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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갈라지게 된 이유」 요약

윤 베드로 2014. 6. 20. 15:26

「교회가 갈라지게 된 이유」 요약

 

 

1. 예수님께서는 : 하나의 교회를 세우시고

            당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

            모두 하나가 되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셨지만,

            교회는 여러 교회들로 갈라져 있는 게 현실이다.

 

⇒크게 로마 가톨릭(천주교회), 정교회, 프로테스탄트,

          성공회 등으로 갈라져 있다.

 

2. 분열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고 복잡하지만,

                    간략하게 요약해 본다.

 

1).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近東(터키, 시리아, 이집트를 포함한 지역)은 물론

              북아프리카와 유럽 대륙으로 퍼져 나갔다.

 

2). 로마제국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를 끝낸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 330년에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동방의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그 이름을 콘스탄티노플로 고쳤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은 : 정치 문화 중심지로서뿐 아니라

           종교 중심지로서도 급격히 부상한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 수도 로마 ⇒ 비잔티움 ⇒ 콘스탄티노플 改名)

 

3). 그래서 교회는 :

      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회의를 열어(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①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로마 주교(=교황)에

              다음 가는 地位를 갖는다고 결정하고,

     ②로마와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소아시아의 안티오키아를 총대주교좌 교회로 공인한다.

     ③이 총대주교좌들은 주변 교회들을 이끌면서

                고유한 전례와 관습들을 발전시켜 나가게 된다.

 

4). 그런데 로마에서 볼 때,

     다른 네 지역 교회는 : 모두 지리적으로 로마 동쪽이기에

                이들 동쪽 교회들을 東로마 교회

                또는 東方 교회라고 불렀고,

    로마를 중심으로 한 교회를 :

              西方 교회(=로마 교회, 라틴 교회)라고 불렀다.

 

5). 그렇지만 교회가 성장하면서 문제도 생겼다.

      즉, 교리와 신앙 생활과 관련해서 의견 대립이 격화되면서

                      분열 조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문제가 심각해질 때면

                 교회는 공의회를 열어 정통교리를 확인하곤 했다.

         이를 끝까지 거부하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이들을

                           이단으로 단죄했다.

 

7). 또 로마 교회는 라틴어를,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동방 교회는 그리스어를 쓰는 등

         전례 언어도 다르고 제도나 관습도 달라

                         종종 마찰을 빚기도 했다.

     또 476년 西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정치적 이유까지 겹쳐

                   때로는 심각한 양상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8). 그러다가 1054년에는 : 東․西方 교회가 결정적으로 갈라서게 되는데

                    이를 ‘동방이교(東方離敎)’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겹쳐 있지만

              결정적 요인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①하나는 교황 首位權 문제 :

                   이미 381년 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총대주교좌의 권위와 함께 로마 주교 다음 가는 지위를 얻은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로마 주교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 것이고,

 

  ②다른 하나는 신앙고백문,

              곧 신경의 문구를 둘러싼 대립이었다. :

       ․우리가 주일미사 때 바치는 신경에 :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라는 문구가 있다.

     ․그런데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들은 :

                “성자에게서 발하시고”라는 문구를 넣어서는

                  안 된다는 신학적 입장을 내세웠다.

                     이를 ‘필리오퀘(Filioque)’ 논쟁이라고 한다.

  ․또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

                 라틴교회에서 누룩 없는 빵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라틴 교회와 수도원들에 대해

              라틴 전례가 아닌 비잔틴 전례를 사용하도록

              강요하는 등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졌다.

 

9).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①교황 레오 9세(재위 1049-1054)는 : 1054년 훔베르트 추기경 등을

                  교황 사절로 콘스탄티노플에 파견했으나

     ②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 이를 거부했다.

     ③그러자 훔베르트 추기경은 : 7월16일 파문 교서를 작성,

                     콘스탄티노플 성 소피아 성당 중앙 제대위에 놓고 돌아가자,

     ④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 회의를 소집,

                파문서를 작성한 훔베르트 추기경 등을 파문했다.

 

  ⇒이로써 東․西方 교회는 : 완전한 결별을 고하게 됐고,

                이를 東方離敎(Eastern Schism)라고 부른다.

 

10). 가톨릭 교회는 : 1054년 ‘동방이교’로

                로마 교회(라틴 교회)와 동방 교회로 갈라선다.

 

  ⇒동방 교회는 : 자신들이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정통 신앙을

                             지닌다고 주장해 스스로를 正敎會라고 한다.

     정교회는 : 지역(또는 나라) 이름을 따서 그리스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한국 정교회 등으로 부른다.

 

11). 교회는 : 그 후 다시 한번 큰 분열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즉, 16세기 마르틴 루터에 의해 촉발된

                      프로테스탄트 종교 혁명이 그것이다.

 

12). 프로테스탄트 종교 혁명의 배경 :

     ①15세기 이후 유럽 사회는 : 중세봉건제도가 무너지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민족국가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 서로 자기 나라 이익을 앞세우면서

                           교황권을 정략적으로 이용했고,

                         교황권은 영적 권위는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채

                                       세속 권력과 결탁하거나

                                       이들에게 휘둘리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②이와 함께 상공업의 발달은 :

                富의 편중을 초래하면서 빈부 격차와 함께

                   황금만능주의 풍조를 심화시켰고,

                민족국가들의 출현으로 수입이 줄어든 교황청은

                   수입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을 취하면서

                       문제의 소지를 만들었다.

               또 돈으로 성직을 사고 파는 행위가 성행하면서

                교회 지도층의 부패도 만연했다.

 

  ③또 이 시기는 : 문예부흥운동이 일어나면서

            건축, 미술, 문학, 음악 등 학문과 예술이 크게 부흥한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재건도 이 시기에 이뤄진다.

 

    ⇒대성전 재건에 따른 막대한 재원 마련을 위해

                교황청은 大赦를 시행했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13). 大赦는 : 원래 기도나 善行에 대해서만 주기로 돼 있는데

                  이것이 中世 末에는 남용되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심지어 “동전이 상자 안으로 딸랑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순간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여기에 반기를 든 사람이 독일의 마르틴 루터(1483-1546)였다.

      마르틴 루터는 : 엄격하기로 유명한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수도자로서

                   비텐베르크 대학 성서학 교수였다.

  ⇒어떻게 하면 죄스러운 마음 상태에서 벗어나 평화를 얻을 수

               있는지를 고심하던 그는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로마 1,17)라는 성경 말씀에서 위안을 얻고

               ‘신앙에 의한 義化’를 내세우게 됐다.

 

14). 프로테스탄트 분열 :

       ①베드로 대성전 재건과 관련해 대사가 남용, 오용되자

          루터는 : 1517년 10월 대사 문제를 비판하는 것을 비롯해

                     선행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믿음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는 등 95개 命題를 내걸었다.

 

       ②처음에 루터는 : 가톨릭 교회를 떠날 생각이 없었으나

                       상황이 악화되면서 교황청은 1521년 1월 파문 교서를 발표했고,

                   루터는 이 교서를 불태워 버렸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교파가 루터교다.

 

      ③루터에 이어 독일어 사용권인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츠빙글리(1484-1531)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제네바에서는 칼뱅(1509-1564)이,

                     각각 가톨릭 교회에 대항해 종교 혁명을 시작하는 등

                     종교 혁명의 여파는 유럽 여러 지역으로 확산돼 나갔다.

 

⇒오늘날 프로테스탄트라고 하는 개신교는 :

               바로 이들에게서 갈라져 나온 여러 그리스도 교파들을 가리킨다.

    Protestant는 : “항거자” 또는 “항의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당시 가톨릭 교회에 항의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④한편 영국에서는 : 헨리 8세 국왕(1491-1547)의

                혼인 문제가 발단이 돼 종교 혁명이 일어났다.

 

             헨리 8세는 : 교회법이 금지하는데도

                        아내 아라곤의 캐서린과 이혼하고

                        궁녀 앤 볼린과 결혼을 강행함으로써

                         1534년 파문을 당했다.

 

   ⇒그러는 사이에 교황권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영국의회는 : 1534년 11월 ‘수장령’을 통해

                       국왕을 영국 교회의 수장으로 선언함으로써

                                       교황권과 결별했다.

                            이렇게 해서 영국 성공회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15). 가톨릭 종교개혁(교회쇄신) :

 

       1054년 동방이교에 이은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 혁명은

                  그리스도 교회에 큰 상처를 남겼다.

        그렇지만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교회는 쇄신 노력을 새롭게 하게 됐는데

                  트렌토 공의회(1545-1563)를 통한 교회 쇄신 작업이 그것이다.

 

    ①트렌토 공의회의 쇄신 작업은 :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때까지

                 약 400년 동안 가톨릭 교회 신앙과 생활의 규범역할을 해왔다.

 

  ②이와 함께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

                   그 동안의 분열 역사를 청산하고

                   그리스도 교회들이 다시 일치할 수 있는

                   새로운 전망을 열어놓았다.

 

                                                                    <평화신문, 2007. 1.>

 

                                                                     ☞『간추린 성경공부 노트』

「그리스도교 역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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