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니야 종교회의.
야브네(히브리어), 일명 얌니야(희랍어)는 :
유다교의 방향을 설정한 중요한 사적지
1. 제1차 독립전쟁(66-70년)이 실패하여
70년 9월 예루살렘 市街地가 초토화되고 성전이 불타 버리자,
유다교는 : 큰 위기를 맞으면서,
성전 중심의 사두가이파, 에쎄네파, 열혈당파 등은 거세되고
오직 바리사이파만이 비교적 건재하였다.
①70-80년 요한나 벤 자카이 율사는 : 바리사이파 율사들을 이끌고
야브네에서 유다교를 재건하기 시작하였다.
②80년경부터는 : 가말리엘 2세 율사가
그 뒤를 이어 유다교의 기반을 다졌다.
③제2차 독립전쟁(132-135년)이 터져 야브네 주변이 몹시 위태로와진 까닭에
최고의회는 야브네에서 갈릴래아로 옮겨갔다.
④그때부터 야브네는 영향력을 상실했다.
2. 기원후 70-135년에 야브네에서 이룩한 큰 업적들
①유다교 최고의회 재건 : 율법 학원(벳 미드라쉬)과
최고의회(벳딘)를 창설하여 최고 의결기관으로 발전시켰다.
②규범전집 편찬작업 개시 :
유다교의 규범들은 : 구약성서에서 파생된 것과 관습이 있었는데,
수 백년 동안 그 잡다한 규범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기록하지 않고 구전으로 전하고 익혀오다가,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기록한
규범전집(미쉬나)이 처음으로 출간.
③그리스도인들을 단죄하는 기도문 추가 :
유다교인들이 회당 예배 때마다 바치는 ‘18조항 기도문’에다
그리스도인들을 단죄하는 제12조항을 추가
⇒그리스도인들은 : 더 이상 회당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고,
그리스도교가 유다교에서 완전 독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④구약 경전 확정 : 야브네에서 기원후 100년경에
비로소 오늘날 히브리어 구약성서처럼 경전 범위를 확정.
※후대의 일이지만, 에우세비우스 교회사에 보면,
66-70년에 일어난 제1차 유다독립 전쟁 때
그리스도인들은 독립운동에 가담하지 않고
요르단강 건너 펠라로 집단적으로 피신했다고 한다.
이것을 계기로 점점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하여,
85년경에는 야브네 유다교 율사들이 회당 예배 때마다 바치는
18조 기도문 중 제12조에 그리스도인들을 단죄하는 기도를 삽입했고,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유다교 회당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