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자료/오늘복음 묵상

9/2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윤 베드로 2019. 9. 2. 07:59

2019. 9/2 복음 및 묵상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6-30
그때에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오늘의 묵상

바둑이 10급인 사람이 훈수를 두면 실력이 두세 등급 올라 8급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사실 그 사람의 실력은 8급인데 자신이 직접 경기를 하다 보면 생각이 좁아져

       10급의 실력밖에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에서 빠져나와 훈수 두듯 경기를 한다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습니다.

삶도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빠져나와 훈수 두듯 살면 훨씬 실수를 줄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생각 중독에 빠져 있습니다. 지나치게 자신의 생각을 믿습니다.

그러니 나를 제3자로 바라보기 어렵습니다.

마치 하와가 일방적으로 대화를 주도하는 뱀의 유혹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선악과를 따 먹게 된 것과도 같습니다.

생각이 많은 것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린이처럼 단순해지기를 바라십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나자렛 사람들은 그들의 생각을 굳게 믿은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고 돌아오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놀라워하면서도

           결국에는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며 다시 그들의 생각에 빠져들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하시며

       고향 사람들의 경직된 마음을 나무라십니다.

나의 생각만 절대적으로 따르면 하느님의 뜻에 무관심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면 나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와도 뱀과 대화하면서 하느님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뱀과의 대화에 너무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많으면 사춘기 아이처럼 되기 쉽습니다.

자기만의 생각으로 마음의 문을 닫아걸어 자신이 만든 방에 갇혀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 밖에 주님께서 계십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