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자료/성경 일반 자료

안티오키아 (사도 11,19-30)

윤 베드로 2014. 8. 23. 15:18

☆안티오키아 (사도 11,19-30)

 

*안티오키아는 : 로마제국에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 가는 큰 도시라서

        경제적인 중요성뿐만 아니라

        문화적, 종교적 중요성을 갖는다.

  따라서 그 도시에서의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전파는

             말씀을 세계로 전파하는데 있어서 기억할 만한

             또 하나의 진전이다.

  개인적인 영역에서 발생했던 고르넬리오의 개종과 비교하여

                 안티오키아에서의 개종은 공적이며 공동체적인 것이다.

  첫 이방계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형성된 안티오키아는

       이방인 전도를 위한 중심점이며 출발점이 된다.

 

*서기 33년경 예루살렘 교회의

         헬라 유대교 그리스도인들의 대표자인 스테파노가

         성전과 율법을 비판하다가 순교하자,

         그 중 일부가 안티오키아에 와서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전도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섞인 안티오키아 혼성교회가 크게 성장하자,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키프로스 태생 레위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바르나바를 파견하여 이 교회를 돌보게 했다.

  바르나바는 일손이 아쉬워 다르소에 있는 바울로를 데려와서

                일년 동안 함께 일했다.

  “그리스도인이란 명칭이 이 무렵 안티오키아에서 생겨났다”(사도 11,19-26).

 

*45-49년경 바울로와 바르나바는 : 사촌 요한 마르코를 데리고

                 여기서 제1차 전도여행을 떠났고,

        49년 예루살렘 사도회의에 이어

               사도 베드로가 안티오키아 교회를 방문했다.

 

*베드로가 처음엔 이방인 교우들과 서슴없이 어울렸으나,

              나중에 예루살렘에서 온 교우들로부터 협박을 받고

              이방인 교우들을 멀리하다가

              사도 바울로에게 꾸지람을 들은 사건을

              “안티오키아 사건”이라고 한다(갈라 2,11-14).

 

*바울로는 50-58년경 제2-3차 전도여행 때도

              안티오키아를 전도 거점으로 삼았다.

 

*지리상으로 팔레스티나와 가깝고 왕래도 잦았던 까닭에

          안티오키아와 시리아에는 예수 전승이 널리 퍼졌고

          세월이 흐르면서 예수 전승을 여러 번에 걸쳐 기록하게 되었다.

 

․50-60년경에 시리아의 어느 헬라 유대계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말씀 70여 편을 모아 “예수 어록”을 편찬했고,

․ 80-90년경에는 또 다른 헬라 유대계 그리스도인이

             예수 어록을 참고하여 “마태오 복음서”를 썼고,

․100년경에는 역시 같은 계열의 그리스도인이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을 썼다.

․110년경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시오는 로마로 압송되어 순교했는데,

              그가 압송되어 가던 도중에

            여러 교회에 보낸 편지 일곱 편이 전해 온다.

'성경 자료 > 성경 일반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렉산드리아   (0) 2014.08.24
알렉산더 대왕   (0) 2014.08.23
안티오키아(시리아)  (0) 2014.08.23
안식일의 의미  (0) 2014.08.23
아시리아  (0) 2014.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