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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렛 예수 (詩)

윤 베드로 2014. 6. 28. 12:40

나자렛 예수 (詩)

                                              구상

 

나자렛 예수!

당신은 과연 어떤 분인가?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나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기구망측한 운명의 소유자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상놈들과 창녀들과 부역자들과

원수로 여기는 딴 고장치들과

어울리며 먹고 마시기를 즐긴 당신,

 

가난한 사람들에게, 굶주린 사람들에게,

우는 사람들에게

의로운 일을 하다 미움을 사고, 욕을 먹고, 쫓기고,

누명을 쓰는 사람들에게

"행복한 사람은 바로 당신들"이라고

"하느님 나라는 바로 당신들 차지"라고

엄청난 소리를 한 당신.

 

소경을 보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문둥이를 말짱히 낫게 하고

죽은 사람을 살려내고도,

스스로의 말대로 온 세상의 미움을 사고

욕을 먹고 쫓기다가

마침내 반역자란 누명을 쓰고

볼 꼴 없이 죽어간 철저한 실패자,

 

내가 탯줄에서 떨어지자 맺어져

나의 삶의 바탕이 되고, 길이 되고

때로는 멀리하고 싶고 귀찮게 여겨지고,

때로는 좌절과 절망까지를 안겨주고,

때로는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생판 낯설어 보이는 당신,

 

당신의 참모습은 과연 어떤 것인가?

당신은 사상가가 아니었다.

당신은 도덕가가 아니었다.

당신은 현세의 경륜가가 아니었다.

아니, 당신은 종교의 창시자도 아니었다.

당신은 어떤 지식을 가르치지 않았다.

당신은 어떤 규범을 가르치지 않았다.

당신은 어떤 사회혁신운동을 일으키지 않았다.

또한 당신은 어떤 해탈을 가르치지도 않았다.

 

한편 당신은 어느 누구의 과거 공적이 있고

없고를 따지지 않았고

당신은 어느 누구의 과거 죄악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았고

당신은 실로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생각과 말을 뒤엎고

 '고생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고

고통 받는 인류의 해방을 선포하고

다만, 하느님이 우리의 아버지시오,

그지없는 사랑 그 자체이시니

우리는 어린애처럼 그 품에 들어서

우리도 아버지가 하시듯 서로를 용서하며

우리도 아버지가 하시듯 다함없이 사랑할 때

 우리의 삶에 영원한 행복이 깃들이고

그것이 곧 '하느님의 나라'라고 가르치고

그 사랑의 진실을 목숨 바쳐 실천하고

그 사랑의 불멸을 부활로써 증거하였다.

 

 

 

구상 시인의 “나자렛 예수”의 시에 대한 해설을

차동엽 신부의 “사도신경”(P87-92)에 의하여 정리하여 보았다.

 

예수님의 일생을 탁월한 문장으로 압축해 놓은 구상 시인의 詩.

             너무 좋은 詩.

시에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일생을 사실대로 이해하기 위하여

           온 몸으로 고뇌한 시인의 묵상이 깊이 배어 있다.

 

구상(具常, 1919 - 2004년, 본명은 구상준, 시인, 언론인).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유소년기의 대부분은 함경남도 원산에서 보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원산 덕원 성베네딕도 수도원 부설 신학교 중등과를 수료하고

           니혼 대학 전문부 종교과를 졸업했다.

 

태어날 때도 희한하게 태어나시더니 죽을 때도 강도들 사이에서,

           그것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

           이거야말로 기구망측한 운명이란 얘기다.

 

상놈은 성경에 나오는 죄인들이고, 부역자들은 세리들,

원수로 여기는 딴 고장치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모두 불행한 사람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한테 “당신들이 행복한 사람들이요.

하느님나라는 바로 당신들 차지요.”라고,

        되도 않은 천지개벽의 엄청난 소리를 해버리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거짓인가? 아니다. 오히려 뒤집기 진리다.

그래서 ‘엄청난 소리’라는 것이다.

이러면, 오늘날로 쳐서 국민훈장쯤은 받으셨어야 마땅하다.

여기까지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철저한 실패자셨다.

 

이 부분은 시인 자신의 이야기.

‘내가 탯줄에서 떨어지자 맺어져’라는 말은 :

          시인이 태어나 1주일도 안 되어 세례 받았음을 말한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분하고 딱 관계를 맺은 것이다.

 

‘나의 삶의 바탕이 되고, 길이 되고’는 : 그가 예수님의 일생을 동반한다는 뜻.

                             시인은 신학교에 입학하여 생활했다.

끝내 폐병에 걸려 신학교에서 나왔지만.

       신학교까지 갔는데 폐병에 들게 하셨으니

       시인은 때로 예수님을 멀리하고 싶고 귀찮게 여겨지기도 하고

       하느님이 슬슬 원망스럽기도 했다.

 

한마디로 비교 종교학의 요약이다. 시인답게 깔끔하다.

중요한 문장이다. 지금까지 모든 종교는 과거의 공적이 있고 없고가 중요했다.

죄과가 있고 없고, 이것이 천당과 지옥을 가름하는 기준이었지만,

           당신은 이 기준을 내팽겨쳤다.

 

예수님이 오시면서 확 뒤집혔다. 어떻게 뒤집혔나? 이렇게(다음 3구절).

오히려 이 죄인들을 이 세상기준으로 “넌 죄인이구나. 감방에 가라”하지 않으시고,

           “고생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 다 나한테 와!” 하며

             오히려 고통받는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셨다.

“내가 다 내려줄게, 대신 져줄게”하시며,

         이리하여 죄인들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다는

        ‘기쁜 소식’의 핵심에 이르렀다.

 

여기서부터 벌써 하느님의 자녀가 누리는 특권으로 들어간다.

       아빠 하느님을 부르며, 사랑하고 용서함의 특권 말이다.

 

진짜 행복은 뭔가? 하느님 아빠 안에 같은 공동체를 이뤄서

        사랑하고 오순도순 사는 것, 그것이 곧 하느님 나라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는 별개가 아니라

      여기서부터 시작된다”라고 가르치시고

     그 사랑의 진실을 십자가에서 목숨바쳐 실천하셨다.

사랑의 진실을 입증하는 가장 큰 방법이 ‘목숨’이니,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이 사랑의 불멸이 입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