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제2주일]
무릉도원(武陵桃源)
'무릉도원’(武陵桃源)이란 평화롭고 조용한 이상향(理想鄕)이란 뜻입니다. ‘무릉도원’ 이것은 도연명(陶淵明, 365-4270)의 ‘도화원기’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줄거리만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진(晉)나라 태원(376-396) 연간의 일입니다.
무릉(武陵)의 어느 고기잡이가 시냇물을 따라 무작정 올라가던 중 문득 양쪽 언덕이 온통 복숭아 숲으로 덮여 있는 곳에 닿았습니다. 막 복숭아꽃이 만발해 있을 때라 고기잡이는 노를 저으며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복숭아 숲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습니다. 꽃잎은 푸른 잔디위로 펄펄 날아 내리고 있었습니다. 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이 숲은 어디까지 계속되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며 노를 저어가다가 마침내 시냇물 근원까지 오자 숲도 함께 끝나 있었습니다. 앞은 산이 가로막혀 있고 산 밑으로 조그마한 바위굴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굴속으로 뭔가가 빛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가가서 보니 그것은 겨우 사람이 통과 할 수 있게 뚫린 굴이었습니다. 고기잡이는 배를 버려둔 채 굴을 더듬으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윽고 앞이 탁 트인 들이 나타나 보였습니다. 보기 좋게 줄을 지어 서 있는 집들, 잘 가꾸어진 기름진 논밭, 많은 남녀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들일에 바빴습니다. 이곳을 찾게 된 고기잡이도 그를 맞는 사람들도 서로 함께 놀라며 어찌된 영문인지 까닭을 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옛날 진(秦)나라의 학정을 피해 처자를 데리고 속세와 멀리 떨어진 이곳으로 도망쳐 온 사람의 후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조상들이 이리로 찾아온 뒤로 밖에 나가 본 일 없이 완전히 외부세계의 교류가 중단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고 마을 사람들은 묻고 또 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며 며칠을 묵고 난 고기잡이는 처음 왔던 길의 목표물을 기억해 가며 집으로 돌아오자, 곧 이 사실을 태수에게 알렸습니다. 태수는 보고를 받고 사람을 보내 보았으나, 고기잡이가 말한 그런 곳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유자기(劉子驥)라는 고사(高士)가 이 소식을 듣고 찾아 나섰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도중에 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 많은 사람들이 복숭아꽃이 필 때를 기다려 찾아가 보았으나, 무릉도원 사람들이 속세의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골짜기에까지 많은 복숭아나무를 심어 두었기 때문에 끝내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무릉도원은 정부의 간섭은 물론 세금도 부역도 없는 별천지였습니다. 그래서 속세와 떨어져 있는 별천지란 뜻으로 무릉도원이란 말을 쓰게 되었고 또 이 무릉도원에서 주씨와 진씨 두성이 서로 사돈을 하여 내려왔다 해서 서로 사돈이 되는 것을 주진지의(朱陳之誼)를 맺는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런 유래에 따라 ‘무릉도원’하면 별천지, 이상향, 유토피아, 천국 등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살고 싶은 곳, 꼭 가고 싶은 곳을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황홀한 모습을 보고 ‘우리 함께 여기에 삽시다! 주님을 위해서 집을 지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모세와 엘리아를 위해서도…. 바로 무릉도원 같은 천국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타볼산에 오르셨습니다. 해발 575m, 평야 위에 투구모양처럼 우뚝 솟은 산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몸에서 휘황찬란 빛이 발하고 옷은 눈부시게 희었다고 합니다. 하늘에서는 모세와 엘리아가 나타나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코 9,7)는 하느님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고 했습니다. 예전에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예수님의 변모된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뿅 갔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모세와 엘리아를 위해서 집을 지어드리겠습니다. 우리 함께 삽시다! 이 보다 더 좋은 데가 어디 있습니까? 바로 이곳이 천국입니다. 무릉도원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왜 예수님께서 이런 변모된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었겠습니까? 변모사건 전에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예고를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다고, 우리의 주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돌아가실 수가 있겠는가? “절대로 안 된다.”고 베드로는 펄쩍 뛰었습니다. 주님께서는 큰 실망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제자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기 위해서 부활의 영광스러운 당신의 모습을 맛 배기로 보여주십니다. 이런 영광에 도달하기 위해선 십자가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확인시켜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도 주님처럼 십자가를 통해서 부활의 영광에 참여 할 수 있도록, 사순절 동안 스스로 기도하고 희생하며 봉사함으로써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뒤에는 무한한 영광, 부활, 무릉도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ㅡ 안계 본당 정상업 바오로 신부님 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