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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쿡 예언자와 관련된 사진을 찾다 보니 피렌체 두오모미술관에 있는 도나텔로의 대리석 조각상이 눈에 띕니다. 고행자 같은 표정입니다.
끝없이 하느님께 질문을 던지고 또 기약 없는 하느님의 응답을 기다려야 했던 예언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니네베의 멸망을 기뻐하지만
나훔은 니네베가 멸망했다고 기뻐했습니다(기원전 612년). 하지만 아시리아가 없어지면 이 세상에 불의가 다 없어질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우리도 잘 압니다. 그것이 하바쿡의 문제입니다.
“당신께서 듣지 않으시는데 제가 언제까지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까?”(하바 1,2) 이것이 하바쿡의 첫 번째 탄원입니다. 어떤 맥락에서 나온 질문인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하바쿡서는 정확한 연대 추정이 어려운 책입니다.
임금의 이름 같은 것은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바쿡이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누구의 아들인지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탄원은 하는데 무엇 때문에 탄원을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억압, 불의, 폭력. 모두 어느 시대에나 사라지지 않는 이 세상의 악들입니다. 국제적인 문제와 국내적인 문제, 두 가지 모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연대 추정의 근거는 “내가…칼데아인들을 일으키리니”(1,6)라는 하느님의 한 마디 말씀뿐입니다.
혹시나 이 한 단어가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라면 하바쿡서에는 연대를 알 수 있는 단서가 전혀 없게 됩니다. 어쨌든 이 한 단어를 믿어 본다면, 칼데아인들은 바빌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역사적 배경을 엮어 보면, 아마도 배경은 아시리아가 기울어 가고 이집트와 바빌론이 세력을 겨루던 시기인 것 같습니다. 아시리아에 시달리다가 아시리아가 멸망하고 나니 처음에는 이집트가 꿈틀거립니다.
요시야는 이집트와 맞서 싸우다가 40세에 전사합니다. 기원전 609년, 나훔이 니네베 멸망을 기뻐한 지 3년 만의 일입니다. 유다 내부의 정치도 어지럽습니다.
넓은 땅에서 아시리아와 이집트와 바빌론이 세력을 겨룰 때 작은 나라 유다에서는 친아시리아파와 친이집트파, 친바빌론파가 갈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임금들도 전사하고 폐위되고 끌려갑니다. 그 상황에서 하느님은 바빌론을 일으키겠다고 하십니다.
바빌론이 일어나면 어떻게 됩니까? 아시리아가 없어져도 세상에 불의가 없어지지 않았고 바빌론이 일어나도 불의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바빌론은 이집트와 전쟁을 하고 이집트를 꺾을 것입니다.
바빌론이 패권을 잡으면 유다 왕국 안에서도 친아시리아 세력이나 친이집트 세력은 무너질 것이고 정치 판도도 바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바빌론은 또 하나의 불의가 되고 폭력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바쿡은 또 탄원합니다. 하바쿡서의 두 번째 탄원입니다. 하바쿡은 하느님께 질문을 던져 놓고서는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초소에 서 있는 보초처럼, 하느님께서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보기 위하여 성벽 위에 서 있습니다(1,12-2,1).
이어지는 하느님의 두 번째 대답은 “너는 기다려라”(2,3)라는 말씀입니다. 기다려라, 기다려라. 이것이 유일한 대답입니다. 응답은 즉시 이루어질 것이 아니니 기록해 두고 언젠가 이루어지면 확인하라고 하십니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2,3).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충실한 믿음으로 기다린다면 반드시 살게 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느님은 확실한 약속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언제 이루어질 것인지는 보이지 않는 약속입니다.
예언자의 기도
하바쿡은 기다립니다. 하바쿡서 3장에는 “하바쿡 예언자의 기도”(3,1)가 덧붙여져 있습니다. 하바쿡이 쓴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기도는 하바쿡서를 훌륭하게 완성해 줍니다.
노래의 앞부분에서는 땅을 뒤흔드시며 산과 언덕을 내려앉게 하시는 하느님의 엄위를 노래합니다. 그런 하느님이 민족들을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당신 백성을 구원하러, 당신의 기름 부음 받은 이를 구하러 반드시 오실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그 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도 조용히 기다리고 있습니다(3,16). 아직은 이 세상에 정의가 세워지는 종말이,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무화과나무가 꽃을 피우지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올리브나무에 딸 것이 없다는 것은(3,17) 아직 구원의 때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그런데도 하바쿡은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내 구원의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리라”(3,18)라고 말합니다.
하바쿡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며 기뻐합니다. 믿음에는 아무 증거도 없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그가 믿고 바라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데도 그는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그 믿음으로부터 힘을 받습니다.
하바쿡서는 연대 추정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바쿡서는 다른 모든 시대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특정한 나라나 임금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의는 특정한 시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불의가 사라져도 또 다른 불의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바쿡은 우리에게, 그런 현실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말라고 말합니다.
믿음이 우리를 어둠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게 합니다.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밭은 먹을 것을 내지 못할 때, 이 세상에 불의가 판을 칠 때 우리도 하바쿡의 기도를 함께 바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주 하느님은 나의 힘. 그분께서는 내 발을 사슴 같게 하시어 내가 높은 곳을 치닫게 해 주신다”(3,19).
<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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