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리야의 승천’. 작자 미상. |
금들은 옳은 길을 벗어나기가 쉬운 모양입니다. 그래서 사무엘기와 열왕기에서 임금들이 있는 곳에는 예언자들도 있습니다.
특히 임금이 잘못할 때에 예언자들의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임금들이 하느님 위에 올라서지 못하도록 옆에서 찌르는 것이 예언자들입니다.
그러니 임금들에게는 예언자들의 말이 달갑지 않기도 했을 것입니다. 아합과 엘리야, 히즈키야와 이사야, 치드키야와 예레미야.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나 남 왕국 유다에서나, 임금과 예언자 사이의 갈등은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성경에 예언서들을 남긴 문서 예언자들 이전에 활동한 가장 중요한 예언자 두 사람이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엘리야와 엘리사입니다. 임금들의 역사를 이어가던 열왕기에서는, 상권 17장부터 하권 8장까지에 걸쳐 이 두 예언자에 대해 전해줍니다.
엘리야 시대의 임금은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었습니다. 임금에 대한 신명기계 역사가의 평가 기준은 여기서도 문제가 됩니다.
처음부터 다윗 왕조를 거슬러 일어난 예로보암이 세운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는 이백 년 사이에 아홉 왕조가 일어서고 무너지고 했는데, 그 가운데 오므리 왕조는 상당히 강성했습니다.
그래서 아시리아의 문서들에서 북 왕국 이스라엘을 가리켜 “오므리의 집안”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오므리 집안은 솔로몬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오므리는 수도를 티르차에서 사마리아로 옮겨 왔고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도 개선했습니다. 특히 친 페니키아 정책을 써서 지중해 무역을 위해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스스로는 별로 바다로 진출한 민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므리는 친 페니키아 정책의 일환으로 아들 아합을 시돈의 공주 이제벨과 결혼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이교 신들에 대한 숭배가 이스라엘에 퍼지고 사마리아에 그 신을 위한 신전이 세워지기에 이릅니다.
오므리와 아합에 대한 신명기계 역사가의 평가는 이제 설명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물론 북 왕국 이스라엘의 임금들이 모두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아합은 이스라엘의 신앙을 위태롭게 한 임금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이렇게 우상 숭배에 물든 이스라엘에 가뭄을 선포합니다. 가뭄이 시작되고 3년이 지난 다음 엘리야가 아합을 찾아가자 아합은 “당신이 바로 이스라엘을 불행에 빠뜨리는 자요?”(1열왕 18,17)라고 말합니다.
심판을 선고한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버린 아합 임금과 그의 집안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카르멜 산 위에서 홀로 바알의 수많은 예언자와 대결하여, 주님께서 참 하느님이심을 모든 이들 앞에서 드러냅니다.
그는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1열왕 18,21)라고 요구했습니다. 엘리야, “나의 하느님은 야훼”라는 이름대로 그는 하느님은 오직 한 분, 야훼이심을 주장한 것입니다.
엘리야와 관련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건은 나봇의 포도밭 사건입니다(1열왕 21장). 아합은 자신의 왕궁 곁에 있는 나봇의 포도밭을 빼앗고 싶지만 집안의 상속 재산을 파는 것은 하느님께서 금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나봇은 그 포도밭을 팔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임금은 하느님 아래, 율법 아래 있어야 한다는 것, 여러 차례 나타났던 주제입니다. 그러나 이제벨은 이스라엘 여자가 아니기에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임금이 폭력으로 그 포도밭을 빼앗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이스라엘에 왕권을 행사하시는 분은 바로 당신이십니다”(1열왕 21,7). 임금은 무엇보다 위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제벨이 나봇을 죽인 다음 엘리야가 나타나 아합에게 심판을 선고하는 이 사건은,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밧 세바를 차지했을 때에 나탄이 나타나 개입했던 경우와 유사합니다(2사무 11─12장 참조).
두 경우 모두 임금이 이웃 주민의 소유를 탐내고, 그를 죽이도록 편지를 보내며, 죽인 다음에는 그의 아내 또는 포도밭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이때에 예언자가 나타나 임금에게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임금은 잘못을 뉘우칩니다. 임금과 하느님, 임금과 예언자의 관계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입니다.
그 후 엘리야는 모세처럼 호렙 산에서 하느님을 만난 다음 예후를 이스라엘 임금으로 세우고 엘리사를 자신의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우고, 그 밖에도 많은 이적을 행하였습니다.
그가 불 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갈 때 엘리사는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기병이시여!”(2열왕 2,12)라고 외쳤습니다. 이 말은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엘리야가 했던 역할을 한마디로 말해 줍니다.
일찍이 여호수아가 통수권을 받을 때에 하느님께서 하셨던 말씀처럼(여호 1,7-8 참조) 이스라엘이 죽고 사는 것은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사랑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임금들이 한 분이신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하여 이스라엘을 위험으로 몰고 갈 때에, 이스라엘을 지킨 것은 군대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병거이며 기병인 예언자들이었습니다.
이어서 열왕기에서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기까지의 역사와 그 후 남 왕국 유다가 기울어간 역사를 전해 줍니다. 그 역사는 예언자들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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