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공부/사도행전 공부

바울로가 그리스도교를 극렬하게 반대하고 박해한 이유는?

윤 베드로 2022. 10. 13. 07:48

바울로가 그리스도교를 극렬하게 반대하고 박해한 이유는 무엇일까? (행전 9장)

 

그렇게도 격렬한 박해자가 가장 뛰어난 사도로 투신할 수 있었던 가능성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성장 배경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르소 출신 : 희랍적 배경

바울로의 출생 연도는 : 알 수 없다.  다만 33-35년 경 스테파노가 순교할 때

               그가 "젊은이"라고 하므로 그 당시 30세 전후였다면,

                대체로 기원후 5-10년 사이에 태어났을 것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통설이다.

바울로 자신이 "나는 길리기아의 다르소 출신 유다인으로서

            결코 초라하지 않은 도시의 시민"(21, 39) 이라고 소개한다.

다르소는 : 로마 제국의 속령으로서 비옥한 길리기아 평원에 위치한,

                   당시 근동지방의 중요한 도시였으며,

                   희랍문명과 근동-셈족문명과의 교차점이 되었다.

다르소는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희랍 철학의 3대 도시로서

                큰 대학을 가지고 이름난 철학자들을 배출한 도시이다.

이러한 학문의 전통을 가진 문화 도시, 다르소에서 자란 바울로는

               자연히 희랍문화, 사상, 표준 희랍어에 능통했으며,

               이를 토대로 하여 회심 후에 그는 희랍어가 세계어였던 지중해를 중심한

               로마제국을 누비며 종횡무진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바울로는 : 또한 유다인으로 확고한 기반을 닦고 있었으며,

                      바울로의 집안도 철저히 유다교를 신봉하는 해외 유다인(diaspora)에 속했다.

바울로는 : "나는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의 한 사람으로 베냐민 지파 출신이며,

                   히브리족에서 나온 히브리사람" (필립 3, 5)으로

                   어려서부터 율법과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도록 엄격한 교육을 받은 "바리사이"였다.

또 유다인 종교 교육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있던

     예루살렘으로 유학해서 유명한 가믈리엘 문하에서

      성서와 랍비들의 전통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였다.

바리사이이며 랍비 후보생이었던 바울로는 율법을 구원의 유일한 방편으로 믿고

        여기에 그의 전생애를 걸고 연구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바울로에게 율법을 상대화하거나 폐기한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보기에는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는 <저주 받은 자>이지

          결코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일 수는 없었다.

때마침 초대교회 내부에서는 유다인 신자들과 해외 거주 희랍계 신자들 사이에

            율법과 전통의 준수는 성전의식에 대한 문제로 갈등이 있었다(6, 1-6).

여기서 해외 거주 희랍계 신자들은 유다 종교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게 되었다 (7, 58 ; 9, 1-2).

 

그렇지 않아도 예수라는 사형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선전하는

            새로운 종파를 위험시하던 터에,

이런 반 유다 종교적 행위는 철저한 바리사이 정신으로 물든

              다혈질적인 바울로의 눈에 대단히 거슬렸을 것이다.

바울로는 유다 종교의 수호를 위해 이와 같은 이단적 요소를 없애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광적인 박해 운동을 한 것이다.

그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고

          이를 아예 부수어 없애려 하였습니다' (갈라디아 1, 13).

 

다르소는 또한 로마제국의 도시였다.

바울로의 아버지는 : 어떻게 해서인지 유다인이었음에도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그 덕분에 바울로도 태생 로마시민이 되어(22, 28)

                    한평생 로마 시민권에 부여된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로마 제국은 : 이탈리아, 스페인, 마케도니아, 그리스, 소아시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북아프리카를 포함한 거대한 통일 제국이었다.

탁월한 정치, 하나의 통일된 로마법, 확보된 치안으로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자랑하던 로마 제국은

               치밀한 도로망으로 인해 물물교환이 대량으로 가능했고

               시민들의 여행도 매우 편리했다.

교통과 문화의 요새지인 로마 속령 다르소에서 바울로는

              로마 제국의 지리적, 정치적 요소를 익힘으로써

               그의 회심 이후 제국의 도로망을 이용하여 최대의 선교 여행을 하게 된다.

또한 로마는 정치적으로 무력과 로마법으로 통일했지만 언어는 희랍어로 통일하여,

          다르소에서 표준 희랍어를 익힌 바울로는

          언어 장벽 없이 자연스럽게 세계 선교의 선두 주자가 된다.

 

아무튼 바울로는 천성적으로도, 환경 면에서도 복잡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바울로는 이 세 가지 요소,

, 엄격한 유다교의 배경에서 온 철저한 성서지식과 구원사관,

      희랍적 문화 배경, 로마 시민으로서의 세계관의 바탕은 그의 생애를 결정지어 준다.

이러한 요소들은 그의 그리스도교 박해의 원인이 되면서

            동시에 사도로서의 투신에 기초가 된다.