교본 본문은 권장한다.

제29항 : 레지오 안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



레지오 마리애는 조직적 사도직의 다양성을 살리고 레지오 안에 차별을 두지 않기 위해 사회의 특별한 계층이나 집단에 한정된 단원들만으로 쁘레시디움을 설립하는 것을 반대한다. 여기서 말하는 쁘레시디움은 청소년이나 신학생들로 구성된 특수 쁘레시디움이 아니라 일반 성인 쁘레시디움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물론 특수한 환경에 의해 같은 직장 동료들로 구성된 직장 쁘레시디움, 나이가 비슷한 청년 쁘레시디움 등의 일반 쁘레시디움도 조직될 수 있지만 레지오에서는 그것들을 이상적인 쁘레시디움으로 보지 않는다.

레지오는 일반적으로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직종, 남녀 혼성의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쁘레시디움을 이상적으로 보고 있다. 교본 본문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1) 사회의 특별한 계층이나 집단으로 한정하는 것은 배타성을 띠게 되어 형제애를 해치게 된다. 2) 단원 모집의 대상은 주로 가까운 친구나 친지들인데 그들이 특정한 부류의 쁘레시디움에 가입하기는 어렵다. 3) 다양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쁘레시디움의 운영이 가장 효과적임이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30항 : 다리를 놓는 일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 항목에서 "다리를 놓는 일"이란 레지오 조직을 통해 성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성교회 안으로 연결시켜 주고 생각과 행동간의 간격을 메꾸어 주는 일을 말한다. 프랭크 더프는 다리를 놓는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요지로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톨릭 신자들은 타성에 젖어 성교회 안에서만 안주하고 바깥 세상 사람들에 대한 선교에는 무기력한 경향이 있다. 그리고 생각과 행동간의 단절과 간격이 있을 수 있다. 그러한 무기력과 단절에 대한 처방은 조직을 이용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와 같이 동떨어진 간격을 메꾸기 위해 다리를 놓아 사람들이 건너가도록 하나의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 조직이 바로 그러한 좋은 예에 속한다(cf. Frank Duff, Victory through Mary, pp. 31-33).

교본 본문에 의하면 레지오는 신비체의 일치와 사랑을 바탕으로 조직되어 성교회와 바깥 세상 사이에 다리를 놓아 서로간의 의견 차이를 메꾸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단원이 아니 사람들을 레지오 조직 속에 들어오게 하여 동료 단원이 되게 함으로써 서로 같은 목적으로 사랑과 일치를 이룬다면 다리를 놓는 일을 성취한 것이다. 그러나 만일 레지오 자체 안의 계층 간에 불일치의 모습을 보인다면 의견 차이와 간격을 메꾸어 주는 다리 역할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제31항 : 조만간 레지오 단원은 가장 어려운 일을 착수해야 한다



레지오 단원은 입단하여 예비 단원이 되자마자 활동을 착수하게 된다. 쁘레시디움 단장은 신참 단원에게 처음부터 어려운 일을 시키지는 않지만 조만간 가장 어려운 활동을 배당해 주어야 한다. 레지오의 정신은 활동에 부담을 느낀다든지 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지 아니하고 어떤 일이든지 감당하려는 정신이다

사도직 활동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는 소심증, 체면, 비겁한 태도이다. 어렵고 힘든 활동이라 하여 미리 겁을 먹고 용기없는 소심한 태도를 보인다면 결코 큰 일을 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럴 경우 소수의 용기있는 단원이 어려운 일을 떠맡아 완수한다면 나머지 단원들의 활동에 용기와 활기를 불어넣게 될 것이다.

쁘레시디움 단장은 활동거리를 선택할 때 어렵고 힘든 일을 기피하고 주저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어렵고 힘든 일일수록 훌륭하고 보람있는 활동이다. 영적 지도자는 신설 쁘레시디움일지라도 단장을 격려하여 어려운 일을 맡기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만일 단장이 어려운 활동거리를 배당하기가 계속 꺼려지고 주저하는 마음이 있으면 비교적 단순한 활동부터 시작하여 점차로 어렵고 힘든 활동을 착수하도록 해야 한다.

제32항 : 위험에 대한 태도



이 항목은 바로 앞의 항목과 결부되어 있다. 레지오 활동에 있어서 쉽고 단순한 일에는 위험이 따르지 않겠지만 어렵고 힘든 일에는 위험이 따를 수 있다. 물론 레지오는 엄격한 규칙과 규율 등의 안전 수칙에 의해 불상사가 일어날 가능성은 적지만 사회의 빈곤층이나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한 힘들고 어려운 활동에는 위험스런 요소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레지오 초창기에 겪었던 일로서 윤락녀들의 회개를 위한 창녀촌 방문, 집 없는 부랑 남자들의 숙박소 운영, 개신교의 개종 센터에 대항한 가톨릭 무료 급식소 운영 등의 어려운 활동을 할 대 단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협박과 폭력의 위험이 있었다. 그러한 위험에도 단원들은 굴복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담대한 마음으로 끈기있게 활동을 추진해 나감으로써 성공을 거두었다.

레지오 단원들은 위험한 활동에 두려움 없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만일 활동에 위험이 따를 수 있다하여 활동을 아예 착수하지 않거나 중도에 그만두게 된다면 구원사업은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제33항 : 레지오는 교회가 벌이는 전투의 최전방에 서야 한다



레지오는 교회의 지도 아래 마리아와 교회의 사업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계승하는 것이다.

교회는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세력이나 죄악을 대항해서 전투를 벌인다. 레지오는 영적인 군대로서 교호 전투의 최전방에 서서 교회를 사수해야 한다. 레지오의 경력을 보면 교회가 벌이는 전투의 최전방에 서서 늘 어려운 문제들을 떠맡아 왔다. 프랭크 더프는 자신의 저서에서, 교회에서 중요한 일인데도 어려운 문제라 하여 이론에 그치고 실제로는 제대로 실천되지 않았던 것들 중에서 레지오가 떠맡아 완수한 여러 가지 업적을 열거하고 있다(cf. Frank Duff, Victory through Mary, pp. 147-148).

교본 본문의 말대로 만일 레지오가 어려운 문제와 큰 죄악의 문제를 떠맡지 못한다면 결국 다른 단체가 그 일을 착수하게 될 것이다. 레지오 단원들은 결코 뒤처지는 군인 노릇을 해서는 안된다.

제34항 : 레지오 단원은 가톨릭적인 것이면 무엇이나 전파해야 한다



이 항목에서는 교회의 준성사 특히 성모 마리아가 개입된 준성사를 다루고 있다. 준성사란 교회가 성사를 모방하여 제정한 성물이나 거룩한 행위로서 교회를 통해 영적인 효험을 얻어주는 것이다(전례헌장 60항 참조).

교본 본문은 단원들에게 교회가 공인한 준성사인 스카플라, 메달, 뱃지를 활용하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도 강조하면서 그것들을 보급하고 그 신심을 널리 전파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또한 성사와 준성사를 경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단원들이 신자 가정에 십자가, 성상, 상본, 성수, 묵주 등의 준성사를 준비하도록 활동하여 가정에서의 신심을 복돋우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마리아적인 준성사는 특히 갈색 성의와 기적의 메달이다. 교본 본문은 이들 중에 성모님의 옷으로서 갈색 상의를 다루고 있다. 성의는 라틴어로 어깨에 걸친다는 의미에서 스카플라(Scapula)라고 불린다. 갈색 스카플라는 성모님의 1251년 7월 16일 영국의 가르멜 수도회 총장 시몬 스톡(Simon Stock)에게 발현하여 가르멜회 수도복으로 주신 것이다. 이 성의 착용의 의향은 성모님께 항구하게 봉헌하는 것이다.

성모님이 시몬 스톡 성인에게 약속한 토요 특전이 있다. 이것은 교본 본문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누구든지 갈색 성의를 착용하고 생활 신분에 따라 정덕을 실천하며 성모소일과와 선업을 행하고 첫 토요일 신심을 지킨 사람이 죽으면 성모님이 지옥불을 면하게 해주시고 죽은 다음 첫 토요일에 연옥불에서 구해 주신다는 특전이다.

기적의 메달에 대해서는 교본이 부록에서 별도로 다루고 있다(부록 6, 교본 부록 3 참조).

제35항 : 널리 알려야 할 동정녀(Virgo Praedicanda) : 동정녀는 모든 이의 어머니이시니 모든 이에게 소개하고 알려야 한다



이 항목은 성모님의 지위와 역할을 다루면서 마리아를 라틴어로 'Virgo Praedicanda', 즉 '널리 알려야 할 동정녀'로 소개하고 있다. 성모님의 지위는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온 인류의 어머니이시다. 성모님의 역할은 모든 은총의 중개자로서 인류를 모성애로 돌보아주고 구세주께로 인도하여 구원받도록 하는 것이다.

에페소 공의회는 431년 "주님의 어머니"(루가 1, 43)인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언하였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성모님을 인류의 어머니로 내어주셨다(요한 19, 25-27 참조). 성모님은 천주의 모친으로서 모든 성인과 천사들보다도 지위가 높고 모든 이의 어머니이시기에 가톨릭 신자들은 성모님을 상경지레로써 공경한다.

성모님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서 16세기까지는 별로 문제가 없었다. 소위 종교 개혁자들인 루터, 칼빈, 쯔빙글리도 성모님께 대한 사랑과 신심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에 개신교 측에서 마리아에 대한 교리가 비성서적이라 하여 마리아를 격하시키고 공경하지 않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일치를 고려하여 교회헌장 제8장에서 성서적, 교부학적, 그리스도 중심이면서도 삼위일체 중심의 마리아론에 치중하였다. 그러나 이 공의회는 마리아가 교회 일치의 걸림돌이 아니라 구심점이 되기를 바라면서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은 천주의 모친이시며 인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간절한 기도를 바쳐야 하겠다"(교회헌장 69항 참조)고 하였다.교본 본문은 동정 성모가 개종을 막는 장벽이므로 격하시켜야 한다는 잘못이라고 지적하면서 일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없이 영혼들은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한다고 하였다. 또한 교본 본문은 개종 활동에 있어서 마리아가 필수적이므로 레지오 단원들이 모든 이에게 성모 신심을 설명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성몬미은 구세주 그리스도를 크게 하는 확대경이다. 프랭크 더프는 그의 저서에서 성모님이 모성애로써 사람들의 구원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임에도 개신교 신자들뿐 아니라 상당수의 가톨릭 신자들까지도 성모님을 뒷전에 제쳐두고 있다면서 성모님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마리아는 지금도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모셔오기 때문에 성모님 없이 그리스도를 모실 수 없다. 개신교 신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성모님을 격하시킨다고 해서 그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거나 회두하는 것은 아니다. 구세주의 모친을 헐뜯고 무시하면 구세주를 믿고 따르는 자기 자신을 헐뜯고 무시하는 것이 된다. 잘못된 교회 일치 운동으로 인해 그리스도교라면 어느 종파든지 좋은 것으로 여겨 예수님이 직접 세운 종교로부터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개신교인들을 개종시키기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성모님을 통하지 않고 직접 예수님께로 나아가려 한다. 그러나 가나 혼인 잔치에서 보여준 첫 번째 기적처럼 성모님은 모든 은총의 중개자이시다. 성모님을 사람들에게 쉽게 소개하려면 세기 3장 15절을 설명해주는 것이 좋다. 거기에 나오는 여인이 바로 구세주의 모친이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하여 인류에게 멸망을 가져 왔지만 성모님은 새 하오로서 새 아담인 구세주 예수님과 함께 인류를 구원하신 분이시다. 따라서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소개해야 한다(cf. F. Duff, Victory through Mary, pp.195-204, 416-425).

교본 본문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마리아를 전 인류의 어머니로 선포하였고(교회헌장 53항, 65항 참조), 마리아가 사도직의 원천이요 모델이므로 인류를 구원하려는 교회는 당연히 마리아께 의지해야 한다(교회헌장 65항 참조)고 강조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교본 본문은 또한 그 공의회를 마무리한 교황 바오로 6세가 가톨릭 신자들에게 마리아의 모성적 임무에 대해 충분히 교육시켜 비가톨릭 신자들에게 그 지식을 전달하도록 분부했고 전 인류를 성모 성심께 맡겨 성모님의 모성적 임무를 도우라고 했으며 성모님이 지니시는 모성적 사명과 화합의 임무에 관해서 "일치의 어머니(Mother of Unity)라는 칭호를 바쳤음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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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현세
글쓴이 : 현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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