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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오키아(시리아)

윤 베드로 2014. 8. 23. 15:11

☆안티오키아(시리아)

 

 

1.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 해외 전도의 거점

 

2. 알렉산더 대왕의 막료인 셀레우코스 니카토르는 :

     기원전 312년에 셀레우코스 왕조를 세우고,

     기원전 301년에 오론테스 강변에 수도를 건설하여

     자기 아버지 안티오코스의 이름을 따서

                     안티오키아라고 명명했다.

 

이곳은 중동의 정치, 경제, 학문, 환락의 중심지였으며,

            기원전 2세기에는 주민수가 50여만 명이었고,

            기원전 64년에 로마에 예속되었다.

 

3. 교회 창립 :

 

①스테파노의 순교로 예루살렘에서 도망한

         헬라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여기에 와서

         유다인은 물론 이방인에게도 그리스도 신앙을 전파했다.

                                                                       (사도 11,19-26)

 

②이어서 바르나바와 바울로가 안티오키아 교회를 돌보았고,

            이 교회를 이방인의 선교를 위한 거점으로 삼았다.

 

③지리상으로 이스라엘과 가깝고 왕래가 잦았던 관계로

        안티오키아 및 시리아에는 예수 전승이 널리 퍼졌고

          차츰 기록이 되었다.

 

4. 그 기록을 순서별로 보면,

 

①기원후 50-60년경, 시리아의 어느 헬라 유다계 그리스도인이

            예수의 말씀 70여 편을 모아 '예수 어록'을 편찬했고,

 

②80-90년경에는 같은 계열의 어느 그리스도인이

       예수 어록을 참조하여 마태오 복음서를 편찬했다.

 

③100년경에는 '열두 사도의 가르침’을 편찬했는데,

             마태오 복음서를 참조한 것 같다.

 

④110년경에 순교한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시우스도

                마태오 복음서를 참고한 듯하다.

 

⑤4세기에 시리아에서 씌어진 듯한

          교회법전(사도 헌장) 7권 1장 2절-

         32장 4절에 디다케 원문 전부가 수록되어 있다.

 

5.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우스 :

 

①오리케네스의 기록에 따르면, 이냐시오는 베드로의 후계자였고,

          敎會史家 에우세비우스에 따르면,

          베드로, 에보다우스에 이어 제3대 안티오키아 주교였다.

 

②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전해오는 바 없고,

          다만 110년경 로마 군인 10명의 감시를 받으며

          안티오키아에서 로마로 압송된 이야기가

          그의 편지 7편과 폴리카르푸스의 편지에 전해온다.

 

③이냐시오는 : 안티오키아에서 붙잡혀

          로마로 끌려가던 중에 필라델피아(지금의 알라쉐히르),

          스미르나(지금의 이즈미르), 알렉산드리아 트로아스,

          필립비를 거쳐갔다.

 

스미르나에서는 : 에페소, 막네시아,

          트랄레스(지금의 아이딘) 교회 대표들의 예방을 받고

             각 교회에 편지 한 통씩을 써 보냈다.

          스미르나에서 로마 교유들에게도 편지를 써 보냈는데,

            그 주된 내용은 자신이 맹수에게 잡혀 먹히도록

               버려 두라고 당부하는 것이었다.

          스미르나를 떠나 알렉산드리아 트로아스 항구에 다다라서는

              필라델피아 교회, 스미르나 교회,

              스미르나의 주교 폴리카르푸스에게 편지 한 통씩을 써 보냈다.

 

6. 중요한 내용 몇 가지를 보면 이렇다.

 

①가현설 영지주의를 규탄한 내용이 들어있는데,

    트랄레스 서간 9-10장과 스미르나 서간 1-6장에서

          예수 가현설 영지주의를 규탄한다.

            그리고 유대교화주의도 규탄한다.

 

②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언급이 있다.

   예수를 '우리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에페소서 서두에 쓰고 있다.

   이승에 사신 예수님은 '살이 되신 예수님'이라고 한다.

 

③감사제, 곧 미사 때 축성된 빵과 포도주는

             예수의 몸과 피라고 언급하고 있다.

 

④그리스도의 명칭에 대한 언급이 있다.

   본디 안티오키아 시민들이 예수 신봉자들을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했다(사도 11,26).

   사도 교부들 중에는 이냐시우스 홀로 이 명칭을 사용한다.

 

7. 안티오키아 신학파 :

 

2-7세기 신학의 양대 산맥은 :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의 신학파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신학파였다.

 

①1차 니케아 공의회 에서는(325년) :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 교회의 우월성을 인정했다.

         즉 세 교회를 총대주교좌로 공인한 셈이다.

 

②1차 에페소 공의회에서는(431년) :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안티오키아 학파를 눌렀고,

 

③반대로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는 :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안티오키아 학파에게 눌렸다.

 

④칼케돈 공의회에서는 : 콘스탄틴노플 교회를

            로마 교회에 다음가는 두 번째 총대주교좌로 격상시킴으로써

            미구에 동서 교회로 양분될 소지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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