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자료/오늘복음 묵상

7/14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윤 베드로 2021. 7. 14. 07:03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25-27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오늘의 묵상

사제로서 다른 사제의 강론을 듣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강론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아야 하지만,

          정작 가슴으로 듣지 못하기도 합니다.

제단에 올라 강론하려면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과 교리의 내용도 오랫동안 배워 왔고, 신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지금 무엇이 필요하고 중요한지를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기에, 좋은 말씀과 강론인데도 마음을 열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유는 자신이 ‘잘 알고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내가 해 봐서 다 알아!’, ‘왜 그 정도밖에 못해!’라며,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거나 듣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자신만이 옳다는 오만과 편견 속에 갇히게 됩니다.
인간은 하느님에 대하여 스스로 알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이해와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시며, 우리가 바라거나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으십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은 어쩌면 그런 오만과 편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하느님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오만함과, 자신이 바라는 방식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방식이라는

          편견으로 다른 이들의 처지와 생각을 헤아리지 않은 채 자신의 방식과 뜻만을 강요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이 그러하였고 빌라도가 그러하였으며

          가끔씩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도 그러하였습니다.
편견과 선입관 없이 무엇인가를 판단하기란 어렵습니다. 아니 어쩌면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경험과 삶이 판단의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알고자 한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철부지들처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먼저 많이 바라보고 들어야 합니다.

듣지도 보지도 않고서 판단하고 결정지으며 선택하는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많이 들으십시오.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바라보십시오. 그 안에서 하느님을 알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