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고대 사회에 적용되던 형벌 원칙인 동태복수법은 피해자에게 입힌 손해를
가해자에게 그대로 보복한다는 것이다.
구약 당시 사회에서도 동태복수법은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방법이었다.
이스라엘 역사 초기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태복수법의 원칙을 그대로 지켰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탈출 21장 참조).
그런데 동태복수법은 실제 실천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겼었다.
그 이후 동태복수법은 금전적 보상제도로 대치됐고, 예수님에 의해 완전히 폐기됐다.
예수님은 악행과 학대를 당할 때 보복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대신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원칙을 제시하셨다(마태 5,38-48).
이웃 사랑에 대한 예수님 가르침의 특징은
당시 유다인들의 일반적인 이웃 개념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었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야 하며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44).
원수에 대한 사랑은 동태복수법이 당연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마태 22,39)는 말씀은 이웃 사랑의 한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이웃 사랑에 대한 한계를 완전히 초월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랑의 계명이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실행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다(마태 5,43-48).
이처럼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이웃과 형제만을 사랑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했다.
세리들과 이방인들도 그만큼은 하기 때문이다(마태 5,46-47).
특히 신약의 마태오 복음에서 언급하는 원수 개념은 이방인을 의미한다.
유다인들에게 이웃을 자기 민족만 아니라 모든 인류의 공동체로 그 의미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나에게 큰 해를 입힌 원수는 가장 사랑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이처럼 예수님이 가르치신 원수 사랑은 그리스도교가 가르치는 이웃 사랑의 특별한 형태이다.
진정한 원수 사랑은 원수를 적극적으로 용서해 주며 그를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원수에 대한 사랑은 적개심이나 증오를 소극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마태 5,44-46).
예수님은 원수마저도 사랑해 복수의 악순환을 끊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선으로 악을 이겨내어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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