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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독교의 종파

윤 베드로 2015. 8. 22. 11:03

기독교의 종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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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표를 잘 보시면 기독교의 아주 큰 흐름은 고대에 동-서로 분리되고, 이어서 16세기의 종교개혁으로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분리된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트가 카톨릭으로부터 분리된 것은 세계사 등을 통해 비교적 자세히 배우는데요. 동-서의 분열에 대해서는 잘 배우지 않습니다. 이것은 로마의 역사가 결국은 승리자에 의해서 쓰여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중세를 통해 오랜 기간 종교적 암흑기를 거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널리 알려졌듯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동-서로 분열된 로마를 통일한 뒤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기 전까지 기독교는 박해를 받아왔습니다. 이러한 박해의 역사 때문에 기독교는 점조직처럼 많은 지역으로 퍼져 있었고, 서로 떨어져 있는 조직끼리의 교류가 상당 기간 동안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로마가 통일되고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이 흩어졌던 조직은 다시 통합을 해야 하는 운명에 놓이게 됩니다.


이러한 시기에 기독교는 몇개의 지역을 중심으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로마, 알렉산드리아, 에페소스(에베소), 안티오크(안디옥), 콘스탄티노플, 에데사 등이었는데요. 로마-알렉산드리아는 전통적인 그리스-로마 학파의 중심지였던 도시입니다. 안티오크-콘스탄티노플은 로마 제국에 의해서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인 신흥 도시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에데사는 도시가 아닌 농촌 지역이었고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왕조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기독교가 탄압을 받고 있었습니다.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교리의 통합이 필요해지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신성 문제입니다. 복음서들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인데,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라는 존재를 도대체 어떻게 볼 것이며 그와 하나님의 관계를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합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도대체 그가 고통을 받고 죽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이고 예수를 섬겨야 한다면 그걸 유일신 신앙으로 볼 수 있느냐? 등의 문제가 불거진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이루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우선 예수 그리스도는 원래 인간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하나님의 아들로 선택을 받아 신의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동태론(dynamism)'입니다. 이것은 초기 기독교의 한 분파였던 영지주의(그노시즘)의 영향을 받은 해석이었는데, 이렇게 해석해버리면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도 신도 아닌 '반신'이 되어버립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동태론은 발전을 거듭해서 '아리우스 학파''아폴리나리우스 학파'로 계승됩니다. 아리우스 학파는 동태론을 보다 발전 시켜서 인간의 예수에는 영혼이 없고 신이 된 예수에게만 영혼이 있다는 주장을 합니다. 아폴리나리우스 학파는 예수 그리스도는 영혼 대신 말씀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결국 니케아 공의회에 의해서 이단으로 규정되어 기독교에서 분리됩니다. 이러한 아리우스 주의는 이후 단성론의 학문적인 토대가 됩니다.

동태론의 해석에는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여기에 새로운 해석이 등장합니다. 태양은 눈에 보이는 태양이라는 존재와 거기서 발생하는 열기라는 서로 다른 성질을 갖고 있지만 동일한 하나의 존재이니 성부와 성자도 이와 동일한 양태적 특징을 가진다는 주장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양태론(modalism)'이라고 불리는 학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신인 예수 그리스도가 고통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고 하니, 이것은 유일신이 죽은 것이 되어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양태론이 발전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실체가 없는 영혼적인 존재로서 나타났던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이른바 '환영설'입니다.

또 다른 해석은 성부와 성자는 동일하지 않지만 동일한 하나님이라는 '동일체론'입니다. 이것이 발전한 것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라는 '삼위일체론(Trinitas)'입니다. 성부(Pater)와 성자(Filius)와 성령(Spiritus Sanctus)은 동일한 인격이 아니지만 하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성부는 세상을 만든 창조주이자 창조 이전부터 모든 것을 예정한(구원을 계획한) 영적인 아버지입니다.
성자는 구원에 필요한 일을 완수하는 존재이며, 성자의 육체적인 화신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령은 성자의 뜻을 인도하고 그것을 구원 받을 사람에게 적용시키는 매개체와 같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래서 "알파이자 오메가이신 하나님"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알파, 즉 '모든 것의 창조자인 성부'이자, 오메가, 즉 '모든 것을 완수하는 성자'인 하나님인 것입니다.

결국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삼위일체론이 정통 교리로 인정되어 다른 교리를 주장하던 종파들은 모두 이단으로 판정되어 파문됩니다. 이것을 놓고 기독교란 니케아 공의회에서 삼위일체론이 채택되어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그건 기독교의 본질을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론이 채택된 것은 삼위일체론이 복음서의 내용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설명하는데 가장 합리적인 해석이었기에 학문적으로 승리한 것이지 인위적으로 선택되어진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의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흔히들 말하는 "이슬람과 유대교와 기독교는 다 똑같은 신을 섬긴다."라고 하는 주장에 대한 답입니다. TV에 자주 나오던 통일교계 학자가 이런 주장을 하면서 마치 3개의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무지해서 서로 싸우고 있다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이 '이슬람-유대교-기독교' 동일신론이 널리 퍼졌는데요. 이것이야말로 종교에 대한 무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주장입니다.

삼위일체론 뿐만이 아니라 동태론이건 양태론이건 단성론이건 그 해석은 달라도 신앙의 뿌리는 같습니다. 그건 성부와 성자, 즉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신이라는 믿음이고 삼위일체론이 성립되기까지 나온 수많은 학설들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여러 학문적 방법론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나누어집니다.

기독교는 '성부-성자-성령'의 '성 삼위일체'를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종교입니다.
이슬람은 만인의 신인 알라(야훼, 여호와)를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종교입니다.
유대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야훼, 여호와)을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민족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와 이슬람은 서로 다른 신을 섬기는 종교이며 강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두 종교가 똑같은 이름의 신(같은 어원을 가진 신)을 섬긴다고 해서 같은 신을 섬긴다고 생각하는 건 그야말로 무지의 소산인 것이죠.


그런데 삼위일체론이 확립된 뒤에도 논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논쟁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그의 어머니인 동정녀 마리아에게 옮겨갑니다. 만약 성부-성자-성령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면, 성자를 낳은 동정녀 마리아는 신을 낳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 봉착합니다. 이 문제를 고민하면 또 다시 그리스도의 신성 문제가 튀어나오게 됩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는 성자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화신인데, 그럼 이렇게 해서 출산한 것을 인간을 낳았다고 보아야 하느냐 신을 낳았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럼 여기서 마리아가 신을 낳았다고 하면 성모 마리아는 '신의 어머니'가 되어버려서 삼위일체보다도 더 고위격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습니다. 만약 마리아가 인간을 낳았다고 하면 성모 마리아는 '인간의 어머니'가 되어버려서 그녀가 낳은 예수 그리스도도 인간이 되어버리는 모순이 생깁니다.

그런데 동로마의 아데사 지방과 안티오크, 에베소스 등의 지방에서는 오래 전부터 그 지역에 존재하던 여신 숭배 사상과 성모 마리아의 이야기가 결합되어 사람들은 이미 성모 마리아를 신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당시 신학자들은 이것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성모 마리아를 놓고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크 학파가 서로 대립합니다. 당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거두가 키릴루스였고, 안티오크 학파의 거두가 네스토리우스였습니다. 그런데 학문적으로는 신비주의적인 관점을 중시하던 알렉산드리아 학파보다는 현실주의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을 중시했던 안티오크 학파가 더 앞서 있었습니다. 이 두 학파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런 겁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성모 마리아가 낳은 것은 신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이니 성모 마리아는 신의 어머니가 맞고, 그녀의 신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안티오크 학파는 성모 마리아는 인간이지만 그녀가 낳은 것은 유일신인 성자의 현신인 예수 그리스도이니 그녀는 신의 어머니가 아닌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학문적으로 보았을 때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이 훨씬 더 타당하며, 지금의 기독교 교리로 보았을 때도 훨씬 더 발전된 생각입니다. 문제는 키릴루스는 당시 서로마의 정치-경제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고, 네스토리우스는 상대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약했던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교부였다는 것입니다. 학문적으로는 네스토리우스와 그를 지지하던 안티오크의 주교 요하네스가 더 앞서 있었지만 정치적인 영향력은 키릴루스가 더 강했기 때문에 결국 이 논쟁에서 키릴루스가 승리하고 네스토리우스는 이단으로 낙인찍혀 파문당합니다.


결국 네스토리우스는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조용히 세상을 떠났고, 그를 지지하던 학파들은 네스토리우스의 학문을 더 심층적으로 연구해 이른바 '이성설'을 완성시킵니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은 네스토리우스가 주장한 것은 이성설은 아닙니다. 그의 주장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는 신이기 때문에 그가 인간의 모습이었을 때 그것을 인간이냐 신이냐고 논쟁하는 것 자체가 이단적인 행위이며,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냐 인간의 어머니냐를 놓고 논쟁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이단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죠.(신의 화신인 예수를 어떻게 인간의 지성으로 제단할 수 있느냐는 것이 네스토리우스의 핵심적인 주장) 이것은 당시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려운 개념이었고, 이 때문에 네스토리우스의 여러 저술이나 그가 한 말들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변조되고 왜곡되어 퍼져나갔습니다. 이로 인해서 네스토리우스는 이단으로 낙인 찍힙니다.

네스토리우스파에서 발전한 이성설은 예수 그리스도는 신이자 인간이며 인간인 예수와 신인 예수는 구별된다는 학설입니다. 이러면 성모 마리아는 인간인 예수를 낳은 어머니이지 신인 예수를 낳은 어머니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인설을 부정해버리면 그것은 곧 삼위일체론의 근간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주류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엄연한 이단적 교리가 되어버립니다. 결국 네스토리우스의 생각과는 달리 그를 추종하던 세력은 이성설을 받아들이고, 주류 기독교의 박해를 피해 북아프리카와 아랍 지역으로 도망갑니다. 이 과정에서 아데사 지방의 박해를 받던 기독교들과 결합해 네스토리우스교가 성립됩니다.

이후 네스토리우스는 중국과 몽골 지방으로 전해져 '경교'라 불렸고,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로 개종했던 많은 몽골 부족들에 의해서 원나라 때 크게 번성하다가 명나라의 건국과 함께 쇄퇴하게 됩니다.(이 네스토리우스는 무려 통일신라시대에 한반도 내에도 신도가 있었을 정도로 전세계에 널리 퍼진 기독교 종파였습니다.)

이미 그 시기가 되면 중국 경교는 도교와 불교의 사상을 혼합해 중국식의 이상한 종교로 변질되어버렸고, 정통 네스토리우스로부터도 멀어져서 거의 사교 집단화 합니다. 김용의 무협 소설에 등장하는 경교의 사교적인 행위들은 그렇게 해서 나오게 됩니다.


기독교 분리의 역사(큰 사건을 중심으로)

연도

사건

논쟁

분파

325

니케아 공회

그리스도의 신성 논쟁.

알렉산드리아의 사제아레이오스가 주장하던성부, 성자, 성령은 모두 독자적인 존재다.”는 주장을 펼치는 아리우스주의에 대해 다른 학파가 대립.

아리우스파 분리

431

에페소스 공회

테오토고스 논쟁.

안렉산드리아의큐리로스와 콘스탄티노플의네스토리오스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주제로성모 마리아에 대한 명칭에 대하여 대립.

네스토리우스파 분리

451

칼케톤 공회

단성-양성론 논쟁.

단성론파 분리로 동방제교 성립

1054

성상숭배 논란

성상숭배문제로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이 대립

-서 교회 분리

1517

1차 종교개혁

교회 권력의 부정부패와 성직자의 면죄부 판매 행위들에 대한 반발.

루터파 분리

프로테스탄트 성립.

1534

국교회수립

헨리 8세의 이혼 문제.

성공회 분리

1537

2차 종교개혁

5sola 주의. 예정론 논쟁.

장로교 분리

16세기말

밥테스트 운동

밥테스머(세례자)와 세례의식에 대한 논쟁.

크게 3개의 파로 나뉨.

- 약식세례파, 침례파, 재침례파

침례교, 재침례교 분리

1729

청교도운동

성공회의 안수거부사건.

신대륙으로 가는 이주민을 실은 배에 탄 선교사들(청교도들)의 안수를 성공회가 거부하자 존 웨슬리 신부가 독자적으로 이들을 안수함.

감리교 분리

1867

성령운동

기독교 근본주의 운동 확산.

진화론과 자유주의 정신이 확산되는데 대한 강한 반발로 기독교 근본주의와 성령주의 운동이 확산.

성결교회 분리

오순절교회, 순복음교회 등으로 발전.

19세기말

재림운동

안식일 논쟁.

에렌 G. 화이트를 중심으로 성경에 기록된 안식일은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이며, 성경의 내용에 따라 지옥은 없다는 주장을 펼침.

안식일교회 분리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출처 :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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