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
종교와 과학은 상호 협력 관계
환경문제가 심각한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교 창조론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편리를 위해 만든 화학제품은 생태계 파괴를 가져왔고, 과학기술은 치유 목적이라는 미명으로 인간 복제를 시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간은 과연 누구이고 또 자연은 무엇인지 물어야 할 때다. 인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는 누구인가''나는 어디서 왔는가'와 같이 세상과 인간 자신의 기원에 대한 해답을 갈구해 왔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이 제시하는 인간과 자연의 기원은 창조론이다. 창조론은 성경에 근거해 인간과 세상이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고 답변해 왔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계몽주의자와 자연과학자는 창조론을 공격했고, 이에 교회는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단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은 잦아들고 있다. 과학은 생명 현상, 생물의 진화와 그 방식을 연구하는 반면 신학은 그 궁극적 의미를 묻는다는 차이를 교회가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신학과 과학을 상호의존적ㆍ협력적 관계로 이해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창조론의 타당성을 살펴보자. 생명의 시작에 관한 그리스도교 창조는 연대기적 시작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시작을 말한다. 또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면서 세계와 인간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설명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인간과 세상의 기원에 관한 이론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신화다. 신화는 어떤 사실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을 얘기해주고 열거한다. 그 렇기에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무조건 옳다는 정언적 성격을 띈다. 또 시간이나 논리를 떠나 그 자체로 정당성을 지닌다. 신화에서는 대부분 시초에 혼돈이 등장한다. 이 혼돈으로부터 만물이 분출되고, 창조는 이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세우는 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 작업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보다 월등한 존재인 신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서술된다. 몇 가지 신화를 살펴보자. 바빌론의 신화 「에누마 엘리쉬」는 신이 귀찮은 것을 떠맡기기 위해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묘사했다. 여기서는 인간창조가 매우 부정적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프로메테우스와 에페메테우스가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여자를 '남자를 못살게 하려고 만들어진 존재'로 묘사한다. 신화뿐 아니라 고대 희랍철학 역시 세상의 기원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세상의 기원을 최초로 탐구한 철학자 탈레스를 비롯해 만물의 기원을 탐구한 학자들을 밀레토스학파 또는 이오니아학파라고 한다. 이들은 신들을 언급하지 않고도 우주를 다스리며 우주의 변화 과정을 규제하는 어떤 비인간적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은 사물이 어떻게 창조됐는가보다는 사물의 근원에만 관심을 뒀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자연보다 인간 자체에 관심을 돌리고 인간을 최고의 학문 대상으로 여겼다. 그의 제자 플라톤은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구분하는 이원론적 사고를 가졌다. 인간 영혼의 이성적 부분은 세계 조물주 데미우르고스에 의해, 비이성적 부분은 육신을 만든 신들에 의해 창조됐다고 생각했다. 플라톤 사상은 여러 세기 후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주의에 의해 새롭게 발전됐다. 플로티누스는 고대 희랍철학과 여러 종교를 혼합해 창조를 하나의 유출로 설명했고, 2~3세기 그리스도교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신의 유일성을 고수하면서 모든 사물은 스스로의 창조 행위가 아닌 신의 창조 행위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마치 물이 샘에서 솟아 나오듯이 사물들이 신으로부터 유출돼 흘러나온다고 본 것이다. 그 예로 태양을 들었다. 태양은 절대 고갈되지 않고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지만 그것은 본질 그 자체이기에 필연적으로 빛을 방출한다. 이처럼 신은 만물의 원천이며, 만물은 신을 드러낸다. 또 그는 악을 세계질서에서 한자리를 차지해야만 하는 것으로 여겼다. 악은 그림에서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어두운 그림자 부분과 같다는 것이다. 현대과학은 우주 기원을 빅뱅이론으로, 인간 기원을 다윈의 진화론으로 설명한다. 과학은 생명 현상, 생물의 진화와 그 방식에 대해 질문하지만 신학은 그 궁극적 의미를 묻는다는 점에서 두 학문은 서로 다르다. 생명의 시작에 관한 그리스도교 창조는 연대기적 시작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시작을 말하는 것이다. 신학자 프랑수아 바리용 역시 "물리적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물리학자 소임이고, 물리학자는 창조주라는 가설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과학은 번개, 바람, 지진 생물의 진화 등 세상 현상들이 일어나는 방식에 대해 질문한다… 과학은 존재하는 것들의 궁극적 의미는 물론 그것들의 근원에 대해서도 묻지 않는다. 그러므로 창조의 신비에 다가가는 길을 찾을 곳은 과학이 아니다"하고 말했다. 이처럼 과학과 그리스도교는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역할과 소임을 갖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런 점을 분명히 하며 "과학은 종교를 오류와 미신으로부터 정화할 수 있고, 종교는 과학을 우상숭배와 거짓 절대주의로부터 정화할 수 있다. 양자는 각기 타자를 보다 넓은 세계로, 양자가 그 안에서 번영할 수 있는 세계로 끌어들인다"고 말했다. 또 생명의 기원과 진화 문제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면서 종교와 과학이 서로 도움이 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ㅡ 조규만 주교님 ㅡ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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