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50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을 다 겪어 낼 때까지는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지 모른다.
51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 줄로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한 가정에 다섯 식구가 있다면 이제부터는 세 사람이 두 사람을 반대하고
두 사람이 세 사람을 반대하여 갈라지게 될 것이다.
53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반대할 것이며 어머니가 딸을 반대하고
딸이 어머니를 반대할 것이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반대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반대하여 갈라질 것이다."
이 단락은 : 두 개의 단절어로 구성(49-50절, 51-53절).
①49-50절에서 : 예수님은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러 오셨고
그 선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지기를 열망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예고하면서
“초조해”하신 셈인데, 그분의 인간적인 모습이 완연하다.
②종말을 대비하라고 하신 예수님께서 이제 제자들의 결단을 촉구하신다(51-53).
그 결단에는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지금까지 아무 일없이 평화롭게 지내왔던 모든 것이 분열되고 만다.
⇒5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하신다.
당신은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두 가지 방향에서 해석할 수 있다.
①우선 묵시문학에서는 역사의 종말이 가까워지면
가정에서부터 우주에 이르기까지 붕괴현상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묵시문학적 세계관에 빗대어
종말이 가까웠음을 알리고자 했다는 것이고,
②둘째, 이 말씀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생활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곧 예수님 때문에 가족간에 분열이 생긴다는 것이다.
가족간의 종교적 갈등은 예나 지금이나 있는 일이다.
※예수님은 무슨 뜻으로 “분열”이라는 말씀을 하셨을 까? :
그리스성경 원문에는 : “디아메리스모스”(분란, 분열)란 말이 사용되고 있는데,
Mt는 “칼”(10,34)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Lk는 이 말이 좀 거칠다고 사용했는지 “갈라섬”이나 “분열”이라는 말로 바꿨다.
예수님은 : 헤어지거나 갈라서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하지만 기존 사회의 틀에 순응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두 편으로 나뉘게 된다.
예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면 어느 한편에서는 그 말씀이 옳다고 생각하고
다른 편에서는 그 말씀에 반기를 든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에 반대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게 두루뭉실하게
말씀하시지 않고, 사람들이 결단을 내리게 하신다.
어떤 경우에는 예수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일로 가족이 완전히 분란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시고,
누구든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누구든지 삶의 근본적인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 마음의 평화를 찾지 못해서 사람들 사이에 분란을 일으키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사람들이 반목하는 모습을 지적하셨을 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목한 가족도 허울만 그럴 뿐
가족 간에 사랑이 없고 형식적인 관계만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셨다.
이런 형식적인 관계의 이면에는 가족의 유대가 끊어질 수 있는
커다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당신편에 서든지 반대편에 서든지 분명한 입장을 밝히도록,
하느님의 섭리에 따르겠다는 결단을 내리도록,
자기만의 고유한 삶의 빛깔을 내도록,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적극적인 말씀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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