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갈라지게 된 이유」 요약
1. 예수님께서는 : 하나의 교회를 세우시고
당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
모두 하나가 되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셨지만,
교회는 여러 교회들로 갈라져 있는 게 현실이다.
⇒크게 로마 가톨릭(천주교회), 정교회, 프로테스탄트,
성공회 등으로 갈라져 있다.
2. 분열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고 복잡하지만,
간략하게 요약해 본다.
1).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近東(터키, 시리아, 이집트를 포함한 지역)은 물론
북아프리카와 유럽 대륙으로 퍼져 나갔다.
2). 로마제국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를 끝낸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 330년에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동방의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그 이름을 콘스탄티노플로 고쳤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은 : 정치 문화 중심지로서뿐 아니라
종교 중심지로서도 급격히 부상한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 수도 로마 ⇒ 비잔티움 ⇒ 콘스탄티노플 改名)
3). 그래서 교회는 :
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회의를 열어(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①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로마 주교(=교황)에
다음 가는 地位를 갖는다고 결정하고,
②로마와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소아시아의 안티오키아를 총대주교좌 교회로 공인한다.
③이 총대주교좌들은 주변 교회들을 이끌면서
고유한 전례와 관습들을 발전시켜 나가게 된다.
4). 그런데 로마에서 볼 때,
다른 네 지역 교회는 : 모두 지리적으로 로마 동쪽이기에
이들 동쪽 교회들을 東로마 교회
또는 東方 교회라고 불렀고,
로마를 중심으로 한 교회를 :
西方 교회(=로마 교회, 라틴 교회)라고 불렀다.
5). 그렇지만 교회가 성장하면서 문제도 생겼다.
즉, 교리와 신앙 생활과 관련해서 의견 대립이 격화되면서
분열 조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문제가 심각해질 때면
교회는 공의회를 열어 정통교리를 확인하곤 했다.
이를 끝까지 거부하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이들을
이단으로 단죄했다.
7). 또 로마 교회는 라틴어를,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동방 교회는 그리스어를 쓰는 등
전례 언어도 다르고 제도나 관습도 달라
종종 마찰을 빚기도 했다.
또 476년 西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정치적 이유까지 겹쳐
때로는 심각한 양상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8). 그러다가 1054년에는 : 東․西方 교회가 결정적으로 갈라서게 되는데
이를 ‘동방이교(東方離敎)’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겹쳐 있지만
결정적 요인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①하나는 교황 首位權 문제 :
이미 381년 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총대주교좌의 권위와 함께 로마 주교 다음 가는 지위를 얻은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로마 주교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 것이고,
②다른 하나는 신앙고백문,
곧 신경의 문구를 둘러싼 대립이었다. :
․우리가 주일미사 때 바치는 신경에 :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라는 문구가 있다.
․그런데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들은 :
“성자에게서 발하시고”라는 문구를 넣어서는
안 된다는 신학적 입장을 내세웠다.
이를 ‘필리오퀘(Filioque)’ 논쟁이라고 한다.
․또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
라틴교회에서 누룩 없는 빵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라틴 교회와 수도원들에 대해
라틴 전례가 아닌 비잔틴 전례를 사용하도록
강요하는 등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졌다.
9).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①교황 레오 9세(재위 1049-1054)는 : 1054년 훔베르트 추기경 등을
교황 사절로 콘스탄티노플에 파견했으나
②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 이를 거부했다.
③그러자 훔베르트 추기경은 : 7월16일 파문 교서를 작성,
콘스탄티노플 성 소피아 성당 중앙 제대위에 놓고 돌아가자,
④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 회의를 소집,
파문서를 작성한 훔베르트 추기경 등을 파문했다.
⇒이로써 東․西方 교회는 : 완전한 결별을 고하게 됐고,
이를 東方離敎(Eastern Schism)라고 부른다.
10). 가톨릭 교회는 : 1054년 ‘동방이교’로
로마 교회(라틴 교회)와 동방 교회로 갈라선다.
⇒동방 교회는 : 자신들이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정통 신앙을
지닌다고 주장해 스스로를 正敎會라고 한다.
정교회는 : 지역(또는 나라) 이름을 따서 그리스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한국 정교회 등으로 부른다.
11). 교회는 : 그 후 다시 한번 큰 분열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즉, 16세기 마르틴 루터에 의해 촉발된
프로테스탄트 종교 혁명이 그것이다.
12). 프로테스탄트 종교 혁명의 배경 :
①15세기 이후 유럽 사회는 : 중세봉건제도가 무너지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민족국가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 서로 자기 나라 이익을 앞세우면서
교황권을 정략적으로 이용했고,
교황권은 영적 권위는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채
세속 권력과 결탁하거나
이들에게 휘둘리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②이와 함께 상공업의 발달은 :
富의 편중을 초래하면서 빈부 격차와 함께
황금만능주의 풍조를 심화시켰고,
민족국가들의 출현으로 수입이 줄어든 교황청은
수입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을 취하면서
문제의 소지를 만들었다.
또 돈으로 성직을 사고 파는 행위가 성행하면서
교회 지도층의 부패도 만연했다.
③또 이 시기는 : 문예부흥운동이 일어나면서
건축, 미술, 문학, 음악 등 학문과 예술이 크게 부흥한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재건도 이 시기에 이뤄진다.
⇒대성전 재건에 따른 막대한 재원 마련을 위해
교황청은 大赦를 시행했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13). 大赦는 : 원래 기도나 善行에 대해서만 주기로 돼 있는데
이것이 中世 末에는 남용되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심지어 “동전이 상자 안으로 딸랑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순간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여기에 반기를 든 사람이 독일의 마르틴 루터(1483-1546)였다.
마르틴 루터는 : 엄격하기로 유명한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수도자로서
비텐베르크 대학 성서학 교수였다.
⇒어떻게 하면 죄스러운 마음 상태에서 벗어나 평화를 얻을 수
있는지를 고심하던 그는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로마 1,17)라는 성경 말씀에서 위안을 얻고
‘신앙에 의한 義化’를 내세우게 됐다.
14). 프로테스탄트 분열 :
①베드로 대성전 재건과 관련해 대사가 남용, 오용되자
루터는 : 1517년 10월 대사 문제를 비판하는 것을 비롯해
선행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믿음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는 등 95개 命題를 내걸었다.
②처음에 루터는 : 가톨릭 교회를 떠날 생각이 없었으나
상황이 악화되면서 교황청은 1521년 1월 파문 교서를 발표했고,
루터는 이 교서를 불태워 버렸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교파가 루터교다.
③루터에 이어 독일어 사용권인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츠빙글리(1484-1531)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제네바에서는 칼뱅(1509-1564)이,
각각 가톨릭 교회에 대항해 종교 혁명을 시작하는 등
종교 혁명의 여파는 유럽 여러 지역으로 확산돼 나갔다.
⇒오늘날 프로테스탄트라고 하는 개신교는 :
바로 이들에게서 갈라져 나온 여러 그리스도 교파들을 가리킨다.
Protestant는 : “항거자” 또는 “항의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당시 가톨릭 교회에 항의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④한편 영국에서는 : 헨리 8세 국왕(1491-1547)의
혼인 문제가 발단이 돼 종교 혁명이 일어났다.
헨리 8세는 : 교회법이 금지하는데도
아내 아라곤의 캐서린과 이혼하고
궁녀 앤 볼린과 결혼을 강행함으로써
1534년 파문을 당했다.
⇒그러는 사이에 교황권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영국의회는 : 1534년 11월 ‘수장령’을 통해
국왕을 영국 교회의 수장으로 선언함으로써
교황권과 결별했다.
이렇게 해서 영국 성공회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15). 가톨릭 종교개혁(교회쇄신) :
1054년 동방이교에 이은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 혁명은
그리스도 교회에 큰 상처를 남겼다.
그렇지만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교회는 쇄신 노력을 새롭게 하게 됐는데
트렌토 공의회(1545-1563)를 통한 교회 쇄신 작업이 그것이다.
①트렌토 공의회의 쇄신 작업은 :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때까지
약 400년 동안 가톨릭 교회 신앙과 생활의 규범역할을 해왔다.
②이와 함께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
그 동안의 분열 역사를 청산하고
그리스도 교회들이 다시 일치할 수 있는
새로운 전망을 열어놓았다.
<평화신문, 2007. 1.>
☞『간추린 성경공부 노트』
「그리스도교 역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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